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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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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는 느리게 늙는다


BY 천정자 2010-04-11

언제부터  인지 모르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숫자에 시달렸다.

특히 13개의 번호는 바코드처럼 막대기도 되고 그러다가 가늘어 진 긴 부호로

나에게 외우라고 그것도 빨리 외우라고 한다.

운전면허증을 보니 일련번호로 표시 된 나를 보니 이 사람이 누구인가 나를 보고 놀랐다.

 

물론 난 그동안 주민등록번호에 그렇게 많은 뜻이 담긴 줄 몰랐다.

나의 태어난 날을 포함, 어디서 몇 번째로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까지

모두 숫자에 농축 시켰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 보다 더 정확하게 잘 파악을 하고 있는 숫자의 분류번호였다.

 

누구의 책상서랍에서 일련번호로 죽 세워놓고 필요하다 하면 즉시 즉시 검열이 되는 나.

누구의 눈빛같은 카메라가 나를 몰래몰래 찍을 때 누군인 줄 모른다고 하면 주민번호를 눌러대면 이름부터 취미까지 모두 발각 되는 것. 

이런 상황을 알게 되면 기분이 아주 나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난 주민번호없어도 나를 표시하고 싶다.

이름이 아니더라도 이름이 없더라도 당당히 공기를 주입하며 폐로 숨쉬는 어느 여름날의

청개구리 영역만큼이나 나의 영역은 같기 때문이다.

1회 500cc 공기를 주입하며 하루 몇 만씨씨의 공기가 필요하며

돈이 없어도 충분히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다.

일명 청개구리가 아니더라도 그들의 세계는 주민번호가 굳이 없어도

불편한 세상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 것이 더 부럽다.

 

논 바닥에서 그토록 목숨 내놓고 구애를 하는 수컷의 개구리만큼이나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태어 났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  언젠가 죽어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살고있다.

 

나는 지금의 출산 장려운동에 힘입어 태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둘도 아닌 오로지 하나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시대에 분명히 사람의 사랑에 열정적으로 수 조억 개에서 단 한 개의  정자의 선택에 난자의 허락에 내가 태어난 존재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확률를 따진다면  어마어마한 확률이다. 아마 로또 당첨율보다 더 확률이 높았다. 그럼에도 어찌 누구의 편리한 구분에 한 획이 그어지고 구별에 차별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기껏 그런 분류를 잘해서 헷갈리게 하지말라고 우리는 죽을 때까지 경비를 부탁하는 것과 같다.

 

  왜 태어나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대열에 끼이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라고 멸시하며 우습게 본다. 그러면서도 개인 및 나를 모르게 과대망상증 아니면 자존심을 굳쎄게 한 허영심에 불타게 하는 특별한 소비자로 치켜세운다. 여기에 아주 필수적으로 구별해야 하는 방법이 바로 주민번호인데. 그래서 주민번호는 내가 전부 아니다. 그저 그런 기관이나 선거철이나 교육용으로 이용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첫 번째  다행이라면 난 이런 기관에 그다지 노출이 좀 덜 하다.

난 대학을 다니지 않아 어느 대학교를 졸업했냐고 조사를 한다면 내 주민번호가  등재 되어 있는 대학은 없다. 물론 거짓으로 안 다닌 대학을 다녔다고 해도 그것은 그 대학이 전혀 모르는 일이다. 내 주민번호는 어느 대학 어떤 졸업생회람에 절대 없다. 그래서 난 자유스럽다. 이 사실은 누구의 학벌에 학력에 신경을 전혀 안 쓰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대학을 거쳤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소비자가 되기위한 모임이나 클럽에 가입하기 위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거기다가 비싼 회원비를 납입해야 하며 또 추가한다면 체계적으로 길들어지는 곳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 생각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자본주의가 득세인데, 어느 기업체가 요구하는 것 중에 아주 말 잘 듣게 하거나, 무조건 맹목적인 열성당원을 길러야 한다는 요구가 없인 대학에서 가르칠 것은 별게 없어 보인다. 하청업체가 대학인지, 주제가 빠진 교육은 아무 가치가 없디. 아주 가치가 없는 것을 과대포장하여 비싸게 파는 것이다. 이건 틀림없는 사기다.

