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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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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이 삼촌(24)-세상 밖으로...(마지막 편)


BY 솔바람소리 2009-01-21

엄마는 눈에 흙이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사돈과의 만남을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아이가 아니라 세 번째 아이가 뱃속에 있어도 안 될 일이라고 했다.

그런 중간에 창밖에서 선영이 엄마가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늘에 별과 달, 모든 사물들이 잠이 든 밤인 줄 알았다. 깨어있는 사람이 또

있었고 그것이 하필이면 언니라는 것이 반갑지 않은 그 밤...

엄마가 창문을 열고 모든 책임을 언니에게 전가하며 폭언을 해댔다.

나와 언니가 그랬듯 여러 사람 중에 제일 가깝게 지냈던 조카에게

늘 웃음 뛴 얼굴로 대했던 엄마가 돌변한 모습으로 언니를 대했다.

 

“이 일을 어쩔 거야. 니 이모부 알면 어쩔 거야, 이년아!

그런 놈을 왜 이곳까지 끌어들여서 이런 사단을 만들어.

당장 그 놈 보내버려. 뭔 일 나도 난 모르니까!“

 

“이모, 이게 뭔 일이야. 자고 있는데 삼촌 때문에 우리도 깨서

일어났는데 갑자기 **랑 결혼하겠다고 하니, 우리도 놀랐어.

안 된다고 해도 고집부리고... 선영이 아빠랑 몸싸움까지 벌이고

난리가 났어. 우리 집도 지금...“

 

언니도 넋이 빠진 모습이었다. 조용한 밤에 창문을 사이에 두고 말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는지 엄마가 언니에게 꼼짝 말고 그곳에 있으라며 밖으로

나갔을 때 언니가 고개를 빼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렇잖아도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고서.

 

“**야, 정말이야 삼촌 말이...? 난 믿을 수가 없어. 어떻게 네가 삼촌이랑...

삼촌이 술 취해서 그러는 거지? 혼자 착각하고 있는 거지? “

 

언니의 목소리가 근심에 잔뜩 묻혀있었다.

 

“착각 아니야. 정말이야. 삼촌이랑 살 거야.”

 

언니도 어차피 알아버린 일이 되었다. 정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져 버린

상황이 되어 버렸다. 조심스레 내게 물은 언니에 말에 쐬기를 박아버린

내 말... 놀란 언니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 그 삼촌네 집이 얼마나 가난한 줄 알아? 넌 상상도 못할 거야.

삼촌네 집은 지금도 민속촌에서나 봤을 법한 초가집에서 살고 있어.

네가 그런 집에 시집가서 살 수 있어? 넌 못해.“

 

사돈을 비하하는 말들이 나왔다. 하지만 더 이상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다.

 

“난 뭐가 잘나서? 우리 집이 재벌이야? 그 딴 것 신경쓰지 않아.”

 

내 말에 언니가 어의상실하고 서 있을 때 어둠에 묻힌 한쪽에서 엄마가 언니를 불렀다.

어둠속으로 사라져가기 전에 언니는 내게 ‘잘 생각해봐... 이건 아니야...’

라는 말을 남겼다.

 

창문을 닫고 다시 침묵 속에 묻힌 내 방에 홀로 앉아있었다.

시간은 벌써 새벽 1시를 넘기고 있었다. 정리 됐던 마음이 다시 혼란이 들기도 했지만

두 번의 낙태를 위해 수술 침대에 눕는 짓 따윈 두 번 다시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입 싼 언니와 형부까지 알아버린 마당에 더 이상의 비밀은

존재하지 않았다. 벌써 답이 나왔고 그래서 번복할 수 없었다.

 

얼마 만에 다시 내방으로 돌아 온 엄마는 잠시 내게 외할머니 댁에 가있으라고 했다.

언니의 입단속을 시켰다며 여전히 모든 것을 엄마가 알아서 처리해주겠다고 하셨다.

학원도 당장 때려 치라고 했지만 난 고집 것 학원을 가겠다고 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겠다고 강한 의지를 표했다.

