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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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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되어버린 추억


BY 햇살나무 2010-12-02

하늘이 잔뜩 가라앉아 있다.

똑같이 흐린듯하지만 오늘같은 날은 눈이 내릴 것만 같은 흐림이다.

그런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게 신기하다.

흐린 날보다는 맑은 날을 훨씬 좋아하는 나이지만 오늘같은 날씨는 제법 운치가 있어 좋다.

달콤하고 향긋한 사과차 한잔을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자니 문득 몇 년전 일이 떠오른다.

좋게말하면 뒤끝없다고 할 수 있고 솔직히 말하면 단순한 내 성격상 오래도록 가슴에 묻어두는

일따윈 없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 잊혀지지않고 가슴 한구석에 남아 문득문득 아픔을 주는 일이 있다.

14년전, 남편이 직장생활을 접고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겠다고하여 이사를 하게되었다.

이사한지 몇 일되지 않아 윗집에서 음료수 상자를 들고 인사를 왔다.

자기 집에 아이들이 많이 놀러와서 좀 시끄러울꺼라면서 한번 놀러오라고 그랬다.

그당시 우리 아이가 돌무렵이어서 바깥외출을 거의 하지 않던 때였고 남들은 안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나 스스로는 꽤 낯을 가리는 편이었다.

이웃들과는 예의를 지키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몇 번 놀러오라고 하는 걸

적당히 인사만 하며 지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우리 라인이 유달리 단합이 잘되고 비슷한 또래가 많아 니집내집 구분없이 문열어놓고

아이들도 우르르 몰려다니며 한가족(?) 같이 지내는 분위기였다.

특히 우리 옆집과 우리 윗집 둘, 반장네, 그외 두서너집 정도가 핵심멤버였는데

주로 모여서 노는 장소가 우리 윗집이어서 항상 아이들이 북적였다.

몇 번의 초대를 더이상 거절할 수가 없어서 한번 놀러갔다가 그만 나도 그 멤버에 끼이고 말았다.

싫어도 싫단 소리를 잘 못하는 나는 같이 어울리면서도 때론 좀 불편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내 아인 너무 어려 다른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 놀 나이도 아니고

나도 그렇게 아줌마들끼리 모여 잡담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 혼자 조용히 보내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이었기때문이었다.

그래도 집에 있는 걸 뻔히 아는데 오라는 걸 안갈 수도 없고 혼자 있고싶다고 모른척 하기도 힘들었다.

김장철이 되면 같이 모여 마늘도 까고(나는 김치를 담그지않지만) 비오는날은 아파트 복도에 전을 펼치고

파전을 구워먹고, 날씨 좋을땐 아파트 뒤쪽 잔디밭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그렇게 어울리다보니 동기간보다 친해져서 때론 남편들에게 아이를 맡기고 여자들끼리 1박으로 놀러도

가고 한달에 한번씩은 바깥모임을 하기도 했다.

그 당시 누구누구엄마라는 호칭으로 불렀는데 내가 제일 막내이긴해도 나이가 전부 1살씩 차이가

나는 바람에 말은 편하게 하고 지냈었다.

그렇게 1여 년을 매일 붙어있다시피 했는데 IMF가 터지고 지방근무였던 윗집은 본사로 불려가고

명예퇴직 위기에 처한 혁이네는 공부를 더하겠다고 미국으로 들어가고, 건축회사에 있던 옆집은 멀고먼

아프리카  지사장으로 물건너 가게되었다.

그리고 그 몇 달동안 다른 집들도 하나둘씩 떠나게 되었고 그들이 떠날때마다 송별회를 하며

마음이 허전해져서 결국 우리도 이사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7년이 흐른 몇 년전 너무나 뜻밖의 장소에서 위집 엄마를 만나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번호를 주고받았고 아프리카로 떠났던 우리 옆집 진이네가 얼마전 한국에 들어왔음을

알고 그날 즉석에서 통화를 하게 되었다.

옆 집 진이엄마는 내게 친언니처럼 잘해주었었다.

화통한 성격인데다 목소리도 큰 편이었고 어디서든 맏언니 노릇을 잘했는데

자기 눈에 아니다싶으면 혼쭐을 내는 스타일이었다.

나랑은 많이 달랐지만 그래서 더 친해졌을 수도 있었다.

나에겐 그 7년전의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항상 생생하게 가슴에 남아있었고 문득문득 그들의 안부가

궁금했으며 그때는 좀 불편했을 수도 있는 일들이 지나간 추억이라 그런지 아름답게만 기억되어 있었다.

진이이후로 아이가 안생겨 섭섭해하더니 그사이 늦둥이가 생겼다기에 기쁜 마음에 아이 옷까지

준비해놓고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에게 전화가 오던날....

나의 반가운 마음과는 상관없이 다소 딱딱하게까지 들리던 그녀의 음성.

반가운 안부를 전하기도 전에 나는 그녀의 일장훈계를 들어야했다.

요지는 자기가 나보다 네살이 많은데 누구누구엄마라거나 언니라는 호칭이 아닌 자기라는 호칭을 썼다며

기분 나쁘다고 했다.

아....순간 머릿 속이 어지러웠다.

내 딴엔....그 오랜 세월의 어색함을 감추기위해 좀 더 친밀한 표현을 쓴다는 것이 그만 그런 우를 범한 것이다.

나는 어지간히 친하지 않고서는 말을 잘 놓지 않는 편이다.

심지어 알바하는 학생들에게까지 꼬박꼬박 말을 높여 준다.

나보다 어리다고해서 말 놓지도 않는데 설마 그녀에게 함부로 말했을까.

단지 나는 그 세월의 공백기를 없애고 싶었고 예전에 하던 대로 대한다고 생각했으며

오히려 누구누구엄마라고 부르는게 더 실례가 될 것같아 그랬던 것인데...

그녀는 자기라는 표현은 손아랫사람한테나 쓰는 표현이라며 나를 나무랐다.

그날 나는 아무말 못하고 미안하다며 내 뜻을 밝혔고 억울하고 섭섭한 마음에 하루종일 울고 말았다.

그동안 아름답게만 포장되어 있던 7년전의 기억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몇 일뒤 그녀를 만나서 아이 옷을 전해주고 맛있는 식사도 했으며 우리집에서 차도 마시고 헤어졌다.

그리고 그 날 나는 그녀의 핸드폰 번호를 지웠다.

그녀 역시 내 번호를 지웠을지 모를 일이다.

그 뒤 우연히 TV에서 경상도에서는 자기라는 말을 손위사람한테 쓴다고 소개된 걸 본 적이 있다.

물론 여기는 경상도...

그녀도 나도 경상도 사람이니 내가 잘못한 게 없는 셈이다.

어쨋든 듣는 사람이 기분 나빴다면 내가 잘못한 일이지만 꼭 그렇게 첫 만남을 가지기도 전에 전화로

나를 나무라야만 했을까.

내가 어제인듯 반가웠던 7년의 공백이 그녀에겐 전혀 다른 시간이었던 걸까...

그날이후 안그래도 소심한 내 마음은 사람을 대하기가 더욱 조심스러워졌고

아직도 뽑히지 않은 가시처럼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상처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