 

  나를 잘 알아야, 즉 본인의 선택에 책임을 묻는 기본 인간의 문제를 다룬다면 또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부분은 능수능란하게 당첨이 잘 안되어 책임추궁도 못하게 하고 취업이 잘 안되어도 비인기 과목으로 몰아 부치는 전문적인 수법을 늘 사용하고 있다.

 

 두번째 다행인것은 난 어느문학이나  어떤 문단이던간에 아무 상관이 없다.

대부분 문학이나 그런 관계 된 일을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을 줄 모르지만 난 순수한 개인으로서 어떤 부류에도 끼거나 조직에 가담하지 않았다. 사실은 못한 것이다.

 

 무슨 응모전이나 공모전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주민번호를 제시하란다. 이것은 누구의 구별에 쉽게 되어야하고.보낸 작품은 당선이면 게재를 원칙으로 원고를 돌려주지 않지만. 그 외 응모 된 원고들은   스팸메일 삭제보다 못한 처지로 전락되는 것은 감수하라 하고, 보낸 원고는 당연히 쓰레기통에 들어가던 재활페지로 보내든 자기네들 맘대로다. 이 부분에 대해선 더욱 할 말이 없는 것은 어느 신인문인 하나 조목 조목 따지고 시대가 언제 변했는데. 아직 군사문화에 쩔은 문단에 대한 대항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평준화교육은 평준화문학을 대량생산하는 쌍둥이가 되었다.  난 이런 공모전에 절대 내가 아닌 주민번호만 보낼 수가 없었다. 특별한 게 아니다. 사람의 평준화교육의 결과는 다수의 차별을 유도하고, 간과하고 멸시당하는 것을 당연히 각오하게 하는 교육을 한다. 그 만큼 중독이 되게 하고 늘 세뇌를 당하며 사는데 이런 것이 눈에 보이지 않게 기술적으로 전문적으로 잘 감춘다.

 

 난 길들여지는 교육을 잘 받지 못해서 그런대로 다행이다. 머리가 안 좋아 외우라는 말과 같은 말을 , 같은 광고문구를 보면 벌써 골치가 딱딱 아프다. 잘 길들어져야 하는 머리였는데. 그게 코드가 맞지 않았으니 절대 거부한다. 길들여지면 내가 순수하게 뭐를 하고 살것인가? 이것에 대한 자발적인 선택을 하지 못한다. 장가를 가도 나중에 집을 사도 어디가서 물어봐야 한다.

나는 누군가를 평생 의자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피동적으로 수동적으로 살게 한다. 그럼에도 원천적인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전혀 짐작도 못하게 한다. 참으로 무섭다. 이런 것을 교육이라는 보기 좋은 말로 가르치는것이고, 여기에 합류하지 못하면 제외시킨다. 

 

 소위 많이 배웠거나 못 배웠다는 뜻은 누군가의 리모콘조종에 즉시 즉시 바뀌냐? 안 바뀌냐의 차이다. 기업이 대학을 하청업자 취급한다. 말 잘듣는 부품생산이 주 목적이다. 이건 교육의 목표를 궤도수정하지 않는 한 절대 불변일 것이다. 그러니 대학을 다니지 않는 나는 이들의 말을 전혀 들을 필요가 없었다.  거기에 난 너무 굼뜬 느림보다. 경쟁적으로 느림보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굼벵이는 변태다. 이것은 나비가 우화를 겪어야만 한다. 하찮은 파리도 마찬가지고 잠자리도 모두 자신의 시간들 속에서 변태로 향한 길을 겪어 내야만 한다.

 

 대학을 못나와서, 아니면 의무교육을 받지 못해서 불행하다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이젠 못 나와서가 아니라 안 다녀서 참으로 다행이다라고 그런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 우화를 하여 첫 비행하는 잠자리를 보는 것처럼 가볍게 농담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