내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요리에 관심이나 소질이 별로 없다.
해야하니까 그냥 억지로 하는 적이 많다.
그런 내가 어쩌다보니 주일이나 행사때 식당봉사를 5년이나 하게 되었다.
그래봤자 조수 수준이지만 나는 그 일이 별로 즐겁지가 않았다.
할 사람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하고, 일단 무슨 일이든 시작을 하면 진득하게 하는
성격이긴 하니까 쓰다 달다 말없이 했을 뿐이다.
남들처럼 멋지게 차려입고 우아하게 교회에 가고 싶단 소망이 생겼다.
맨날 후줄근하고 일하기 편한 복장으로 가서 음식장만이나 설겆이만 하다가
일요일 하루해가 다 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래도 그 기간동안 음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긴 했다.
하나님, 저 잘못 쁩으셨어요. 저는요 음식하기 싫어요.
집에서도 억지로 하는데 교회에서까지 손에 물 마를 새 없는 주방일 싫어요.
다른 거 하게 해주세요.
그 일을 진짜 좋아하고 소질있는 사람을 제대신 보내주세요.
생각날 때마다 기도를 했다.
그 기도를 들으셨는지 여차저차해서 마침내 내가 그 팀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봉사자가 많아서 내가 밀려난 것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거라
사실 눈치가 보이기는 하지만 싫은 걸 억지로 하면 나도 행복하지가 않으니까
어쩔 수가 없다.
'행복한 교회, 즐거운 만남' 우리교회의 캐치프레이즈에도 안 맞다.
내가 새롭게 맡은 일은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일이다.
나는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나 거부감이 별로 없는 편이고
각 나라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아서 그 일이 잘 맞는다.
처음에야 너무 막연한 주제라 고민했지만
내가 외국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을 그들도 궁금해하리라는 데 생각이 미치니까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관찰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보다 더 유심히 뉴스를 보게 되고
TV프로그램(다큐나 오락프로그램)도 잘 관찰하여 거기서 소재를 얻기도 한다.
그 밖에는 내가 평소에 관심이 많던 문화 예술 분야를 소개하는데
각종 시청각 자료들을 동원한다.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주제를 택하는 편이고
대부분이 힌두교,불교,무교도인 것을 감안해 종교적인 것들은 거의 넣지 않고
가장 일반적인 것들을 소개한다.
우리가 처음 외국인근로자들의 안식처를 자처하고 나섰을 때
반대하는 신도들도 많았다.
큰 교회도 거부하는 일을 왜 우리가 맡아서 해야하느냐?
저들과 같은 데서 밥 먹기 싫다. 병균 옮으면 어떡하냐?
그릇을 삶아도 죽지 않는 균도 있다더라.
하면서 그들을 마치 무슨 바이러스 덩어리라도 되는 양 거부감을 나타내던 사람들
그들은 결국 다른 교회로 다 떠나버렸다.
인종차별에 대해서라면 목소리를 높이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겨우 그 정도인 줄 정말 몰랐다.
우리보다 피부색만 좀 진한 가까운 나라 동남아시아 사람들인데 뭘 그렇게까지 거부감을
나타낼 필요가 있을까?
알고보면 그들도 자국에서 다 뽑혀서 온 고학력자들이 대부분이고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 많다.
가까이서 대해보면 정말 예의바르고 순수하고 성품이 온유한 사람들도 많고.
나라가 좀 우리보다 못 산다고 해서 국민수준이 다 그렇게 낮은 것은 아니다.
심지어는 그 남편이 중국진출을 앞두고 있는 어느 여집사는 중국욕을 그렇게 해댔다.
중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면서 미개하고 안하무인이라는 둥. 이기적이고 나쁜 놈들이라는 둥.
남편이 중국진출에 성공하면 가족이 동행해야 하는데 자기는 절대로 안 갈 거라는 둥
중국을 마치 천하에 못 살 땅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니 뉴스에서 봤더니 그런 나쁜 얘기 뿐이더란다.
