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자신감이 없어졌다. 때아닌 피로감도 한꺼번에 몰려온다. 나와 관계있는 이웃들도 잠시 멀찍이 떨어져 나를 주시하는것 같다. 자주 오고가던 친구로 부터의 연락도 뜸해졌다. 나에게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해 본다. 무슨일이 있어났는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갑자기 대단할것도 없는 자신감마저 상실할만한 무슨 대단한 일이 있었던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이 상실감은 도대체 어디서 부터 연유한걸까?
나를 피로감에 휩싸이게 하는 상실감을 오래 들여다 보다 정체성이라는 문제를 건드리게 되었다. 그것은 내안에서 죽어있다 시피 누워 꼼짝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내딴에는 내 정체성의 존재를 내 나름대로 완성해 가는 중이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정체성이 겉으로 드러낼 만한 이렇다할 실행을 해본적이 없음을 시인해야 할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것은 무엇인가도 짚어본다. 왜? 지금에 와서 불현듯, 누가 물어보지 도 않은 그 문제를 들고 나오는가? 나는 누구 말마따나 '글쟁이'란 말이 좋았다. 그것이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다. 아주 어렸을때 부터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사춘기적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다가 불현듯 마음에 한가닥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위해 책을 읽어 주다가, 아름다운 문구에 반해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내 마음을 일기에 적어 놓았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내가 정말로 글을 쓰면서 내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다라고 간절하게 느끼게 된것은 아마도 아컴을 알고 나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정기적으로 혹은 부정기적으로 어떤 주제를 마주할때마다 컴앞에 앉아 어줍잖으나마 내 마음을 옮겨 적는 일이 좋았다.
컴식구들의 다른글을 읽으며 나도 그들과 한가족이 되어 에세이를 쓰고 서로의 마음을 끌여들여 함께 공유하는 시간들이 좋았다. 내노라 하는 작가들의 글 못잖은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을 읽으며 한숨을 쉬기도 하고 내가 쓴 글에 격려와 함께 내 감정의 결을 같이 하는 이의 댓글을 보며 가슴이 한없이 따뜻해 지기도 하고 그것으로 하여 다시 글을 쓸수 있는 원동력을 부여 받기도 했었다.
문학을 전공한것도 아니요, 공부를 구체적으로 해본것도 아니여서 글을 쓰면서도 한편으론 불안감이 고개를 불쑥 불쑥, 내밀기도 했다. 그럴때면 내가 쓴 글이라는 것들이 형편없어 보였다. 내 글들을 다 지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그것들을 다 지운다고 해서 마음을 흔들며 다가오는 불안한 그림자까지 지울수도 없을 일이면서...
한계를 느꼈다. 요며칠, 불안함의 정체는 그것이었다. 뜬금없이 정체성 운운.. 했던것도 따지고 보면 한계를 느낄수 밖에 없는 나를 들여다 보고서다. 최근에 부쩍 피곤함이 느껴졌던 것도 어디를 가도 즐겁다는 생각이 없었던 며칠도 사실은 나의 한계를 느낀 그대목이 주는 피로감이었던 것이다.
두려웠다. 숙제도 있는데, 나는 잔뜩 긴장해서 글을 썼다. 글속에선 나의 긴장감이 그래도 드러났다. 어쩌면 매너리즘이라는 반갑잖은 손님일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보기도 했다. 차라리 매너리즘이라면 혼자 있는 시간을 마련하면 될것도 같았다. 집에서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혼자있는 시간속으로 들어갔다 오는 일도 좋을것 같았다. 지금 현실에서 불가능할것 같은 그일을 혼자 마음속으로 몇번을 계획했다 수정을 반복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내가 가진 소양의 한계를 들여다 보는 일일 것이다.그리고 전문성의 부족을 절감하는 단계일 것이란 것을 안다. 그냥 이대로 피로감을 안은채 뒹굴고 싶다는 포기감과 함께 잠시 지금을 유보하고 나를 바라보자는 새로운 의욕이 혼재하는 '과도기'에 내가 서있다. 지금이 이 과도기 단계가 나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단단한 연결고리가 되어 주었으면 희망한다. 내 마음에 희망을 들여놓는 한, 그것이 나를 일으켜 세워 줄것이라 믿어 본다. 오랫만에 오늘은 서점에 가볼 생각이다. 마음의 두레박을 깊이 깊이 드리워 차고 투명한 샘물을 길어 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