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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아름다운 이미지의 영화)


BY 빨강머리앤 2004-10-06

네델란드의 화가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빈센트 반 고흐'이다. 슬픔과 비애로 점철된 일생을 보낸 고흐는 그의 생애 동안 수많은 창작품을 남겼고 동생과의 편지글로서도 깊이있는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는 동안 인정받지 못한 화가였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그의 수많은 작품중 한 개만이 그가 살아있는 동안 팔린 유일한 작품이었다고 한다.

그런 고흐에 버금가는 네델란드의 화가로 베르메르가 있다 한다.베르메르 역시 천재화가 였으나 생전에 그의 작품은 사람들로 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고 오늘날 새롭게 조명되는 위대한 작가 반열에 올랐으니 세월이 애석타고나 할까? 그들 생전에 뜨거운 찬사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림을 계속할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사회적 여건이 허락되었다면 두 천재는 아마도 자신의 전 존재를 통틀어 그들이 남긴 작품보다 훨씬 더 위대한 '불후의 명작'을 탄생 시켰을지, 혹 모르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어쩌면 불리한 여건 불행한 가족관계에서 그들의 기이한 천부적 재능이 더욱 빛을 발하였을 지도 모르겠으나, 역시 안타까운 마음은 매 한가지다.

화가의 세계나 혹은 빛에 대한 감각 혹은 색에 대한 특별한 감각을 지녔다면 이 영화로 부터 훨씬 풍부한 감정을 전달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림을 그린 것이 고작해야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선생님의 강제(?)에 의해서 겨우 그렸던, 그림에 문외한인 내게 화가의 세계란 아득히 먼 나라의 이야기 여서 나는 그저 빛의 마술에 홀린듯 영화의 이미지에만 빠져 들었던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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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풍속화를 들여다 보는 듯한 네델란드 거리와 빛에 의해 자연스럽게 그라데이션 되는 풍경과 사람사이의 선의 우아함 그리고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신예배우의 이미지로 은근하면서도 강렬하게 다가온 영화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는 깊이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한다.

물의 도시 네델란드 델프트의 베르메르는 당대의 위대한 화가였으나 자신의 의지가 아닌 후원자의 의지에 억지로 꿰마춘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치스러운데다 그림에 문외한인 아내, 여섯명의 아이들, 게다가 후원자 라이번과의 은밀한 거래로 베르메르를 좌지우지  하는 장모가 베르메르네 가족이다. 거기다 유모에 하녀를 둘씩이나 부리며 가끔 왕가에 버금가는 연회를 열기도 한다. 이런 집에 하녀 그리트가 새로 들어온다.

비록 하녀라는 신분이지만 그리트는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그림에서 막 걸어 나온듯한 창백한 얼굴의 그리트를 스카렛 요한슨이라는 배우는 커다랗고 반짝이는 눈과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듯한 표정으로 절제된 연기를 펼친다. 그녀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그녀를 위한 그녀의 영화였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리트는 베르메르의 화실을 청소할 권한을 부여 받으며 그녀가 지금껏 만날수 없었던 새로운 예술에의 세계를 눈뜨기 시작한다. 베르메르는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오는 이 신비한 소녀의 매력에 빠져 들면서 그녀에게 색감에 대한 공부를 시키기도 한다. 하녀를 창 가까이 데려가 구름을 보게 하는 베르메르는 그녀로 하여금 구름이 가진 색에 대해 말해 보라 한다. 흰색이라고만 생각했던 구름은 회색이기도 하고 노란색을 띄기도 했으며 엷은 푸른색도 가졌다는걸 발견하면서 그녀가 짓던 백만불짜리 미소가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백만불짜리 미소라고 표현하기에도 조심스러울 정도로 우아하고 기품있는 미소였다.

화가 베르메르와 그의 하녀 그리트는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 지지만 그것을 섣불리 애정이라는 감정으로 매듭지을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녀라는 신분에서 오는 열등감으로 베르메르를 바라만 보는 그리트와 가끔씩 그리트를 훔쳐 보기도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듯한 베르메르의 시선은 한곳에서 만나지 못하고 교차하기를 반복한다.