나 역시 심란한 마음으로 학원수업을 들을 상태가 아니었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왠지...

내가 갖은 생각과 상관없이 엄마도 답을 내렸는지 더 이상 할 말 없다면서 내 방을

나섰다.

 

잠시 앉아있던 나는

수중에 갖고 있던 돈들을 찾기 시작했다. 책갈피 사이에 끼어놓았던 것과 서랍과

장롱 속에 넣어두었던 것들까지 모두 꺼내놓으니 40만원이 조금 넘었다.

날이 새길 기다리면서 어쩌면 집에서의 마지막 날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내 방을 둘러보았다. 늘 집밖, 부모님 품을 벗어나고픈 희망을 꿈꿨지만

결코 이런 불미스런 일로 도피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나로 인해 마음 편히 살아 본 적 없는 엄마에게 충격적인 상처를 준 것이 가슴이 아파

자꾸만 가슴이 먹먹해졌고 목울대로 싸한 통증이 일어났다. 터지려는 울음보를

참으려고 해도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어쩌지 못하고 휴지를 닦아낸 살갗이

쓰라려 왔다. 그렇게 혼자 청승을 떨고 있는데 방광의 압박을 느껴졌다. 참혹한

상황에도 부실한 몸이 원할하게 제 역할을 이행하고 있었다. 몸주인 나는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방을 나섰다. 그때가 새벽 4시에 가까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시간에 내 방을 진즉에 나갔던 엄마가 화장실 문 앞의 벽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임신했다고 자백한 내 말에 바닥으로 무너져 내린 채로 소리를 묻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던 것처럼 여전히 엄마는 어둔 거실의 한쪽에서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지나쳐서 화장실에 들어가 볼 일을 보고 그대로 내방으로

들어왔다. 엄마 몰래 흘리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는 것처럼 끝내 울음보까지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 냉정히 내 방으로 들어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평소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알람이 울려 거실로

나갔다. 엄마도 평소처럼 주방에 있었지만 ‘일어났니?’하고 묻지는 않았다.

나는 욕실에서 닦고 나와서 식탁으로 앉았다. 평상시에도 식욕이 없던 나는

입덧 탓인지 밥숟가락을 세 번 이상 뜨지를 못했었다. 그런 내 앞으로 엄마가 감자를

넣고 끓인 빨간 고추장찌개를 내밀었다.

 

“이건 먹을 수 있을 거야... 먹어 봐...”

 

힘겨운 듯 말을 꺼낸 엄마가 다시 몸을 돌려서 싱크대 앞으로 가서 섰다.

설거지꺼리 없는 빈 싱크대에서 그렇게 내게 등을 돌린 채로 서있었다.

간간히 몸을 들썩이면서 그렇게 서있었다.

 

나도 목이 메었다. 밥풀 하나 삼키기도 힘겨울 정도로 목이 메었다.

하지만 청양고추를 넣고 끓인 고추장찌개 맛이 얼큰한 것이 입맛을

돌게 했다. 마지막 밥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엄마가 입덧을 했을 당시 먹을 만했던 음식이었기에

경험을 이유삼아 만들어 주신 찌개 탓이었을까...

그 상황에 나는 오랜만에 밥 한 공기를 깨끗이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통장 관리를 하느라고 부모님이 주민증을 갖고 계셨다. 그것을 아버지에게

달라고 했다.

갑자기 주민증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에 거짓말이 입에 베인 듯

요즘 역전에 경찰의 단속이 심해서 갖고 다녀야 한다는 거짓말을

능숙하게 꺼내어 받아 챙기고 버스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설 때 엄마도

따라 나왔다.

뜬눈으로 까만 밤을 하얗게 지센 엄마의 눈이 붕어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그런 엄마를 못 본체하고 앞서 걸었다.

싸가지를 진즉에 상실한 듯 행동하고며 버스에 오르려는 내 팔을 엄마가 잡아 세웠다.

 

“**야, 학원에 다니지 말라고 안 할 테니까, 당분간 쉰다고 하고 와.

