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부드러운 봄바람이 이맛전을 훑지만 가슴속을 후비는 얼음덩이는 아직도 녹을 줄 모른다.
항상 마음 가까이에서 의지가 되었던 무형의 힘에 이끌리고 싶은 충동에 절(寺)을 찾는 사이비 신자지만 지금 이 시간만큼은 독실한 신자로 변신하고 싶어진다.
五體投地의 자세로 엎드려 마음속 티끌 몽땅 비워놓고 홀가분하게 산을 내려오고 싶었다.
그래서 부석사(浮石寺)를 갈려고 서둘러 준비하다가 무심코 베란다를 내다보던 난 '아!' 하는 탄성을 쏟아냈다. 내가 사는 곳하고 이웃한 A市의 그분하고 오늘 만나는 날이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약 5년 전에 '蘭' 동호회에서 알게 된 蘭애호가 T氏.
우연히 그분 닉네임이 맘에 들어서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여자인줄 알고 대화를 했었다.
대화명이 蘭이름이었던게 여자로 착각한 이유였지만 대화 자체도 매우 부드러웠고 깍듯했다.
전국단위의 모임이었지만 내가 사는 곳하고 멀지 않아서 더욱 가깝게 느껴졌던 사람이다.
3년 전에 그분에게서 蘭 전시회 초대장을 받았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어쩔까 망설이다가 교편잡고 있는 대구 토박이 친구를 불러냈다.
' 이 문디가..........'로 車 가진 줏가를 올리던 친구는 쾌히 승락을 하고 따라 나섰다.
처음으로 얼굴 마주한 그분의 인상은 아담했지만 난초같이 정갈하고 조용했다.
나의 방문에 저으기 놀라는 눈치를 보였지만 몹시도 반겨 주었다.
전시회장은 성황을 이루었고 그분을 찾는 사람들이 모두 그를 보고 예를 갖추었다.
전시회를 주관한 사람이라는 것도 거기 가서 알았지만 베일에 쌓인 그의 직업은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대화 중에 언뜻언뜻 비치는 그분의 냄새는 보안을 필요로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게 감지되었지만 물어 볼 수도 없었고 또 물을 필요도 없는 군더더기 질문 같아서 그만 두었다.
간단한 차 대접을 받고 돌아오는 나에게 크다란 종이 백을 내 밀었다.
"어쩌면 오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준비 해 둔 蘭입니다. 잘 키우세요"
참으로 따뜻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항상 나를 어려워 했고 말 한마디라도 정중하고 예의가 발라서 오히려 내가 주눅이 들 정도였다.
그 날 이후로 그는 간간이 안부 전화를 했고 가끔씩 내가 사는 곳으로 출장이라도 오면 蘭이나 盆을 아무가게나 맡겨 놓고 가서는 전화로 일러 주었다.
혹시라도 내가 부담을 느끼거나 거절이라도 할까봐 배려한 속 깊은 행동이었다.
사적인 감정이나 욕심하고는 먼 거리를 두고 나를 대해 왔는데 해마다 봄이 되면 그분은 어김없이 전화를 해서 蘭안부를 묻고 필요한 건 사람을 통해서 보내 주기도 했다.
올해는 내가 먼저 전화를 했다.
그동안 그분이 준 蘭이 적지 않았으나 마르거나 병이 들어서 거의 전멸을 했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소홀히 대접한 내 책임이 크다는 걸 그분도 감지를 했는지 크게 웃는다.
" 이맘때쯤이면 이런 전화 받을 줄 알았습니다. 蘭이라는건 사람을 사랑하듯이 아끼고 돌봐야 합니다. 무관심하면 저절로 죽는 연약한 심성을 가진 게 바로 蘭입니다.".
자기는 '인사위원회'가 열려서 긴 시간 못 내겠으니 미안하지만 가지러 왔으면 했다.
10여분만에 차 한잔하고 곧바로 헤어져야 했다.
