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장이라곤 울퉁불해서 넘어졌다 하면 무릎을 까기 쉽상이고 그렇다고 불도져가 와서 반듯하게 만들어 줄 것 같지는 않았고 4학년 이상부터는 오후시간에 운동장 고르는 작업을 해야했던 아이도 어른못지 않게 고단한 시절이 있었다.
내 나이 이제 마흔하고 일곱에 들었으니 햇수를 꼽아보니 35~6년 전 일이기도 하다.
교정은 본관이 있고 후관이 새로 생겼는데 후관 뒤에 정리되지 않은 운동장을 어린 우리가 고르고 다듬는 일을 했어야 했다. 점심이라고는 후딱 집에 가서 식은밥 한덩이 먹고 와서는 삽을 들고 온 아이와 대야를 들고 온 아이들이 서로 조를 짜서 흙을 퍼 담아 주면 대야로 나르는 일을 직접했었다. 지금은 그런 일을 시키지도 않겠지만 우리는 학교를 위한 일이고 선생님이 시키는 일이라 부모도 학생도 아무도 군말없었고 일하다 흙으로 장난을 쳤을지언정 반항을 하거나 대꾸하는 일은 없었다.
그날도 작업을 하기 위하여 대야를 가지고 가야했는데 엄마는 내게 쭈그러진 양은 세숫대야를 갖고 가라고 하였다. 어차피 흙을 담을테고 좋은 거 소용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리지만 여자라고 그것이 부끄러웠다. 없는 집 표시나는 것 같아 더 싫었다. 엄마 몰래 새로 산 빨간색 프라스틱 세숫대야를 갖고 갔다. 색깔도 이쁘고 무엇보다 찌그러지지 않아서 좋았다.
조심스럽게 흙을 퍼 나르는 일을 몇번인가 했는데 누군가가 심하게 던진 흙 무게에 그만 빨간 대야가 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그날 나는 작업도 제대로 못하고 그릇만 쪼개먹고 엄마한테는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야단을 맞았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것이 플라스틱 그릇이고 그것도 쉽게 깨어지지도 않는데 그땐 그것도 귀해서 목욕 갈때 수건이나 담아 들고 가던 흙 퍼담기는 아까운 그런 물건이었던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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