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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떡 먹고 쑥덕쑥덕


BY 모퉁이 2010-04-14

4월 날씨가 45년 만에 가장 추운 날이라 한다.

이제사 피기 시작하는 목련이 화들짝 놀라 까맣게 먹물 들겠다.

세탁소에 맡겼던 겨울 옷은 아깝고 목도리나 대충 하나 더 걸치고 집을 나서본다.

대충 걸친 목도리보다 더 대충 바른 낯이 민망하긴 하지만

썰렁한 날씨 탓인지 거리에는 사람도 별로 없어

아는 사람 만날 확률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비둘기 똥 맞는 일보다 낮을 것 같다.

은행에 들러 통장정리를 하고 (흡~통장에서 딸랑이 소리가 난다.ㅎㅎ)

약국에 들러 잇몸약을 하나 사고

때 아닌 고구마 타령을 하는 큰딸을 생각해서 고구마도 사고,

나무새 몇 가지 샀는데 집에 와서 풀어보면 먹잘 것도 없을 것들이

무게만 나가고 팔만 아프다. 그리고 춥다.

대충 단장한 몸만큼이나 장보기도 대충하고 돌아오는 길에

방앗간 떡집 앞에 내 놓은 쑥떡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오늘은 어째 전부 대충한 일 밖에 없나.

점심도 대충 한 술 떴더니 배도 출출하고  날씨는 썰렁하고

집에 가도 먹을 만한 군것질거리도 없을 테고,

에고.. 나 이렇게 배 고파가며 장 봐서 아침저녁 상 차리는 거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 테고, 뭐 쑥떡 한 봉지 사 먹는다고 살림 거덜 냈다는 소리는 더더욱 안 할 테고.

그렇다고 자장면을 사 먹을 정도는 아니고,

그래...쑥떡이나 한 팩 사자. 집에 가서 먹자.

시장 통에서 몇 군데 단골을 꼽으라면 몇 번째 손가락에 꼽힐 떡집에 문을 여니

안 사장님은 안 보이고 바깥 사장님이 평소 그답지 않게 시리 멋쩍은 표정으로 눈으로 뭘 찾느냐고 묻는다.

“쑥떡 하나 주세요.” 하고 보니 사장님 오른 손에 젓가락이 들려 있다.

“이제 점심 드세요. 싸모님은 어디 가시고 혼자 드세요?”

“허허..마누라 놀러 갔슈. 그래서 라면 끓이는디 계란도 넣고 끓여유.

두 개....참...파도 넣었슈.“

느릿느릿한 말투가 하나 급한 것 없어 끝까지 듣자하면 엄청 길어지는 떡집 사장님이다.

“아...나 일러줘야지..사장님 계란 두 개 넣었다고...”

“흡~말 하지 마유. 마누라 한티 혼나유.

지난번에 쩌그 00이 할매 차 한 번 태워줬다가 나 맨홀에 갇힐 뻔 했슈.

아..이 마누라가 글씨 나보고 아무 여자나 태운다고 맨홀 속에 들어가라 하잖유.

우리 마누라 덩치 알쥬? 으휴~나 무서워유~~말 하지 마유?“

설마 라면에 계란 두 개 넣은 것과 할매 차 태워준 거랑 같은 벌을 주실까.

 흐흐..처음 듣는 말도 아니고 맨 농담이란 걸 안다.

쑥떡 한 팩을 이천 원을 주고받아 들고 와서는 시장가방 냅 던지고 혼자 앉아 우적우적 씹어 벌써 세 개나 먹었다.

쑥떡 속에 하얀 팥소는 내가 좋아하는 고물이어서 맛이 좋다.

 철 지난 쑥이 쑥쑥 자라서 제멋대로 흩어지면

엄마는 칼도 없이 손으로 뚝뚝 쑥을 뜯어 와 삶고 씻어 허연 쌀가루 버물러

얼기설기 쪄 낸 쑥설기를 해주거나 날 밀가루에 묻혀 쪄낸 쑥버무리를 해주곤 했다.

어린쑥일 때는 쑥국도 좋지만 조금만 때가 지나면 쑥이 질겨서 국보다 떡이나 버무리가 제격이다.

충청도 어느 골짝에 잠시 살 때 쑥과 쌀을 같이 갈아  꼽꼽하게 익반죽을 해서

요리조리 손으로 모양내어 빚어서 찐 쑥개떡을 얻어 먹어보고는 그 맛도 가끔 생각난다.

잘 쪄진 쑥개떡이 한소큼 식으면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실실 발라야 윤기도 나고 맛도 있다.

몇 해 전에는 같은 생각을 한 이웃과 쑥을 뜯으러 참 멀리까지도 나갔었다.

나들이 삼아 나간 일이긴 하지만 하루 종일 판 품을 생각하면 참 비싸기도 한 쑥이었다.

손끝에 검정물이 한 동안 지워지지 않아 지저분한 채로 쑥개떡을 빚어 냉동실에 넣었다가 출출하거나 누가 오면 쪄서 나누곤 했는데 그 이야기를 엄마한테 했더니

어느 들로 산으로 쑥을 찾아 헤매셨는지 삶아서 얼린 쑥 덩어리를 택배로 보내셨다.

아~~엄마~~무슨 말을 못 해.

‘내가 해 줄 끼 어데 있노. 쑥이야 밖에 나가모 천진데..돈 드는 것도 아이고 내가 이것도 몬 해 주건나. 또 필요하나? ’

나도 쑥을 캐러 다녀봤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허리 아프지 다리 아프지..뜯어 오면 검불댕이 골라 다듬어야지,

불에 올려 데쳐야지. 씻어야지....하루 왠 종일 일이더만.

 

'느그 오믄 떡 할라꼬 쑥 얼라 놨다.'

어쩌면 엄마 냉장고에는 묵은 쑥 덩어리가 꽁꽁 언 채 해동 될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쑥 있냐고 물으면 당장 쑥 뜯으러 간다고 일어날까봐 묻지는 못하겠고

남은 쑥떡 집어 들고 한 입 크게 베어 본다.

아....변덕스럽게도 그 사이 입맛이 변했나.

아까 그 맛이 아니고, 오래 전 그 맛은 더더욱 아니다.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