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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식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BY 천정자 2012-09-25

지금은 평균수명 90세 시대.

그러니까 90세 기준으로 여명을 따진다면

지금의 4-50대만큼 고달픈 세대가 없다.

60-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8-90년 대에

국가의 경제에 이바지한 세대인 만큼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도

명퇴대상의 세대가 된 것이다. 조기명퇴는 이 40-50대가 겪어야 할 수난이다.

 

지금의 사 오십대가 지출하는 돈중에

자식에게 전부 지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국가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교육에 지출했다고 따로 상주는 법도 없고 잘했다고 감사패 주는 일도 없다.

그럼에도 우린 그렇게 교육에 몸바쳐 돈바쳐 안하면 무슨 큰 체면이 떨어지는  이상한 허례허식에 주입이 된 세대가 된 것처럼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건다.

 

사교육 과잉공급에 수요가 남아도는 공부를 비싼 돈 주고 시키는 셈이다.

정작 지금 가장 필요한 중소기업에 대졸자보다 생산라인에 우선적으로 투입해야 할 노동력이 부족하니 외국에서 노동력을 수입한다.  이상한 것은 이 실업자들 통계지수다. 조만간에 몇 백만 되니 마니 실업자 통계치를 애써 모르는 척 피해야 한다. 그 중에 사 오십대의 등골빠지게 피나게 번 돈, 즉 공교육보다 더 비싼 사교육을 혜택을 입고 졸업을 앞둔 취업재수생을 굳이 실업 통계치에 넣을 필요가 있을까? 안 봐도 비디오 다큐멘터리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졸업을 자꾸 미루는 대학생 몇 명일까 물어보면 정말 사오 십대 학부모 가슴에 염장 질르는 거다. 취업도 재수해야 하는 지금 이 마당에 재수는 돈 안들고 하는가?  이런 현실은 무슨 SF 공포영화도 아닌데, 어찌된 일인지 애들 보는 만화책보다 더 흥미가 진진한 이유가 따로 있다. 불 보듯 뻔한 결과에 나만 피해 가면 그만이다라는 사고방식에 이게 문제다. 이기주의가 나만 피하는 것 같아도 참 여러사람 죽고도 모자라 대대손손 유산처럼 물려주고도  아예 깊숙히 뿌리를 내려 그 기득권을 절대 포기 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의 교육의 바탕에 이런 것을 은밀하게 가르치고 있는 줄 모른다. 일종의 세뇌교육이라면, 뭐 눈에 뭐만 보인다고 한 옛말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현재 교육정책을 제일 먼저 제안한 사람이 과연 누굴까?

지금의 수능정책을 몇 백가지 만들어 놓고도 정작 자신도 헷갈려 하는 지금의 대학입시도 내년가면 또 바뀌는 연중행사가 될 것이다. 정책은 일관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백년지대계인 이 교육정책을 누구의 맘대로 변경하는 것 같다. 그러니 자식을 공부한다고 학교를 보낼때 학부모는 무슨 공부하는지 그런 것을 관심두기보다, 등록금이 얼만지 졸업하면 취업이 잘 되는지 눈치보고 들어간 대학생 많다. 한 마디로 현재 교육정책에 전부 속은 것이다.

 

아무리 꿈을 꾸고 높은 이상을 가지라고 멋진 강연을 한들,그렇게 된 멋진 학생 몇 명만 놔두고 다 들러리가 된 것을 졸업식때 눈뜨고 확인한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남 상받을 때 의자에 앉아서 박수만 치라는 들러리 현 교육정책은 상류 1%에 모두 올인하게 하여 무조건 뛰게 하는 것을 소위 말 잘 만드는 사람들 표현으로 빌린다면 무한경쟁시대라고 한다. 심지어 누가 누가 더 건강하게 아프지 않고 오래사나 경쟁까지 합치면 과연 이 세상이 얼마나 씨끄럽고 황당무계한지 알만하다.