그리고 이 돈으로 먹고 싶은 것들 학원 친구들하고 사먹고 실컷 놀다가 와라.

꼭, 와야 한다...“

 

아이를 달래듯 엄마가 두툼하게 말린 만 원권을 내 손에 쥐어주시며 말했다.

그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직시했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

그래서 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눈물을 흘린 모습으로 사라져간다면 엄마가 더 힘겨울까봐...

엄청난 불효를 저지른 년이 엄마를 크게 배려하듯... 그래서 이를 깨물며 눈물을

참고 냉정한 얼굴로 차에 올랐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차가 출발 할 때까지 집 안으로 들어서지 않았던 것일까...

엄마도 내 마음처럼 그 순간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직감하며 손을 흔들었던

것일까...(내가 선택한 결정이 계획되로 순탄하게 실행되어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왔다면 아마도 그때를 회상하며 엄마에게 물어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가시밭길을 걷고있는 현실이 부끄럽고 여전히 지난 날들을 후회하는

나로서는 부끄러워서 입을 닫고 있는 것들이 지금도 참... 많다.)

 

차가 출발하며 엄마 모습을 지나쳐서야 겨우 고개를 묻고 소리죽여 울음을

터트릴 수 있었다. 눈이 고장이 났는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멈췄는가 싶으면 다시 콸콸 쏟아져 내렸다.

 

학원에서 넋을 놓은 채로 데생을 하고 있었다. 강사가 다가와 선이 거칠다고

지적을 했지만 고칠 생각도 않고 한 곳을 계속해서 까맣게 뭉개놓은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고 알려줬다.

수화기를 받아드니 짐작했던대로...사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울서 사돈과 만나기 위해 수업도 받다말고 수원으로 내려와 약속장소로

향했다. 내가 사준 운동화와 옷을 걸친 사돈이 역전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나 초라한 모습의 그였다.

 

“밥은 먹었어요?”

 

그를 보면 내 첫마디가 그거였다. 매일 굶고 다니는 사람처럼 가엽게

보인 그였기에...

그가 점심이 가까운 시간에 아침도 먹지 못했다고 했다.

수중에 돈이 없어서 차비만 겨우 구해왔다고도 했다. 기가 막힐 말들을 듣고

가까운 곳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그가 먹겠다는 음식만 주문했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는 그의 목 주변에서 크고 작은 상처들이 보였다.

언니 말이 형부와 그가 몸싸움을 했다더니 빈말이 아니었나보다고 생각하며.

 

차비도 없어서 겨우 구해 왔다는 사람을 어찌 믿고 내가 살아가야 할까 벌써

벽에 부딪힌 심정이 되어있었다.

밥을 싹싹 비워 먹은 사돈이 나를 보고 말했다.

 

“나랑 서울로 갑시다. 그곳만 올라가면 내가 알아서 모두 해결 할게요.”

 

진정 대책이나 세웠을까 의아한 말을 사돈이 꺼냈고 아쉽게도 난 믿음이

가질 않았다.

 

“어떻게 해결 할건대요?” 그래서 물었다. 그의 생각이 궁금해서...

 

“형(선영이 아빠)한테 내가 일한 것을 모두 받기만 했어도 걱정 없는데...

하지만 내 도움 받은 친구들이 많으니까, 그 놈들이 가만있지는 않을 겁니다.

날 돕겠지요...나만 따라와요.“

 

여전히 확신 할 수 없는 말들만 그의 입을 통해서 나왔고 나는 근심이 더해만

갔다. 내가 각오했던 것보다 더한 시련이 있을 것만 같아서

벌써부터 두려움이 크게 밀려 들기도 했다.

 

“삼촌, 그럼 먼저 서울로 올라가서 지내면서 우리가 살 방을 구해놔요. 난 지하방도

괜찮으니까, 부담 갖지 말구요. 처음 시작이야 어떻든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산다면

넓혀 갈 수 있을 거예요. 내가 학원을 계속 다닐 테니까 모든 준비가 되면 연락해요.“

 

그래야 될 것만 같았다. 잠시 계획을 접어둬야 할 것만 같았다. 우리 둘이 지낼 방만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친구들만 믿고 있다는 것이 불안해

그렇게 말했다.

