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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그리고 할머니


BY 둘리나라 2007-09-15

 

                            제목: 눈……그리고 할머니


 “와아 눈이다. 눈!”

 바람 소리마저 숨죽였던 골목에 아이들의 함성 소리가 들린 것은 하늘이 잔뜩 울상을 지었던 크리스마스의 오후였다. 아이들과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더니 하얀 눈발이 지붕 위에도, 나무 위에도 솜이불로 덮이고 있었다. 내가 사는 울산에서 눈 구경 하기란 가뭄에 콩 나듯 어려운 일이라 반가움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나갔다.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는 발 도장을 찍고, 눈을 뭉쳐 눈싸움도 하고, 아이처럼 좋아하며 손뼉을 쳤더니 큰아이가 우습다며 놀렸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눈 구경을 하는 작은아이는 신기한지 손바닥에 올려놓고, 녹으니 또 올려놓으며 커다란 웃음으로 하얀 손님을 맞고 있었다.

 소리 없이 세상에 흰 카펫을 까는 포근함에 내리는 눈을 어깨에 숄처럼 걸치며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카메라를 찾았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눈에 얽힌 추억 한 가지 없는 사람이 있을까.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추억의 보따리에는 포장지에 싸여진 눈에 대한 코끝 찡한 사연들이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 역시 생각만으로도 가슴 끝에서 전기가 찌르르 오며 온몸이 저려 오는 그리움이 있기에…….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었나 보다. 동네 아이들이 약속된 장소에 돼지 저금통을 들고 모인 날이.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의 머리에서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이 나왔는지 지금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동네 아이들 여덟 명이 모여 양로원 방문을 서로 이야기했고, 그날부터 저금통에 동전이 모이기 시작했다.

 심부름을 하고 받은 돈, 과자를 사 먹고 남은 돈부터 어른들이 주신 용돈을 고스란히 돼지 밥으로 주었고, 몇 달 동안 열심히 고사리 손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방학에 들어가면서 재롱 잔치 준비를 했고, 부모님들은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가 모은 돈이 턱없이 부족해서 부모님들이 술이며 음식을 준비해 주신 거였다. 그러나 돈에 대한 개념이 없던 우리는 풍족한 양의 음식을 보면서 스스로의 대견함에 가슴 뿌듯해하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해냈다는 기쁨과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는 설렘이 어린 마음에도 책임감의 완성이라는 당당함으로 다가왔었다.

 드디어 양로원을 방문하는 날,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바람이 뺨에 바늘처럼 달라붙어 이곳저곳을 찔러 댔다. 차가 있던 주연이 아버지가 양로원까지 데려다 주었다. ‘유란 양로원 ’이라는 글씨가 어린 내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추운데도 밖에까지 나와서 맞아 주셨다. 가져간 음식을 상에 차리고, 준비해 간 재롱들이 하나씩 펼쳐졌다. 막걸리 한 사발에 흥이 나 어깨춤을 덩실 추며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며, 집에 계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지팡이에 의지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른 낙엽과 함께 마당을 걸어 다니는, 어떤 날은 걷는 것도 힘이 들어 평상에 앉아 흐린 눈으로 하늘만 바라보는 쓸쓸한 뒷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유일한 말동무인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기다리며 무심한 시계 바늘에 한숨을 실어 보내는 외로운 노년이 어린 가슴에 눈물 자루를 달아 주었다. 집에 가면 잘해 드려야지.

 재롱도 끝나고 가져간 음식들도 맛있다며 웃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헤어지는 인사를 했다. 잘 가라며 아쉬움에 뺨이며 손을 몇 번이나 만지던 따스한 손길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나뭇등걸 같이 갈라지고 딱딱한 손으로 눈가를 훔치시던 삶의 뒤안길에 자리 잡은 그분들. 헤어짐은 다시 혼자 남아 겨울 하늘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이 그리운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 들기에 충분한 만남이었던 것이다.

 나를 계속 무릎에 앉히고 손녀딸이라며 좋아하시던 할머니는 하얀 머리를 곱게 빗어 쪽을 진 분이었다. 인사를 하고 차에 타는데, 뛰어오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아가야. 가다가 먹그라이. 내가 주는 선물이여.”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새빨갛게 터서 차가운 손으로 내 손에 곱게 얹어 주었다. 보았더니 그것은 새우깡이었다. 주머니에 오래 있었던지 바삭함은 없어지고 찐득거렸다. 몇 알의 새우깡을 보물처럼 꺼내 주고는 어서 가라며 손짓을 했다. 얼마나 아끼고 아끼셨을까. 당신도 안 먹고 소중히 넣어 두었던 귀한 사랑을 본 지 몇 시간도 안 된 어린 나에게 선뜻 주신 그 마음을 그때는 잘 알지 못했었지만, 크면서 조금씩 깊이를 더해 가는 사랑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날 정말 많은 눈이 내렸다. 울산에 30년을 살았지만 그날처럼 많은 양의 눈이 내린 적은 없었다. 할머니의 마음을 눈이 덮어 주었는지, 아니면 포근함을 잊지 말라고 그랬는지 하늘도 멋진 선물을 주었다. 할머니의 삶도 새우깡처럼 처음에는 꿈도 희망도 많아서 포장지에 싸여 있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과자처럼 고소하고 짭짤한 인생을 겪고, 머리에 서리가 내리면서 남겨진 과자가 눅눅해지듯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을 것이다. 어린 눈 속에 애잔함을 남겨 놓은 할머니는 이렇게 눈 오는 날이나 아이들이 슈퍼에서 새우깡을 사 오는 날이면 유년의 기억을 비집고 아련한 그리움으로 목을 아프게 한다.

 시간은 변화하며 모든 것을 바꾸어 놓지만, 사람의 머리와 가슴에는 추억의 자리가 있어 언제나 손을 뻗으면 가서 앉을 수 있는 의자가 항상 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 속에서 저마다의 추억을 조각했을까. 말라있던 가슴 밭에 한 알의 즐거운 열매를 심었다면…….

 조금 전부터 더욱 굵어진 눈발이 아이들의 장난기 어린 머리 위에 추억의 눈사람을 자꾸만 만들고 있다. 할머니의 은빛 머리가, 고운 미소가 하늘에서 눈이 되어 세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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