 

좀 더 안락하고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것도 괜찮고, 좀 더 좋은 세상을 가꾸고 살자는 것도 좋다. 그러나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내 생각이다. 대선 정책이든 공약이든 서민에 대한 배려나 공약은 한 번도 빠짐이 없이 단골메뉴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민의 교육정책은 전무후무하다. 오죽했으면 존경하는 정치인은 없는데, 그나마 그 전설적인 과외금지 교육시대를 그리워 했을까. 다시 그 때 그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나는 그 때 그 덕분에 너무 잘 놀아서 지금 노는데 아무 한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은 못 놀아서 노는 중독에 빠진 애들이 너무 많다. 솔직히 그 땐 너무 먹고 사느라 바빠, 대 부분 학부모들이 애들교육에 전념하여 치맛바람 일으킨 학부모 몇 몇 이었는데, 그 중 울엄마는 내가 공부를 잘 해주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저 학교만 다니게 하는 것도 감사하다고 하셨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은 반드시 있다. 무엇이 어떻게 어디서 뒤틀리고 문제가 발생했다면 문제해결에 중점을 두는 것이 주제인데, 주객이 전도가 되버린 시대에 정작 주제인 사람보다 더한 돈이 주제가 되어 이 세상의 주인은 사람이 아닌 돈이 된 것이다. 사람으로 사는 삶이 뭐냐 이게 주제가 아닌, 그저 명문대 나와서 누구보다 그럴 듯하게 권위와 많은 소유만이 목적이 되었으니까 이런 교육시대에 돈 없이 아이들 키우거나 양육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먼저 사람났지 돈났냐식이던 과거에 이젠 이렇게 뒤바뀐 요점정리를 왜 이렇게 사설이 기냐면, 나도 자식과 함께 같이 이제부터 늙어 갈  세대이기 때문이다. 옛날엔 자식이 전부였다는 시대에 효가 발달했지만, 그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부모가 너무 일찍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시어머니 100세 며느리 80세 진짜 많다.  자식이 나이들어 환갑이라고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전화가 왔는데. 이거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 고민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의외로 많다.  오래 살아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 인생 누가 그렇게 오래 살 줄 알았나, 당신의 자식이 환갑이 될 때까지 자식 인생 따로 있고, 당신 인생 당신 스스로 살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젠 앞으로 같이 늙어 갈 자식에게 전부 올인하면 말짱 꽝이다. 말이 그렇지 아무리 자식이 잘 해준다고 해도 부모자식간에 주고 받기를 못하면 그야말로 서로 짐이 된다. 부담이 되는 관계는 남보기도 애처럽다. 남녀간의 연애도 쌍방이 주고 받는 것처럼 부모자식의 관계도 늙은 부모라고 일방적으로 받고 자식이라고 무조건 준다는 것을 한 사오십년 하면 그야말로 그 결과는 절대 보장할 수 없다. 아까 말했지만 지금은 사람의 가치관이 주제가 아니고 돈이 주제가 되었으니까 부연설명이 귀찮다.

 

그러니 지금의 4-50대는 애시당초 자식에게 건 기대를 한 50% 절감해야 한다. 그리고 공부도 본인에게 선택하게 해야 나중에 뒷소리 안듣는다. 엄마가 거길 가라고 해서 갔더니 아무것도 안되고 되레 돈만 엄청들고 시간은 시간대로 축나고 그렇게 엄청 후회하는 집 부지기수다. 그 당시 인기학과에 적성검사도 없이 점수만 맞춰 들어간 학과에서 적응하지 못해 자퇴하는 학생들 말을 들어보면 학교 선생님이나 엄마가 거길 들어가야 나중에 취직이 잘된다고 했다나. 참 해도 해도 이 놈의 대학교육 정책은 너무 했다. 어떻게 무슨 공부기계 하나 졸업시키고 어느 과가 문제가 아닌 명문대 몇 명 갔나 고등학교 실적을 올려 줄려고 한 진학에 땅을 치고 통탄해야 하는데. 아직도 지금 이런 일이 당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누구하나 시정요구나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이 더 기가 막힌 일이다. 그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서 월 몇 백만원 짜리 사교욱비를 누가 벌어 갔다 주느냐 바로 사오십대다. 진짜 정신 차리고 잘 따져 봐야 한다. 학원비 많이 지출해야 중산층이 된다는 말을 듣고 어떤 교육이 이 지경까지 끌고 왔나 참 많이 수고했다.

