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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마을 스케치.


BY 빨강머리앤 2003-08-31

여름방학 첫일주일을 아이들이 도자기체험을 다녀왔었다.

일주일 동안 흙과 함께 뒹굴고 주무르고 만들던 시간들을 아이들은 기꺼워하며

함박웃음을 문채 현관문을 들어서곤 했었다.

'오늘은 흙던지기 놀이를 했는데 내가 과녘을 두번이나 맞췄다',

'오늘은 풍경을 만들었는데 물고기가 너무 크게 만들어졌어'

라고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현관을 들어서곤 했었다.

그런 일주일을 보내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작품이 얼른 구워져서

도자기마을에 다시 들르게 될  8월말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지난 토요일에 도자기 마을에서 연락이 왔다.

'오늘 야외락쿠가 있으니 와서 한번 보세요'하길래

나도 얼른 따라 나섰다.  준비해 오라는 커다란 가방에 신문지를 잔뜩 집어 넣고

나서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무슨 뜻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야외락쿠'라니,

아마도 야외에서 무슨 축제 같은걸 하는것일것이라고 지레 짐작을 한 터였으니

그날 또 내리는 비가 걱정이었다.

집앞까지온 셔틀 버스에 올라 아이들이 다녔을 길을 나도 되짚으며 차창밖에

눈길을 주었다. 작은 소롯길을 따라 차를 몰아갔는데 오른쪽으로 계속해서

게곡물이 따라왔다.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계곡물이 많이 불어있었다.

왼쪽으로 나란히 산아래를 따라 밭들이 펼쳐져 한참 여름곡식들이 푸르게

익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녹음이 짙은 산아래 숲이 가진 진한 녹색과는 다르게

풀색을 띤 곡식들의 푸른물결이 마음에 평화를 한웅큼 가져다 주었다.

내리는 비에 달맞이꽃은 잔뜩 젖어 있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길을 이십여분 달려 드디어, 도자기 마을에 도착했다.

북한강에서 그리 멀지 않는곳, 눈을 들어보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곳,

주변에 논과 논둑길에 코스모스가 만발한 곳에 도자기마을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비가 여전히 내리는 가운데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네분의 선생님들,,,

아이들이 반갑게 뛰어가 인사를 나누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 보았다. 작은 연못이 있고, 능소화가 나무를 감고 피어있는 모습이

정다워 보였다. 화단엔 때 늦은 도라지 꽃이 함초롬이 피어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고갤 숙이고 있었고, 또 도라지 꽃의 보라색을 닮은 아이리스가 한무더기 피어있어서

반가웠다. 벌써, 그런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기고는 들어오세요, 하는 여주인의

해끔한 미소에 이끌려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보러 비닐막사에 들어섰다.

 

방충망이 비닐을 대신해서 밖의 모습이 그대로 비쳐들었다.

바로 앞에서 일렁이는 코스모스 꽃 뒤로 수수밭이 넓게 펼쳐지고

옆에선 벼이삭이 찰랑거리는 논이 푸르게 펼쳐져 있었다.

그걸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흙을 만지고 도자기를 빚었겠구나 생각하니

내 마음이 다 훈훈해져 왔다.

푸르른 자연을 보면서 그 자연의 어머니인 흙을 만지면서 아이들은 잠시

자연의 향기에 취해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참 좋은 일이었다 싶어지는 것이었다.

 

어설픈 아이들의 작품에 선생님의 손길이 닿았는지 예쁘고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람쥐, 아기돼지, 토끼, 강아지를 빚어 놓은 동물인형과

청자빛으로 빚어 놓은 접시와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쓴 머그컵등,,,

아이들이 그간에 만들어 놓은 작품들이 앙증맞게 탁자에 놓여져 아이들을 부르고 있었다.

 

야외락쿠를 위해 미리 만들어 놓은 화분에 유약을 바르는 일을 했다.

락쿠라 하믄 일본말을 그대로 옮겨다 쓰는, '불에 도자기를 굽는 일'을 말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원래 도자기의 본고장은 우리나라였고, 일본이 강제로 우리나라를

침략하면서 우리나라 도공들도 데려갔다고 했다. 그러니 일본의 도자기는 우리나라

도공들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버젓한 우리나라 말 말고

락쿠라는 어려운 말을 왜 사용하는지 모르겠더랬다.

조금은 씁쓸했다.

화분이 구워지는 동안, 아이들은 풍경을 만들었다.

각자 이름이 씌여진 물고기에 줄을 달고 십자가모양의 종추를

매달고는 한번 매듭을 짓고, 종추와 간격을 잘 맞춰 종을 달고 둥근고리를

연결해서 풍경을 완성했다. 고리를 흔들어 보니, 맑은 풍경소리가 '댕강, 댕강'울려왔다.

풍경소리를 들으니 잠시 산사가 떠올랐다. 지붕끝, 바람이 불때마다 맑게 울려오던

산사의 풍경소리가 떠올랐다.

아이들이 만든 풍경에서도 그와 같은 소리가 났다. 맑고 깨끗한 소리, 흙이 빚어낸

고운 소리가 그 풍경에서 댕그렁 울려왔다.

자신이 만든 작품가운데 가장 뿌듯해 하던 풍경이 었다.

 

풍경을 만드는 작업이 끝날때 즈음, 밖에서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화분이 다 구워진 모양이었다. 비가 여전히 내리고 아이들이 두세명씩 한우산을 쓰고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가마(최신식) 에서 불길이 솟구치는걸 보여주자

아이들이 일제히 와, 하고 함성을 울렸다.

뜨거운 화분을 꺼내기에 앞서 완전무장을 한 선생님이 가마를 열었다.

아직 남아있는 불길이 한가닥 보이고 잘구어진 아이들이 화분이 가마속에서

나란히 앉아있었다.

하나씩 꺼내서 재에 식히고 물에 넣어 다시 식히는 동안

자신의 작품이 언제 나오는지 궁금한 아이들의 잔뜩 호기심에 찬 얼굴들이

생기로웠다. 애초에 비가 오지 않았으면 가마에서 꺼낸 도자기를 자신이 직접

재에 비벼 넣고, 물에 식히는 작업을 함께 한다는 선생님의 설명에

아이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유약을 바른 부위에 따라 다른색깔로 구워진 아이들의 화분은, 별모양에 하트모양에

타원형등 모양도 가지각색이었다.

가마에서 구워진 화분을 받음으로써 그날의 행사가 끝나고 간단하게

간식을 먹고는 헤어졌다. 깨지지 않게 신문지에 싼 아이들 작품이

양손을 묵직하게 들려졌다.

아이들은 '겨울방학때도 도자기 만들러 왔으면 좋겠어요'라며

도자기마을 선생님과의 작별을 아쉬워 했다.

내년에 만들면 이젠 정말 잘할것 같다는 아이들의 얼굴엔 잔뜩 아쉬움과 함께

뭔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이 동시에 묻어났다.

 

북한강변을 따라 집에 오는길,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은 도자기로 빚은 자신들의 작품을 하나씩 꺼내서

서랍장 위에 늘어놓으며 뿌듯해 했다.

흙이 만들어준 여러형태의 도자기가 하나하나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