간단한 주의 사항과 요령을 설명하고 이젠 죽이면 다시 안 준다고 실효성도 없는 엄포를 놓았지만 내 손에는 그분이 전라도 어느 산을 뒤져서 캐온 거라면서 두 손에 들기도 무거울 만큼의 蘭이 들려 있었는데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잡초같이 흔하지도 않았을텐데.........
잘 키우면 진짜로 귀한 진품을 선물하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지만 짧은 내 상식으로는 꿈같은 일이다.
돌아오는 길에 蘭石을 살려고 화원에 들었는데 내 蘭을 유심히 보던 화원 주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값나가는 게 몇 개 있다고 귀뜸을 했다.
나는 세 가지에 대한 욕심이 많다.
첫째는 화초, 두 번째는 책, 그리고 세 번째는 음악 CD 나 테잎, ......
어느 집을 방문하던 내 눈은 항상 이 세 가지에 눈독들이다가 맘에 드는 게 있으면 떼를 쓰고 얻어 오거나 내 것하고 교환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이것은 모두 편안하고 만만한 집에서나 있음직한 일이지만 내 취향을 아는 친구는 자진 납부하는 센스를 보이기도 했다.
얻어온 蘭을 화분에 옮겨 심고 죽은 건 버리고 비실거리는 건 약을 주는 작업을 바깥이 어둠살이 끼일 때까지 하고 나니 이런 방면에 무덤덤 하던 남편도 내 열성에 혀를 내 두른다.
은근히 옆에서 돌도 집어 주고 盆도 날라주는 시늉을 했다.
넓지도 않은 베란다에는 온통 화초로 빽빽했지만 70여 개가 넘는 蘭을 가지고도 성이 차지 않는 끝없는 내 욕심에 나도 어이가 없어서 혼자 웃었다.
이건 버릴 수 없는 나의 욕심이 있다.
오죽하면 세 가지를 가지라면 무엇을 가질거냐고 물었을 때 이 蘭을 고집했을까.
상식도 없는 무식장이지만 사랑해 주고 아껴주는 맘 하나라도 있으면 그래도 절반의 상식은 가진 게 아니냐고 스스로에게 점수를 주고 싶어진다.
아침에 자고 나면 제일 먼저 안부가 궁금한 게 이 화초들이다.
봄이 시작되면서 여기저기서 동냥질 해 온 화초들이 제법 자리를 잡고 고개를 쳐들었다.
이름을 알려 주었지만 듣는 순간엔 곧바로 잊어 버려서 기억에 남는 이름이 없이 그냥 '꽃나무'이다.
지난주에도 큰오빠의 집에서 얻어온 게 꽤나 되었다.
차에 싣고 오면서 엎질러 질까봐 두발 사이에 끼어 넣고 오느라고 다리가 마비되는 줄 알았다.
난 이들이 좋다.
비록 대화를 나눌 수 없지만 마음속으로 교감만은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들 앞에 앉으면 난 아무 말이나 쏟아 놓는다.
태고의 신비를 잎줄기 하나하나에 얹어 놓은 듯한 무게 감을 느끼고, 이들 앞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정돈되는 편안함을 온몸으로 감지할 수 있어서 좋다.
정갈하고 거리낌 없이 뻗어있는 그들의 그 힘이 부러웠고 사랑 받은 만큼 돌려주는 그들의 정직함이 나를 매료 시켰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나를 버티게 해준 지지대였다.
그들을 위해서 때로는 음악도 들려주고 하루종일 이들 옆에서 난 쉬지 않고 움직였다.
구김 없이 뻗어 있는 잎사귀를 하나하나 닦아주고 이른봄에 올라온 꽃대를 잡고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힘들게 돌을 헤집고 올라온 연약한 新芽의 경이로움과 신비감은 나에게 크다란 흥분을 안겨 주었는가 하면 삶의 시너지효과를 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사람을 이토록 사랑했다면 난 세기의 사랑을 했을 거다.
지금도 난 그들과 함께 있다.
곁눈질 하다보면 그네들하고 눈이 마주칠 것 같은 착각을 한다.
그들은 웃고 있다.
이 화사한 봄과 더불어 오늘만큼은 게으름 부리지 않는 주인의 착한 모습에 만족스러운 웃음 웃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