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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곳으로 이사 온지도 3년이 다 되어간다.
사람을 사귈때 더디게 사귀는 편이나 잊어 버리는 일도 더디게 한다.
남편이 하던일이 잘안돼 살던집을 팔고 좁은집으로 이사왔던 나는 우울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사람 만나는 일도 힘들었던때 자연스럽게 만나야 될 사람들이 있었으니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는 다락방이었다.
그전에 교회일에 열심 이었던 나라 사람들은 기대를 하고 있었나 보다.
허나 나 자신의 문제에서 헤매고 있던 ?라 난 남을 돌아다 보지 못했다.
마음이 많이 안정된 지금 난 그 사람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오십이 넘은 순장님 늘 밝게 웃고 다니시고 교회일에도 적극적이다.
그 활발한 성격과 조용한 내성격이 맞지 않아 부딪힐때면 난 참지 못하고 언니처럼 퍼 붓기도 했다.그러나 그뒤에는 제가 너무했어요 라는 말로 사과가 왔고 세상 사람이라면 이해 할수 없는 실천을 소리없이 행하고 있었다.
교회 모임은 그래서 사랑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박봉의 월급에 늘 아끼며 살아야 했고 살고 있던 아파트가 재개발이 되어 32평 아파트로 이사갔다.처음으로 살아 보는 넓은집과 차에 그녀는 너무 감격해 했고 그 넓은 집에서
마음껏 예배도 드리고 감사 하고 싶어했다.물론 아직도 형편이 안좋아 난방비를 줄이기 위해 춥게 있다가 우리집에 오면 옷을 다 벗어 버린다.
그녀의 그 행복 스러움이 왜 아름답게 보이는 걸까?
파출부에다 안해본일이 없다며 지금은 일주일에 세번씩 치매 할머니를 돌도아 드린다.
물론 돈은 받지만 정성껏 일해 주시는 모습이 보인다.
오십이 다되어가는 권찰님.
처음 그녀를 만났을때 평탄하지 않았다는게 얼굴에 나타났다.
얼굴은 그사람의 살아온 모습까지도 보여 주는 것일까?
첫 남편을 일찍 잃고 아이도 못낳아 첫남편이 입양해준 아이를 자기 아이마냥 정성껏 키운다.그러다 두번째 남편을 만났고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가정으로 비춰지지만
모두 남남으로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사는 셈이다.
예배를 드릴때면 불우했던 그의 어린 시절이 다 나온다.그리고 결혼 생활도.
목수일을 하는 남편은 언젠가 부터 잠자리를 하지 않게 되었고 지금은 거의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그녀.지금은 포기하고 사는듯 했다.
남편이 옆에 있어주고 돈벌어다 주는것에 만족 하면서.
중국에서 시집온 새댁.처음 그녀는 이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늘 울었다.
시어머니와의 고부문제.남편의 일방적인 행동 .환상을 ?아 시집온 그녀는 실망했고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지만 그녀 ?문에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부모 때문에
그녀는 이곳 생활에 자의든 타의든 적응해야만 했다.
이제는 둘째 아이까지 임신해 잘 적응하고 있다.
나중에 들어온 쌍둥이 엄마.늘 돈을 벌려고 하는데 쌍둥이들이 엄마가 일만 나가면 사고를 친다. 그래서 아예 포기하고 아이나 잘 키우려는듯.
처음엔 내가 굉장히 힘든 사람인줄 알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위로 받으려고 했다.
그것도 일종의 자만이었음을 .
난 그들 보다도 많은것을 누리고 살았음을 그래서 가끔 미안 할때도 있다.
내가 가진것이 없으므로 난 그 사람들과 동등해 있음을 느꼈고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씩 드리는 예배도 재미있다.작은 친절에도 고마워하는 그들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