남들이 우리를 선입견을 가지고 그렇게 판단하면 싫듯이
우리가 그렇게하면 좋아할 외국인이 어딨을까?
그러면서도 남편이 중국에 가서 많은 돈을 벌어오길 기대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더니만
결국 그 일이 어긋나게 되었다. 차라리 다행이다.
그런 마음자세로 중국진출을 한들 중국에 우리의 이미지를 어떻게 심고 오겠는가?
우리는 뷔페식 식사를 하고 설겆이도 먹은 사람이 각자 하는데
다들 깔끔하게 먹고 설겆이도 야무지게 잘 한다.
대부분 자취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 웬만한 여자보다 살림을 잘 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삶을 수 있는 그릇은 매번 삶고, 주방세제가 남아있을지 모르는 플라스틱 그릇은
뜨거운 물에 헹구어내서 물기를 빼는 과정을 다 거친다.
그건 우리나라 사람들만 모이는 단체에서도 다 하는 거 아니던가?
그러니 특별히 더 더러울 것도 없다.
내가 그들에게 놀란 것은 우리나라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속속들이 알고 싶어하는
욕구가 무척 강하다는 것이다.
이왕 우리나라에 왔으니 일해서 돈을 벌 뿐만 아니라 더 자세히 알고 싶어하고 배우고 싶어한다.
한글공부도 무척 열심히 한다.
그리고 더 인상적인 것은 아직도 그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나 예절이다.
나같이 변변찮은 선생도 선생이라고 내가 그 수업을 맡은 이후에 거의 90도 각도로 깍듯이 인사를
하고 사정이 생겨서 돌아가야하는 경우엔 아주 미안한 얼굴로 양해를 구하기도 한다.
내가 다 황송할 지경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교권이 땅에 떨어졌네 어쩌네 하는데
아직까지 그 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옛날처럼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가 참 바른가보다.
내가 그 대접을 받아서 맛이 아니라 예의범절을 아는 국민이라면 그 나라가 비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원래 남앞에 나서기 싫어하고 뭔가 알아도 모른척, 내가 했어도 티내는 거 싫어하고
남들도 나에게 그래주길 바라는 성격이다보니 많은 외국인들과 외부인사들 앞에 서서 시청각수업을
한다는 게 무척 긴장되는 일이었다.
안 그런 척 하려고 애를 썼지만 서늘한 날도 얼굴에 땀이 송송날 때도 있었다.
초반엔 집에서 프리젠테이션 리허설을 하면서 시간까지 체크했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보니 자료준비할 때
동영상 일일이 다 열어보고 그림자료 찾아 편집하느라 무척 많은 시간이 들어도
무척 행복했다.
좋아하는 음악 파일을 열어보면 나도 새롭고, 각 분야 사람들 조사하는 것도 재밌고
절기별로 스페셜을 하기도 하는데 5월은 가정의 달, 6월은 호국의 달
주제를 맞춰서 자료를 준비하다보면 이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더 알게 되고
또 즐겁겠지? 상상하면서 나도 너무나 즐거운거다.
영어를 손에서 놓은 지가 오래라 쉬운 단어도 긴가민가 할 때가 많아서
전자사전,인터넷사전을 달고 살아야하는 것도 시간이 소요되는 이유다.
그들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긴 마찬가지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라
영어를 쓸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가끔 뉘앙스를 이해하지 못해서
영어로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는 많이 노련해(?)져서 자유롭게 토론식으로 수업을 끌어가며
그들이 졸지않고 참여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내가 그들의 나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 그들도 기뻐하며 잘 알려준다.
일방적으로 우리것을 알려주기보다 서로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 일을 맡고나서 딱 반년이 흘렀는데 앞으로 남은 반년도 잘 채워서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
듣는 사람들은 매번 바뀌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그 어떤 자료도 한 번도 겹치지 않게
준비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도 레파토리가 딸리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