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현엄마, 잘 있었어요?
전화 한번 한다 해놓고 지난봄 이사오고 통화한후로
전화한번 못했네요.
가현엄마야 내가 부담될까봐, 전화를 못했을 것이고
나는 정말 미안해서 전화를 못했으니 그리 될수 밖에요...
지금도 그 자리 그대로 지키고 있겠지요?
'꼬마루소'란 그 입간판.. 그리워요. 노란바탕에 초록글씨로 단정하게
쓰여진 간판을 여기선 볼수 없으니 더욱 그곳이 그립습니다.
우리가 언제 알았지요?
그래요, 제작년 꼬마루소의 주인이 바뀌었던 그해 가을이었지요?
나야 꼬마루소의 초창기 회원이었으니 제가 사실은 그곳 선배지만(?)
이년전 가현엄마가 그곳에 떡하니 주인으로 앉았으니 같은 회원에서
주인과 손님으로 바뀐 꼴이 되었네요.
예전 주인한테서 우리아이들 얘기 들었다면서 첫 만남 부터
부드럽게 풀어 주었던 가현엄마의 웃는 얼굴이 생각나요.
그리고 나도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가현엄마의 그 열정적인
책사랑을 보고는 나는 그만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던거 모르고 있었지요?
나도 나름대로 아이들의 독서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책의 중요성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중 한사람이었구요.
그랬으니 그 2년 동안 책을 바꾸는 날은 항상 아이들과 함께 그곳을 들릴수
있었답니다. 아이들과 함께 꼬마루소의 문을 열면 항상 웃으며 반겨주는
가현엄마의 그 미소가 좋았어요.
문을 열때면 그안에 가만히 쌓여있다가 확, 몰려오는 책냄새가 참 좋았답니다.
그것들이 나를 기다리는데 아이들만 보낼순 없었지요.
개인적으로 아이들책,동화책이야 말로 가장 완벽한 문학형태가 아닐까 생각
하고는 했으니까 그곳에서 읽는 새로운 책들이 모두다 특별할 밖에요..
가현엄마, 참 책 욕심 많은 사람이었지요?
그러니 생계의 한 방편으로 도서대여점을 이끌어 가야 하는 현실과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좋은책을 많이 보여주고 싶다라는 이상 사이에서
참 많은 갈등을 하곤 했지만, 그래도 결국은 사고 싶은 책을 사고 환하게
웃으며 잘했다고 자신을 다독이곤 했던 사람.
가현엄마가 그곳 주인이 되고 부터는 책이 빽빽이 더 들어차고
그만큼 아이들이 몰려 들기 시작했던것 같네요.
가을엔 유리병에 국화꽃을 꽂아두곤 했던 그 작은 책방 풍경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추운 겨울엔 누군가가 사온 붕어빵이 항상 책상에 놓여있곤
했던 일도 기억해요. 나도 여러번 따끈한 붕어빵을 한봉지 들고 간적이
있지요. 그런날은 따뜻한 녹차를 끓여내 주곤 했던 가현엄마의 따스한
마음이 지금도 생생하군요.
책읽는데 방해가 될까봐 작게 틀어주던 라디오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올때면 내가 유심히 그 음악에 귀를 기울였던거 몰랐지요?
우리 참 얘기도 많이 나눴지요? 아이들이 책을 골라와서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읽을동안 새책 얘기며, 아이들 얘기로 꽃을 많이도 피웠던것 같네요.
그런 세월을 두해나 보내면서 언제부턴지 모르게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고, 5권만 빌려야 하는 규칙이고 뭐고, 보고 싶은책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며
선심도 많이 베풀어 주었지요.
그렇게 풍요로운 책과의 만남, 쉽게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었단 생각을 합니다.
가능하면 여기서도 꼬마루소에서 처럼 그렇게 책을 보고 싶었는데
여의치가 않은 상황입니다.
따로 아이들을 위한 책방이 있는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더더욱
그곳에서 누렸던 책과의 행복한 만남이 생각이 나는가 봐요.
가현엄마, 내가 이사올때 그책을 꼭 주고 왔어야 했는데
두고 두고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이사 준비로 바빴다고 핑계를 대고 싶지만,
잠깐 다녀올수도 있는 그곳을 내일로 자꾸 미루다
이사할 날이 다가와 있더군요. 그날은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가면서 주고 갈 생각으로 따로 싸두었는데 글쎄 그게 이삿짐에
묶여 차에 실려 지는걸 못 보았지 뭐예요.
이삿짐을 다 싸고 집을 떠나려는데 그제서야 생각이 나잖겠어요?
그렇다고 다 싼 짐을 다시 다 풀를수도 없고 가현엄마한테 그책은
돌려 줘야 하고 정말 난감하더군요.
그건 회원자격을 상실한 나의 중대한 실수였어요.
가현엄마가, 가기전까지 그냥 편하게 책 빌려다 보라고 했을때
좀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그럴수록 반납일을 더 잘 지켰어야 했는데
뒷늦은 후회가 생기네요.
회원과 꼬마루소와의 그 반납일 명시 약속을 어겼으니
내내 마음이 찜찜하더군요. 그래서 오자마자 가현엄마에게
전화를 했답니다. 내가 택배로 부쳐 줄거란 말에 그랬지요..
'그간에 잘 이용해 주셔서 그건 제가 선물한 거라고 생각하세요'
5권 빌리는 규칙을 어기고 빌려준 책이 6권이었는데
그것도 ''난초를 닮은 서화가 김정희'는 내게 처음 빌려준 새책이었는데
난 그것을 그냥 받을 수가 없노라 했지요.
그런 내 마음을 이해한듯이 가현엄마는 담에 서울 오면 꼭 한번 들려 달라고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지요.
지난봄 이사와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고 있으니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난듯 합니다.
그 오랜시간 동안 가현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요즈음도 그 책에 대한 열정 놓지 않고 살아가는지,
가현이 영현이, 아직 어린 아이들 건사하면서 쉽지 않은일
묵묵히 그것도 씩씩하게 해나가는 가현엄마가 많이 보고 싶네요.
이 담에 서울가면 가장 먼저 가현엄마 한테 들릴께요.
그땐 우리아이들이 예전에 보았던, 이젠 필요없게 된 책들
다 들고가 기증할께요.
그때, 책읽기 좋아하던 우리 딸아인 여전하고, 꼬마루소 간다고 하면
안간다고 떼쓰던 아들녀석도 덕분에 책을 즐겨 읽고 있답니다.
책을 매개로 해서 만난 가현엄마와의 소중한 인연,
고이 고이 간직하고 싶어요.
늦은밤, 찬바람 속으로 풀벌레들의 합창소리가 드높게 울리고 있네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