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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지금은 어디에...2


BY 햇살나무 2011-08-27

국민학교 시절...

그 시절의 기억이 참 행복한 건 언제든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던 그 아이때문이 아닐까.

주택개량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똑같은 모양의 집들이 골목을 마주보고 줄줄이 늘어서 있던 우리 동네.

처음으로 갖게된 우리집은 꽃밭이 있는 작은 마당과 나와 동생 둘이서 숨으면 딱 그만인 다락방이

있는 예쁜 집이었다.

앞집, 옆집 다 비슷해보여도 들어서면 저마다 사는 생김새가 제각각이었던 그 골목집들.

그 작은 골목은 우리에겐 둘도 없는 놀이터였다.

매일 학교 갔다온 오후엔 골목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숨바꼭질도 하고 다망구도 하고

구슬치기며 딱지치기에 온갖 놀이들로 가득했던 재미난 공간.

우리 앞집..그 애의 방에서 내다보면 우리집 마당이 보였다.

그 애가 내다보며 우리 놀자~하면 뛰어나갔고 내가 우리집에서 부르면 그 아이가 그 작은 창문으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

하루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놀고...놀고....또 놀던 그 시절.

우리 골목에서 서열(?) 1순위는 그 아이였지만 그 아인 내 말에 꼼짝 못했으니

실질적인 서열 1위는 나였었다...하하하

방학숙제로 나온 파리잡기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었다.

조그만 개미만 봐도 팔짝 뛰던 나인데 그 새까맣고 위협적인 소리를 윙윙내며 날아다니는

똥파리를 잡으라니...

게다가 파리채로 때릴 때 터지는 그 퍽.....하는 소리라니...끔찍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나에겐 그 아이가 있었다.

빈 성냥곽을 들고 따라다니면 내 상자에 숙제만큼 다 채워주고나서야 자기 상자를 채웠다.

대신 산수숙제는 우리집에 와서 함께 하거나 내껄 보고 베껴가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상부상조 했고 무슨 놀이든 함께 했으며 무슨 놀이를 하든 1등은 나였다.

어린 마음에도 그 아이가 나를 배려해준다고 생각했다.

힘으로 보든 빠르기로 보든 남자 아이였던  그 아이가 나에게 질 리가 없는데도 모든 게임의 최종승자는

나였으니까.

우리 골목에서 가장 힘세고 가장 씩씩했던 그 아이 덕분에 내 동생도 어디가서 맞고 들어오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건...

그  아이와의 추억은 그 골목에서 뿐이라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별로 아는척하거나 친하게 논 기억이 없다.

집에 돌아오면 그 이후, 그 골목 안에서만 우리는 단짝이었다.

우리 둘은 가끔 동네 조무래기들을 이끌고 다른 골목길로 탐험을 떠나기도 했다.

어느 여름날, 커다란 물통에 물을 가득 담아 동생과 둘이 홀랑 벗고 들어가 놀고 있는데

담 밖에서 그 아이가 놀자고 불렀다.

오늘은 집에서 놀거라고 안나간다고 그랬는데 자꾸 부르더니 좀 있다 담 위로 그 아이가 풀쩍

뛰어올라와버렸다.

순간 우리 둘 눈이 딱 마주쳐버렸는데....그때서야 비록 물 속이지만 내가 홀랑 벗고 있다는 사실에

꽥꽥 고함을 질러댔고 그 아인 당황한 나머지 담 밑으로 떨어져버렸다.

그리고 아마 한참은 둘이 피해다녔던 기억이......^^;

5학년 봄.

우리집이 이사를 하게 되었다.

멀리 가는 건 아니었고 골목이 끝나는 큰 대로를 지나 새로 지어진 아파트로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은 이삿짐은 리어카에 싣고 몇 번 날랐던 것 같다.

그때 그 아이는 묵묵히 우리 이삿짐을 날라주었다.

이사하고 나서도 자주 놀러오라는 엄마 말에 몇 번 다녀간듯 싶지만 그 이후의 기억은 없다.

내 어린 시절의 보디가드....지금 그 아인 어디서 잘 살고 있을까?

예전 ' TV는 사랑을 싣고 '란 프로를 보면서 내가 만약 나간다면 그 아일 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기억 속의 그 골목길은 우리들이 뛰어놀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작았지만 꽃밭과 다락방이 있던 우리집은 참 예쁜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몇 년 뒤 옛 생각에 다시 들러본 그 골목길은 내가 길을 잘못 찾은게 아닌가 싶을 만큼 작고 초라했다.

어른 둘이 같이 걸어가기에도 비좁을 만큼 좁은 골목길과 손바닥만한 마당에 작고 초라한 그 집이

정말 내가 살았던 그 골목, 그 집이 맞나 싶었다.

그러고보면 기억이란 참 조작가능한 정보인가싶다.

추억이란 아름다운 포장지를 살짝 걷어내면 무채색의 현실이 보인다.

그냥 추억은 그 아름다운 기억으로만 존재하게 살짝 덮어두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