오히려 베르메르를 향한 애타는듯한 시선으로 보아 결코 마음에 품어서는 안될 사람을 사랑하며 고뇌하는 사람은 하녀 그리트다.그리트는 자신을 사랑하는 푸줏간집 소년과의 사랑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아득히 먼곳에 있는 베르메르에 대한 연모를 키워 나간다. 푸줏간집 소년의 '네가 있을 자리는 이곳' 이라는 충고도 그녀에겐 소용이 없다.

그녀의 매력에 빠진 이가 또한사람이 있었다. 바로 베르메르의 후원자인 라이번 이라는 탐욕스런 노인이다. 라이번은 그리트를 호시탐탐 훔쳐보다가 마침내는 그녀를 겁탈하기에 이르고 그것이 무산되자 베르메르로 하여금 그리트를 그리도록 종용한다.

하녀와 남편과의 심상치 않은 눈빛 교환에 질투를 느끼던 아내 카타리나는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받아 들일수가 없다. 하지만 오로지 라이번 만이 베르메르가의 돈줄이니 장모는 은밀히 일을 꾸미고  마침내 그의 아내가 외출한 사이 그녀가 애지중지 하던 진주목걸이 한쌍을 훔쳐 내오는데 성공을 한다. 그 진주목걸이를 청소와 빨래와 요리로  망가진 그리트의 손에 쥐어 주며 짓는 장모의 시선이 오묘하다.

하녀인 그리트로 하여 새로운 창작의욕을 불태우는 베르메르는 라이번의 부탁에 상관없이 가장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일은 이제 일생의 과업으로 여겨질 만큼 중요한 작업으로 인식된다. 진주 귀걸이를 달게 하기 위해 베르메르는 직접 하녀의 귀를 뚫어준다.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이 장면은 어느 평론가에 의하면 '숨이 막히는 황홀함과 긴장감이 교차하는'순간이다. 귓볼에 베르메르의 입김이 와닿을듯  말듯한 찰라에서 표현해 내는 요한슨의 탄식과 한숨이 섞인듯한 표정연기가 압권이다. 마침내 대작이 완성이 되지만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어쩐지 자신만이 소외되고 있다는 강박감을 참지 못하고 그의 아내가 화실로 뛰어옴며 잠시 긴장된 순간이 연출된다.

푸른두건을 쓰고 눈망울이 커다랗고 붉고 윤기나는 입술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그림을 보고 베르메르의 아내가 울부짖는다.  그림속의 소녀를 뚫어지게 응시했을 화가와 화가의 눈빛에 또한 자신의 눈을 맞추었을 소녀를 예민한 그의 아내는 포착해 냈던 것이다.

화가의 아내는 질투에 불타서 그리트를 쫒아 낸다. 쫒겨난 그리트는 눈먼 아버지와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어느날 누군가가 그녀에게 베르메르에게서 온 손수건을 전해준다.

조심스럽게 봉인을 뜯고 손수건을 풀어내는 그리트의 손이 떨린다.  푸른 두건이다. 연한 남빛을 띤 푸른색 두건은 그녀의 그림속에 있는 바로 그것이다. 두건을 다시 펼치자 그속에서 꿈결같은 색감으로 빛나는 진주목걸이가 한쌍있다. 하, 이 빛나는 이미지에 나는 탄복하고 말았다. 영화는 상승곡선을 그리듯 마지막으로 갈수록 그 빛나는 이미지로 가슴 설레게 했다. 영화는 그 장면에서 줄을 그듯 딱부러진 결말을 내지 않고 긴 여운을 남긴채 끝을 맺었다. 영화 끝무렵에 진품인.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소녀'를 만나게 된다. 오리지널 사운트랙과 함께 오래 비춰지는 이 한컷의 그림이 관객을 뜻밖의 행복으로 이끌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