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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그리고 장화


BY 모퉁이 2010-06-30

어제 종일 허텁지근하더니 새벽에 비를 뿌린다.

후두둑거리는 소리에 일어나 열어놓은 창을 닫으니 집안이 습기에 더위에 무겁다.

주춤하던 장마가 다시 이어질 모양이다.

옆집 꼬맹이는 학교 가는 아침에 심술을 부리는지 엄마가 부르릉 시동을 건다.

거기다가 늦었는지 빨리 타라는 엄마의 호령이 집앞 주차장에서 쩌렁 울린다.

남의집 아침 풍경을 훔쳐 듣다가 우리집 베란다에 낯선 신발 하나를 발견한다.

오래전 아버지의 검정장화를 닮은 신이다.

올해 장마는 국지성 호우가 예상된다는 뉴스를 보면서

장화를 마련해야겠다던 딸아이가 기어이 장화를 산 모양이다.

고무냄새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엊저녁에 사다놓은 낌새다.

요즘은 비 오는 날이 아니어도 패션화로 신는다고 한다.

샌들을 신어도 무좀이 생길판인데 길다란 장화라니 원,,,보는 사람 눈이 더 덥겠다.

하긴 한 때 여름에도 부츠가 유행이었고 길다란 니트의류가 유행이란 이름으로

팔다리가 고생한 적도 있었지.

 

딸아이가 어릴 때에는 장화와 비옷을 챙겨 주었다.

노란 비옷에 분홍장화를 신겨 학교에 보내곤 했는데

요즘은 듣자하니 비옷을 입고 오는 것을 학교에서 반가워하지 않는단다.

우산은 우산꽂이에 꽂아두면 되지만

비옷은 접어서 챙기는 일을 아이들이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생님 손이 가는 일이라 그런다는데 엄마들이 하는 말인지 사실인지 모르겠다.

선생님을 뭐라하기 전에  아이들이 제 손으로 제 비옷을 접고 챙길수 있게

엄마들이 지도를 해서 보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요즘 세대와 멀어진 나는 이쯤에서 함구해야 될 일다.

아무튼 비옷은 접어두고, 장화는 내게도  사연이 있다.

다섯자매 나란히 나란히 학교에 가는 날이면

우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집에서 비옷이나 장화는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살이 부러지고 녹이 슨 우산 하나에 언니와 둘이 얼굴만 들이밀고

서로 양쪽 어깨는 반쯤 젖은채 학교에 갔다가 하교시에는 서로 시간이 맞지 않으면

 하나는 필시 빗속을 걸어야 했던 적이 있다.

언니들은 말이 없는데 나는 시위하듯 장화를 사 달라고 졸랐지만

장화는 쉽게 살 수가 없었다.

누구는 장화신고 누구는 고무신 신겨 보낼수가 없던 엄마의 마음도 모른채

나는 몇날을 보채고 졸라 결국 검정색 장화를 한 켤레 얻게 되었다.

에나멜을 칠한 듯 고운 광택이 나는 검정장화.

장맛비가 내리면 운동화는 젖어 겨우 방이나 말릴려고 아궁이를 지핀 부뚜막에서

하룻밤을 재워도 축축했었고,그럴때마다 장화타령이나 운동화라도 한 켤레 더 사주지 않는 엄마에게 삐죽댔다.

그렇게 몇 날을 불러댄 노래 덕에 나는 장화를 얻어 신는 횡재는 했건만

그때는 이미 장마도 끝나고 여름방학에 들어설 때였던지라

장화는 몇 번 신어보지도 못하고 신발장 맨윗칸에 혼자 서서 외롭게 지내다

계절이 바뀌자 슬슬 노화가 오는지 고무가 갈라지고 광택도 사라지고

결국은 장화보다 운동화를 살 걸..하는 후회를 남기고 장화의 생명은 그닥 길지 못했다.

지금도 장화를 보면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 혼자 웃곤 하지만

그때 내게 장화는 최고의 로망이었다.

 

물일 하는 사람이나 어부들의 전용신발처럼 되어버린 장화가

요즘 다시 젊은이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모양도 예전처럼 검정색 흰색으로 일관되지 않고

다양하다 못해 어지러울 지경으로 패션화가 되었다.

모든 것이 진화되는 요즘, 장화라고 가만있을까.

며칠전 보았던 호피무늬의 감각적 장화가 아주 인상적이긴 했지만

내 딸은 그닥 과감한 선택은 못하고

무난한 아주 무난한 짙은 감색을 선택했네.

신발은 투박한데 문양은 앙징맞게도 물방울 두 방울 떨어져 있는 장화를

한참 쳐다보고 있는 동안 비는 그치고

하늘만 잿빛에 싸여 장화에 그려져 있는 물방울을 가득 머금고 있다.

그래도 까치는 울어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