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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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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나 삶지


BY 모퉁이 2010-07-24

"국수나 삶지"

주 5일 근무가 시작되고부터 바짝 더 자주 듣는 소리이다.

주말 이틀의 여섯 끼가 성가실 때가 있다.

하루에 두 끼만 먹자를 외치면서 일주일 중에 이틀을 다른 사람들은 쉬는데

주부는 쉬는 날이 아니라며 식사불평을 하는 내게 남편이 쉽게 하는 말이

이‘국수나 삶지’라는 말이다.

예전에 토요일이 오전 근무였을 때, 젊은 시절이기도 했지만

퇴근길에 늘 사람을 잘 달고(?)오는 습관이 있어서

나는 자주 점심시간이 분주했었다.

뭘 딱히 잘하는 것도 없는데다 준비된 재료도 없는데

식사시간에 맞춰 손님을 데리고 오면 참 난감했다.

아무리 우리 먹는 상에 수저만 한 벌 올리면 된다고 하지만

남의 식구와 은근 신경 쓰이는 것이 이 식사시간인데

남자들은 그것을 참 간단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다.

반찬도 없고 시장에 다녀오긴 너무 멀고

점심 한 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냉장고를 뒤집어보니

몇 가지 먹다 남은 채소나부랭이들이 있어서 그것을 썰어 넣고 급하게 만든 것이

비빔국수였는데 그게 어쩌다 남편의 입맛에 맞았는지

손님의 입맛은 고려치도 않고 그만 마누라가 만든 최고의 국수로 점수를 줬다.

평소에도 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을 참 좋아하는 남자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부침개 같은 주전부리는 안한다고들 하지만

우리 집 남자는 가루음식은 죄다 좋아한다.

뭐 특별히 가리는 음식도 없지만

그 중에서도 국수를 참 좋아 한다는 것을 안 것은

비빔국수를 맛나게 먹기 전부터였다.

신혼시절이야 뭔들 예쁘지 않았을까 만은(ㅎㅎ)

서툰 음식도 잘 먹어주어 내심 잘 하는 줄 알았었는데

그게 그러니까 사랑이었다나 뭐라나.

동태찌개가 맛있다고 하는 바람에 툭하면 동태찌개를 해대자,

뭔 소리를 못하겠다며 맛있다는 소리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

국수만큼은 맹물에 김치만 올려줘도 맛있다고 하는 사람이다.

팅팅 불은 국수도 후루룩 먹어주고,

특별한 고명 없이 양념장만 올려줘도 먹어주고,

김치 송송 썰어 올려주는 센스(?)라도 발휘하는 날이면 더 좋아 한다.

그런데 나는 그 국수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다보니

국수 삶는 일이 사실 귀찮다.

국수가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그리 간단한 음식이 아니다.

삶아야지, 고명 준비해야지, 국물 우려내야지,

시간이 걸리는 음식임에도 우리 집 남자는 아주 쉽게 말한다.

“국수나 삶지?”

해서 육수 우려내고 고명 준비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대충 썰은 채소들을 섞어 비벼내는 비빔국수를 후딱 해내곤 하는데,

이게 아이들이나 내 입맛에 오히려 맞아서

물국수 대신 비빔국수를 자주 해먹게 되었다.

-냉면집에 가서도 남자는 물냉면 세 여자는 비빔이나 회냉면을 시킨다.

유일하게 세 여자가 의견일치를 볼 때가 냉면 정하기 때 같다.-

특별한 방법은 없고 내 특기가 있는 대로 넣고 하기다.

굳이 없는 재료를 일부러 사와서 하기보다 있는 것만 넣고 내 맘대로 주무른다.

어찌 보면 아주 성의 없는 요리인 셈이다.

몇 가지 중에 한 가지 정도는 빠져도 상관없다.

양배추가 안 들어가면 어때, 오이나 넉넉하게 넣지,

오이가 조금 부족하면 어때, 상추 몇 닢 더 넣지,

살짝 시들어가는 깻잎도 물에 담가놓으니 슬그머니 살아 나구만,

청양 고추는 최대한 잘게 다지자,

요리라 할 것도 없이 대충 주먹구구식으로

고추장에 매실원액과 식초로 간을 맞추고

마지막으로 참기름 찔끔 넣고 통깨나 술술 뿌려주지 뭐.

대개는 이런 식이지만 우리 집 남자는 비빔국수를 양푼이 채 들고 앉는다.

딸내미들은 라면 하나를 먹어도 제대로 된 그릇에 옮겨 먹는 대신

남자는 국수만큼은 비빈 양푼이를 그대로 받아든다.

처음엔 야무지지 못한 마누라 같아 싫다 했는데

지금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그냥 준다.

 많이 보아온 모습이라 싫다 좋다 도 없다.

주말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주는 대로 먹은 아침이 충실치 못했을 것이다.

미안함을 국수로 메워야겠다.

미리 멸치육수를 올려놨더니 덥기는 하다.

애호박이 언제 저를 써먹을라나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송송 썰어 살짝 볶았다. 계란지단도 구웠다.

구운 김 사다놓은 거 한 봉지 풀어 부셔야지.

매운 고추 송송 썰고 참기름 한 방울 넣고 양념장을 비벼놓았다.

열무김치가 적당히 익어서 그것도 한 보시기 담아놓았다.

이렇게 특별한 것 없는 고명이다.

이제 국수만 삶으면 된다.

오늘은, “국수나 삶지?” 하기 전에 내가 먼저

“국수 삶아줄게”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