 

“아니요, 어머님이 알게 됐으니 어떻게든 애를 떼려고 할 겁니다.

이모는 애를 떼면 내게 오지 않을 겁니다. 같이 가요. 부모님만큼은

아니겠지만 마음고생만큼은 절대로 시키지 않을 것을 약속할게요.

난 이모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를 누가 허락을 해주던 말던...난

이모만 있으면 됩니다...“

 

(치매에 가까운 정신을 갖은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대사다. 초반에 살 때

외박을 일삼고 술에 화투장까지 들고 살며 피를 말리던 남편에게 제가 했던

말을 상기 시키듯 그날의 말을 내가 꺼냈을 때... '알았어, 미안해' 라고 했던 몇 번의

말 이후... 콧방귀 뀌는 것으로 대신했다. 적반하장처럼 오히려 내게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고 망말을 일삼기도 했다. 내게 당한 사기가 어떤 거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하도 없이가 없어서... 하지만 그는 대답 대신 콧방귀를 껴댔다. 재수없는 그 방귀를.

아직도 궁금하다. 내가 자신을 유혹했다고 했고 내게 사기를 당했다는 그의 생각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가...)

 

그 말에 내 모든 생각을 접어두고 그를 따라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내가 갖고 있던 돈 40만원과 아침에 엄마가 주신 20만원인 총 60만원만

소지한채로...

 

 

(그렇게 시작한 나와 남편과의 삶의 시작이었다. 부모 품을 벗어난 완전한

세상 밖으로 나섰다.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난 아기가 승냥이 떼들이 득실거리는

야생의 들판으로 들어섰는지도 모른 체... 그렇게...)

 

서울로 올라 온 날부터 여관방을 떠돌아다니며 하루를 빵 하나로 버틴 적도

있었다. 그가 말한 친구들의 도움은 없었다. 믿으라고 호언했던 일들이

실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수수방관하며 내 몸을 안고 침대를 뒹굴고 잠에 빠져 지내곤 했던 사돈에게

걱정된 말들을 꺼내놓으면 어김없이 그의 입을 통해서 '알았어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라는 말만 나오곤 했다. 걱정은 내 몫이었다. 따뜻한 곳에서 하루를

묵기 위해 수중에 돈들로 쪼개는 계산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사돈의 한 친구의 집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지하에 살면서 매일 술을 달고

살며 제 마누라 알기를 뭣같이 아는 그 사람은 처에게 폭언과 폭력을 일삼곤 했다.

여자는 바보처럼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다.

 

그 집에 얹혀살면서 피해되기 싫어서 밥도 했고 집안을 치우기도 했다.

내가 뿌린 씨앗을 거둔다는 생각으로... 나를 죽이고 내가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며

살려고 했다. 비참해도 참아야 할 것들이 많았다. 사돈이 일을 하고 돈을 조금 벌어오면

대책없이 그 집으로 잔뜩 먹을 것을 사들고 왔지만 눈치가 보여서 어떤 것도

함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주린 배로 밥을 먹어도 김치 쪽으로만 손이 가곤 했다.

 

즐겨먹었던 피자와 양식이 먹고 싶었다. 엄마가 해주신 집 밥이 먹고 싶었다.

희생하며 참는 것이 많은 내 고통은 어쩌라고 사돈이 개차반같은 친구처럼

똑같이 행동하기 시작했다. 폭언을 일삼았고 때론 내 반항에 손을 치켜들기도

했다.

 

그런 어느 날 그 집에 여자에게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들었다.

그 여자가 왜 그런 얘기를 내게 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자신에 집으로 사돈이 여자를 데려 온 것이 내가 처음이 아니었다고 했다.

전에 언젠가도 묵을 곳이 없다며 한 여자를 데려 온 적이 있었고 그 여자도

홀몸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녀의 집도 부유했으며 여자의 부모가 알아내어 끌고 가버렸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을 제대로 느낀 날... 내게 솔직하지 못했던 사돈에게

따져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친구의 마누라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엄마가 어느 때보다 그리운 그 밤에 어느 덧 습관이

되어버린 듯... 이불 속에서 소리 죽여 울어야만 했다.

