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 따라 변하는 내 마음
세상이 바뀐다면 몰라도 내 영감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내 판단이, 야금야금 허물어지고 있다. 바라지도 않았던 일이 버러지고 있는 것이다. 내 친정어머니의 말씀이 옳았다.
“악한 사람이 아니니 곧 바뀔 것이다. 두고 보렴.”
“그렇게 자란 환경 탓이야.”
“나이가 먹고 아이들이 생기면 바뀌지 말라 해도, 자연스럽게 바뀌기 마련이야.”
그러나 아이들이 생겨도 그이는 요지부동이었다. 환갑을 지나도 영감의 의식은 바늘구멍만큼도 바뀌지 않았다. 태생이 그런 걸 어떻게 변하길 바라느냐는 말이지. 다섯 누이들 속의 외아들로 아니 제왕으로 30년을 자란 그이. 부족하다는 게 뭔지도 몰랐고, 잘못된 것에 대해 한마다의 제재도 받지 않았던 그였다. ‘배가 고프면 라면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부류에 속한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도 굽힐 줄 모르고 조아릴 줄도 모르는 위인으로 80년을 살아온 셈이다.
그랬던 영감이 갑자기 변했다. 이건 정말 기적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뇌출혈로 쓰러진 작년 10월의 마지막 날부터라고 하겠다. 아니다. 그 뒤로 ‘환자노릇’을 했으니 더 명확하게 변한 건 올해. ‘자기사업’을 접고 집에 들어앉으면서부터라는 게 옳겠구먼.
“이 환자가 그동안 정상생활을 했다면,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앞으로는 운전도 못하십니다.”
어느 날 갑자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겁을 주는 주치의 한 마디가 영감을 바꾸어놓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전답은 없애지 못한다던 영감이 전답을 내 놓았다. 부모님이 기거하시던 집도 비워두어서 폐허가 될망정 보관하더니 그도 이젠 없애겠단다.
아침이면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쌀을 앉혀놓은 돌솥에 불을 당겨 익히고는, 잠에 취한 내게,
“일어나 밥 먹어.”한다. 시키지도 않은 ‘셧터맨’을 자처하기도 하고, 대문앞도 비질을 한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더니 그런 징조일까?
더 가관인 건 미처 씻어놓은 쌀이 없을 때에는 쌀을 씻어놓는데, 크~. 마누라가 쌀뜨물로 세안하는 걸 안 뒤로부터는 쌀뜨물을 받아놓더라는 말씀이야. 나처럼 첫물은 농약을 걱정해서 버리고 두벌 물을 받는지 그건 모르지만, 사실 이런 것까지 원하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당신의 수입보다 내 수입이 월등하던 호시절(好時節)에도 안하던 일이 아닌가. 그렇다고 지금의 내 수입이 생활비를 감당할 만큼엔 역부족이란 걸 모를 리 없는데 말이지.
이제는 부부가 병원을 다녀오는 일이 일과로 되어 있다. 신경외과, 비뇨기과, 흉부외과, 안과, 내분비내과 등 등 등. ‘바늘 가는 데에 실 간다’고 하지 않던가. 영감이 가야하는 병원엔 내가 따라나서고 내가 가야하는 병원엔 영감이 따라나선다. 나는 병원을 다녀와서 이렇다저렇다 말없는 영감이 답답해서 따라나섰으나 영감은 내가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면,
“나도 따라 가?”하며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따라나선다.
허허. 어디를 다녀오는 지도 모르는 동네의 이웃들은 둘이 다정하게 다니는 게 좋아 보인댄다. 나란히 단풍 구경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공연을 관람하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덜컥 겁이 나는 요즘이다. 아이들도 요새로 많이 변한 게 내 눈에 띈다. ‘사남매의채팅방’을 만들어 주로 우리 부부의 일을 상의하고, 생활비를 갹출해서 보낸다. 병원에 다녀오는 날이면 큰며느님이 저녁을 지으러 내려오곤 한다. 아직은 다녀와서도 내가 지어 먹을 만도 한데.
얘들도 우리 부부의 생(生)이 길지 않다는 암시를 받을 것일까? 아니면 우리 부부의 병에 대해서 우리보다 더 뭔가를 잘 알고 있는 것일까? 허긴. 나도 여름옷을 정리하며 올 여름에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옷을, 쌀 포대로 하나를 ‘의류수거함’에 넣었다. 내가 없을 때에 내 아이들의 수고를 던다는 차원이다. 이제 일흔 둘. 오래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직’이지만 탱탱하던 볼 위에 그어지는 실주름을 보며, 영감 따라 변하는 내 마음을 읽는다.
2015. 11월 비 오시는 날에.
보림아~!
할매 맴이 와 이리 약해진다냐. 오늘 비가 추적추적 내리시니 할미도 센치해진 건여?
이제 햇님 반짝 빛이 나믄 할매 맴도 빛이 날 겨~^^
아이들이 영감 장난감으로 검정의 순종 푸들을 분양 받아다 영감은 올해엔 꽃 가꾸기에 열심.
주었다. 참 좋은 친구가 되었다. 시방은 샤워를 시키고 드라이 중. 마당에 향이 가득했다. 엔젤트롬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