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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둔 행복


BY 빨강머리앤 2004-10-20

일요일 단풍놀이를 다녀오고 오랫동안 단풍이 주는 강렬한 색감에 사로잡혀 있는듯 하다.그 단풍은 단순히 노랗다거나 혹은 빨갛다고 구분짓기에 너무나 모호한 아름다운 색감을 보여 주었다. 산야에 가득 펼쳐진 가을빛 속을 여행하고온 느낌이 지금까지 나를 강렬한 느낌속에 빠져 들게 한다. 그것은 일상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행복과는 다른 나를 현실에서 한발 정도 들뜨게 하는 특별한 행복이다.

세해를 ,그것도 가을에만 다녀왔다. 양양의 미천골, 태백산맥의 근간을 이루는 등줄기중 하나 그속에 숨겨진 보석같은 곳이 미천골계곡이다. 계곡도 깊어 여전히 물줄기가 힘차게 흐르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미천골계곡은 그리 눈길을 끌지 못한다. 계곡 이편과 저편에 가득 펼쳐진 찬란한 가을빛에 눈길이 가는건 그곳을 찾는 여행자의 소기의 목적을 자연스럽게 상기시켜 주는 일일 터이다.

나는 그 빛을 분명 보았지만 내가 본 가을빛에 대해 어떤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며칠동안 망설였다. 망설이는 동안에도 골골마다 단풍든 미천골의 풍광이 내 시야에서 아른거리는걸 느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곳에 섞인 나무들이 다양하리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 빛깔들이 모두 다른것에서 유추해 볼 뿐이다. 그 다른 나무들이 저마다 간직해온 색깔들을 가을햇살속에서 펼쳐보이는 빛의 향연은 실로 눈이 부실 정도였다.

나는 두해전 유치원생이었던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뱉었던 말을 떠올리며 더 이상 표현해 낼수 없는 한계를 절감했다. '엄마, 산이 그림 같아요' ... 두해전 그 그림같았던 산은 이제 더욱 그림 같은 모습을 그려놓고 우리를 맞고 있었으므로 나는 더더욱 표현해 낼 다른 말을 찾지 못하였다.

산은 단풍으로 절정이었다. 청미래 잎새에 깃든 노란빛, 그 찬연한 노란빛이 아직 초록색을 띤 연두빛 나뭇잎과 더불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이는 모습을 보며 차라리 눈물이라도 펑펑 쏟아내고 싶었다. 단풍든 나뭇잎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던 적이 지금까지 없었으므로 나는 그 앞에서  서서 내 이상감정을 다독이느라 한참을 그대로 서 있어야 했을 정도였다.

 

 

                                   *가을빛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아이들*

 

'단풍이 들다' 할때의  그 단풍나무도 붉은 색으로 절정이었다. 단풍보다 오히려 더욱 짙어 피빛같은 붉나무의 잎새,그것 역시도 혼자있을 때가 아닌 청미래 노란잎이나 떡갈나무 초록잎과 함께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하늘거릴때라야 가장 아름다웠다. 그것들은 대체로 계곡과 반대편인 산 위쪽, 길에 있었으므로 그것을 쳐다보기 위해 고개를 한껏 외로 꺽어야 했는데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운 색감에 위를 쳐다보던 고개가 아픈 줄도 모를 정도였다. '기가 막히다'라는 통속적이 말만이 메아리처럼 내 안에서 뱉어져 나올 뿐이었다. '면봉 필요해요?' 옆에서 아이가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돌고 돌아가는 산길, 아래로 흘러드는 계곡물 소리도 나좀 들어봐 주라 여전히 우렁찬데, 키큰 전나무 사이를 돌아 가며 '내소리는 어떤가' 낭랑한 새소리도 들리는데 가을빛에 흠씬 빠져들어 오로지 동공이 커지고 마음이 가빠지는 길이 이어졌다.

산모퉁이를 돌아 다시 이어지는 풍광은 지나온길을 다시 재현해 낸듯 비슷했으나 자연의 솜씨가 빚어 놓은 가을빛들은 어디 한군데 같은 곳이 없었다. 길게 길게 걸어서 그 길 끝에 다다르고 싶었다. 아이의 바램대로 이번엔 계곡을 지그재그로 건너 청룡, 황룡폭포 사이에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다는 불바라기 약수터에 닿고 싶었다. 산모롱이를 돌때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그림같은 풍경속으로 계속해서 걸어 들어가고만 싶었다.

목적지를 얼마 앞두고 제일 먼저 앞으로 튀어나가며 내가 일등이라며 앞장서 씩, 웃어야 할 아들녀석이 조금씩 뒤로 쳐지기 시작했다. 힘들어서 못 가겠다는 때아닌 투정까지 보탠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어 발바닥을 보여주더니 발이 아프다고 했다. 발바닥에 상처가 난곳이 있었는데 많이 걸은 탓인지 깊게 갈라져 있다.

아쉬운 마음에 돌아서 오면서도 몇번을 둘러 보고 또 보았지만 역시 아름다운 가을빛이 그곳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다 보지 못한 풍광은 이제 마음에 담을 일이었다. 가을에만 세해를 미천골을 찾았더니 유난히 눈에 띄는 나무까지 이제 알아 보겠다. 그것이 식상한 것이었으면 다시 오잔말 못할텐데 그래서 또 아쉬움이 남고 그리움이 새롭게 일어나니 내년가을에 또 미천골 단풍을 찾아 이곳에 올지 모를 일이란 상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눈에 가득 담고 넘쳐 마음에 담고 온 풍경을 꺼내 보며 '미천골의 가을'을 떠올려 보는 며칠동안이 참으로 행복했었다. 그 아껴둔 행복을 여기 살짝 풀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