 

난 얹혀사는 집에 여자처럼 당하고 살 순 없었다. 억울해서라도 그럴 수는 없었다.

바락바락 대들었고 그런 내게 손찌검을 했을 때... 나도 죽자살자 덤벼들었다.

그런 내가 언짢았나보다. 그 집에 주인들이...

남자에게 감히(?) 대드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사돈의 친구가.

자신은 차마 해본 적 없는 행동을 남자에게 일삼고 사는 내가 그 처도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나를 때리려는 사돈을 막지 않고 두 인간이 합세해서 내 몸을 잡고 늘어졌고 나는 무방비로

맞고 말았다. 맞은 통증보다 내가 왜 그런 수모를 격고 그곳에서 버텨야 하는지가

억울해서 생긴 가슴의 통증들이 심하게 내 목을 조이는 듯 했다. 그런 일을 당하고 사는 것을

내 부모형제가 알게 된다면 어떤 심정이 될까, 그들에게 죄스러웠다. 나를 망가트린 사돈을

저주하며 그 모진 매를 맞고 있었다.

 

그때 난 어느덧 임신 7개월이 되어있었다. 불러 온 배를 걷어찬 사돈을 더 이상 아이의

아빠로 인정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몸을 하고서 집으로 갈 자신도 없었다.

훔칠 나를 팼던 인간이 몸부림을 그만두고 내가 그대로 맞고 있자 힘이 빠진 듯

내게서 떨어져 나갈 때 나를 잡고 있던 두 인간도 함께 따라 나갔다.

사기꾼... 사이비...뇌리로 떠올리며 멀어져가는 사돈의 뒷모습을 널부러진 체로

잠시 지켜보고 있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었고 삶의 의지를 느낄 수가 없었다.

 

내 수중에 남아있던 얼마의 돈을 사돈에게 알리지 않고 감춰둔 것으로 틈틈이 수면제를

사서 모아뒀던 것을 그 인간들이 보는 곳에서 약을 숨겨둔 곳까지 기어가서 꺼내어

모두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술 취한 사돈이 밖으로 씩씩 대며 나가면서

하는 말이,

“저 년 뒤지면 길바닥에 버려!” 라고 했다.

 

아이에게 집착을 버리지 못한 내가 아이와 함께 죽을 수 있기를 바랬다.

그렇게 잠 속으로 빠져들었고 간간히 잠에서 깨어나기도 했다.

그런 나를 길바닥에 버리라던 사돈이 얼마만에 병원 응급실로 끌고 갔을 때

코와 입으로 피들로 범벅되고 퉁퉁 부었을 내 얼굴을 본 간호사

한 명이 놀라며 환자가 왜 이런 상태가 됐느냐고 물으니 사돈이 한다는 말이

“글쎄요... 제 승질에 못 이겨 자신을 그렇게 합디다...” 라고 하는 것을

내 귀로 똑똑히 들어야 했다. 그 곳에서 난 자해한 것도 모자라서 약까지 먹은 독한

년이 되어 누워있어야 했지만 구차하게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변명

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귀찮은 순간,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지 못하고

있는 것만 원망스러웠다.

 

(오늘 난 이 글을 모두 정리 할 생각이다. 이 지긋지긋한 지난 추억들을...)

 

의사가 위세척을 하겠다고 했을 때 의식이 있던 내가 허락지 않았다.

중간에 몇 번 토하면서 약이 나왔는지 아니면 강한 수면제가 아닌 수면

유도제였는지 완전한 잠 속으로 빠져들지 못했다. 깊은 잠에 빠져 든 것은

몇가지 검사 후, 다행이 이상이 없을 것 같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응급실을

나와서 하루를 묵었던 모텔에서였다.

내가 깨어났을 때 침대에 기대어 잠들어있는 사돈의 얼굴이 보였다.

