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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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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에


BY 土心 2006-07-15

 

세상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이제는 두루 두루 시야에 담기면서

새삼 그네들의 앉은 인생 자리도 모두 예사롭지 않게 보여 진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 앉은 자리마다 가지가지 다양하게 구분 되는데

그러면 ‘내 자리는?’ 하는 물음이 수순처럼 따라 온다.

아마도 젊어서는 나만 바라보느라고 주변을 살필 경황도 없었나 보다.

그렇다. 어쩌다 보니 의지와 상관없이 내 나이가 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 있고,

살다 보니 어느 결 내 인생도 한 판 굳히기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고 여겨진다.

헌데 이를 감지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이 바빠지고, 기분이 우울해 지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혼란스러워 지는 걸 느끼게 되는데

이는 전형적인 못난이 군상의 못난이 증후군 아닌 가 그런 생각이 든다.


20년 친구가 서예 대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오늘 듣고 내 일처럼 기쁘다.

또래 지기가 뒤늦게 시인이 되어 문단에 데뷔 했다는 소식도 내 일 마냥 설레고 기쁘다.

전업 주부 마디 굵은 손과 굳은 살 배긴 가슴에서 어찌 그런 일이 가능 했을까 싶으니

친구라도 너무 대견해서 아낌없이 축하하고 부러워하고 격려 했다.

살펴보니 일찍부터 바깥일을 시작한 친구들은 한결같이 그 일에서 프로가 되어 있고,

한 자리에서 한 우물을 판 사람은 이제 각양의 마르지 않는 샘을 완성해 간다.

같은 길이의 시간을 물리적으로 공평하게 살았으되 줄곧 몰입하고 반복한 사람은

이제 확실한 획으로 세상과 역사에 존재 가치를 새겼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그런 힘들이 어우르고 모여 세상은 승계되고 다듬어져 가리라.


오늘은 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이 세상에 와서 남긴 흔적이라곤 생각하니 너희 남매 둘 밖에 없다.

내가 달리 내 몫을 따로 한 것이 없으니 너희들이라도 제 몫을 해야

내 체면이 조금 서지 않겠느냐...

허무하게 공밥 먹고 살다 갔다는 세상 빚쟁이는 되기 싫구나.“

엄마의 어이없는 말에 딸은 쉽게 긍정도 부정도 못했지만

경우 없고 비겁하다 해도 지금 이 심정으론 그렇게 세상 밖으로

숨고 싶고 달아나고 싶은 걸 누구도 이해 못 할 거다.


틈틈이 나를 향한 연민과 반성과 희망과 목표와 계획을 수시로 반복 각인하면서도

또 여전히 이렇게 하루를 닫는 시간이 되면

“아, 오늘도 내가 습관처럼 살았구나.” “길들여진 객으로 살았구나.” 하는

그런 공허한 맘으로 마감 되곤 한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하는 자부심도 상대가 있는 견줌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어느 누구 인생은 치열하지 않은 삶이 있겠느냐 하는 대목에 이르면 맥없이 부끄럽다.

어느 존경받는 공인도 책에서 보니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 허무할 뿐만 아니라

죄의식마저 느낀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뭔지,

하루하루 귀중한 삶을 낭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면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책을 소개 했다.

어느 누가 객관적으로 봐도 손색없는 삶을 살고 사회에 이익을 주고 존경받는 사람도

이런 회한을 토로 하는데 그럼 나 같은 사람은 도대체 어느 만큼의 고해성사라야

면죄부 받고 기를 펼까....잠시 쓰게 웃어 본다.


허나 그럼에도 원만하고 고요하게 깊어가는 이 밤이 난 참 소중하고 고마워서

속없는 인생 스스로 위로하며 부둥키고 있다.

내 앉은 자리가 겨우 한 뼘, 내 가족 울타리 안에 한한다 해도

이 하나의 보석(가정)이 전체 속에 꿰어 모가 나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인생은 살아 볼만한 것.’ 이라는 말 인용하며 의욕으로 삼아 보려 한다.

한 시대를 함께 살다 가는 동료 인생들...

이 거대한 역사 구조물에서 나도 나름대로 책임 맡은 한 조각 블럭임을 인식하고

그 한 조각의 소중한 역할 충실히 이행 하여 조화롭게 살다 가자는 다짐도

여일하게 하고 싶어 진다.

“난 엄마 딸인 것이 너무 다행이고, 감사해요.”

잠자리 인사로 남겨 준 좀 전 딸아이의 그 말 한마디로 기운이 나서 

‘그래, 내 인생 이대로 굳히기 해도 미련 없다’의 자긍심 간직하고도 싶다.

그렇지

무엇에든 남은 내 인생 미련 없이 올인 하고 가면 되지.

그래야지.....물론...

촌각도 아까운 오늘은 이렇게 해서 마음 안에 갈무리 된다.

 

밤이 많이 깊었다 


5. 11. 토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