 

솔직히 명문대 나와서 정치하는 사람들 난 절대 존경하지 못한다. 차라리 지방대 나와서 기술개발에 힘쓰며 박봉인 연구비를 절약해가며 모자른 공부를 하는 교수들을 존경한다. 좀 공부 잘 하거나 학벌 좋으면 모두 해외로 빠져 나간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 부모는 해외교포를 만들려고 있는 돈 없는 돈 빚져가면서 키워 준 것이다. 나 하나 잘 살자고 공부 잘하고 돈 많이 벌고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절대 혼자서 이룩할 수 있는 공부는 아니다.  공부는 사는 동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졸업장을 받고 싶으면 학교를 입학하면 그만이고, 혼자 사는 것이 소원이 아닌 이상, 평생 사람과 함께 사는 동안 소통의 방법도 부단히 익혀 둬야 한다.

 

요즘은 일부러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도 시간을 내야 할 만큼 무지하게 바쁜 세상이다.

표현을 안하면 모르쇠로 일관해도 탓이 안되니, 말 배우듯이 상대의 말도 들어주는 법을 따로 익히지 않으면 가족간에도 불통이다. 이것 만큼 답답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만은 굳이 뉴스나 신문에 안나와도 너무 많은 사례다. 사교육까지 동원하여 비싸게 돈 주고 배웠다고 공부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전에보다 더 많은데, 가족간에 대화가 안통한다는  이것도 정말 이해가 안 된다.

 

결론은 내야 겠다.

자식에게 전부 걸지 말자.

자식에게 전부 걸지 않는다면 내 인생이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다시 시작하는 내 인생에게 자화자찬 해줘야 한다. 자식에겐 엄마만 필요하겠지만, 엄마인 나는 자식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다. 사람 앞 길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내 인생 내 앞 길 내가 개척할 수 밖에 없다.

누가 나를 칭찬해 주길 원하다면 기다림에 지쳐 자포자기한다. 그래서 우울한 날을 살다가 우울증 걸린다. 이것 만큼 불행한 인생 없다.

나에게 나를 칭찬해주는 데는 무제한이다. 무제한 공급으로 칭찬 해주면 사라진 자존감이 되돌아 온다.

가르치는 자식이 있다면 교육 가계부를 써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결산을 내어 자식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부모가 나를 키울때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 확실이 안다.

부모는 어디서 그냥 돈을 들고 온 줄 안다.

구체적으로 사실을 고지해야 한다.

얼마나 힘든지 알려 주고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고생도 일부러 겪게 해야 한다.

부모세대가 어렷을 땐 누구나 다 고생한 세상이다. 따로 고생을 할 필요 없는 전쟁과 가난을 동시에 함꺼번에 모두 다 짐처럼 짊어지고 살아 낸 세대다. 그러나 지금의 자식의 세대는 그 때 그 시절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두 번 말하면 잔소리가 된다.

이런 과정은 부모를 다시 생각하고 경제적 관념을 정립시켜 주는 가정교육이다.

EQ,IQ 아무리 높아도 돈 쓸 줄 모르는 금맹이면 평생 돈고생만 한다.

시대가 금융지수도 요구한다. 그러니 그 만큼 공부해야 하는데 

학교에선 절대 하지 못할 교육이다. 사교육은 두말 할 나위 없고.

 

어떤 신부의 강연을 들은 적 있다.

당신을 20년 키워줬는데, 신부가 되어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린지 16년이 되었단다.

20년 키워준 것을 생각하고 그렇게 앞으로 4년 남았는데

아무리 봐도 앞으로 2-30년은 더 용돈을 드릴 것 같단다.

신부님은 그래도 솔직한 편이시다.

당신 키워 준 기간을 계산하시고 그렇게 부모님에게 용돈을 물가변동에 따라 올려 줬는데, 말이 그렇지 그 신부님도 곧 노후가 올텐데 같이 늙어 가게 생겼다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마냥 자식에게 기대는 노후수명은 전혀 달갑지가 않은 것이다.

나이는 가속도가 붙는다. 벌써 올 해도 다 갔다.

더군다나 대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정말 이 번엔 정신 바짝 차려 내 노후가 과연 어떻게 될지 안 따질 수가 없다.

 

오년 대통령하다가 임기 다 되면 떠나면 그 뿐이지만,

국민인 우리는 죽을 때까지 또 몇 명의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 번 만큼은 장기적인 안목까지 두고 확인하고 따져 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