일어나는 나를 보고 놀라며 그가 괜찮냐고 물었다.

 

그곳을 당장 벗어나고 싶었지만 한 겨울에 집에서 있던 채로 실려왔던 피 묻은 반팔 티와

쫄바지만 입고 있던 차림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 그에게 내 옷과 가방을 갖다 달라고

했다.  생각과 양심이 없는 사돈이 말 버릇인 양 잘못했다며 함께 돌아가자고 했다.

독이 오를대로 오른 나는 길길이 날뛰며 흥분했고 길옆에 도로로 뛰어 들겠다고 했다.

당장 내 물건을 갖고 오지 않으면...

빈말이 아님을 느낀 그가 가져온 내 옷과 가방을 챙겨들고 그의 말류에도 밖으로 나선

나는 멍으로 부푼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를 거닐었다.

흘러내리는 눈물로 마스크가 젖어 들었지만 벗을 수가 없었다.

 

그 길로 작은 외삼춘 댁으로 갔다. 할머니 댁으로 가게 된다면 사돈이 나를

찾게 될까봐... 숨어 들 듯이...

그곳에서 이틀을 쉬었다.

여전히 철딱서니 구입하지 못했는지 못 잔 잠을 늘어지게 잤고

먹고 싶은 것들을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낙태를 위해 외숙모와 수원의 어느 산부인과로 들렀을 때

초음파를 통해서 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의사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옆모습으로 누워있는 아기의 이목구비가 구분된

생명체를 보고 말았다. 아기가 손가락을 입에 넣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침을 먹은 관계로 당장은 수술이 어렵다고 했다. 오후 2시로 예약시간을

잡아 놓을 때 의사가 말하길 유도분만이 안된다면 불가피하게 수술을

해야겠지만 최대한 티가 나지 않도록 신경 쓰겠다는 말을 의안처럼 해주었다.

그런 일에 익숙한 전문의인 듯...

 

곧 엄마가 올라오셨다. 나를 보자마자 끌어안고 상거지처럼 서있던 나를

토닥거리며 울어댔다. 제과점 이모와 할머니, 외숙모도 함께 울었지만

나는 그때도 역시 울 수가 없었다. 자격을 상실 한 듯 눈물조차 맘대로

흘릴 수가 없었다.

 

수술을 앞두고 그와 통화를 했다.

그가 울었다. 잘못했다고... 엄마를 비롯한 내 식구들의 눈물 앞에서는

나로인해 더한 눈물을 솟구치게 했지만 그가 흘리는 눈물은 악어의 눈물처럼

가식처럼 느껴졌다.

울면서 그가 말하길 내가 애를 떼면 자신도 죽겠다고 했다.

원양어선을 타겠다고도 했다. 그리곤 뱃속에 아기를 위했던 사람처럼

낙태하면 죽은 아기의 사체를 박스에 넣어서 자신에게 보내달라고도 했다.

그와의 말을 나눌수록 정나미 진즉에 떨어진 그에 대한 연민보다

저가 곧 죽을지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손가락을 빨고 있던 배속에

아기에 대한 죄책감이 서서히 머릿속을 채우고 말았다.

 

결국 난 아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내가 있던 곳까지 내려와 엄마 앞에

무릎 끓고 용서를 구한 사돈을 따라서 다시 서울로 올라오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부부였다.

사네 못사세 별별 짓을 다하며 혼인신고를 했던 연도에 결혼식까지 올렸다.

자신 없던 내 인생길이 어느덧 17년째로 접어들었다.

곧 끝날 듯 했던 삶이 지금까지 온 것이 뒤돌아보면 신기할 정도로 많이

와 버렸다. 내가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여전히 알 수가 없다.

살면서 생각한다. 넌 참 바보다... 하고...

 

 

 

(숙제를 하는 심정으로 오늘 글을 끝마쳤습니다. 다시 읽어보지 않고 올린 글입니다.

분명 오타도 많을 것이고 문맥도 희한하게 꼬였겠지만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글이었습니다.

다시 보면 못 올릴 글일 것만 같아서요.

양해 부탁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