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여기 저기 찾아 다니지 않아도
우리동네엔 고택들이 많다.
한 삼백년 묵은 집부터 수세기를 버틴 흙담을 끼고 도는 집 근처에
산개울이 흩어져 새벽이 되면 땅향기가 촉촉하다.
처음엔 이 쪽에 이사올 적 만해도 내겐 적막 강산이었다.
도무지 재미도 없고 모두 시시한 애기들만 널부러져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도 심심해서 그 땐 할 수 없이
마른 흙벽에 낙서를 하고 돌아 다녔다.
누구는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네는 연애한다는
일종의 고발처럼.
첫서리를 기다려 그제서야 찡그리 듯 미간이 풀어지는 산국화가
혼자 바람에 읽혀지는 동네.
어느새 그 낙서장이가 나이먹어
동네에서 가장 오래 묵은 그림자 그늘 끝에 앉아서
가을 햇볕에
등 데우고 있는데
겨울은 그렇게 만만하게 덤벼오지 않을 터였다.
온 산이 썩은가지를 스스로 분질러
대륵 데륵 굴러오는 장작개비로
굴뚝의 흰 안개로 돌아 갈 때는
분명히 겨울이었을 것이다.
난 언제인 줄을 모를 그 계절을 산책하고
또 걸었다.
한동안 띄엄 띄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