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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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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이(8)


BY 선물 2006-06-09

막둥이는 병원을 무지 싫어한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병원은 막둥이에게 안 좋은 추억을 가져다 준 장소이다.

낯선 곳, 낯선 이에게 몸을 맡기는 것만도 두려울 텐데 그 어떤 설명이나 양해도 받지 않고 자기를 마음대로 만지고 찌르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의사는 우리의 막둥이를 엄살이 심한 강아지라고 말한다. 듣고 있는 막둥이는 속으로 얼마나 억울했을까.

아픈 것을 아프다 하는데 엄살이 심하다니...

나는 강아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막둥이 엄살이 심한 건지 어떤건지 잘 알지 못한다. 설사 그렇다 해도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다. 솔직히 그런 모습이 더 귀엽기만 하다.

그런데 이놈을 키우면서 보니 엄살이라 말하긴 좀 그렇지만 어쨌든 겁이 많은 강아지라는 것은 실감했다. 혼을 내고 나서 막둥이를 안아보면 가슴 부분이 어찌나 팔딱거리는지 내 가슴까지 따라 팔딱인다.

조그만 막둥이는 깡충거리기를 좋아한다. 귀까지 쫑긋 세우고 뛰면 영낙없는 토끼다. 근데 그 모습은 사실 귀엽다기보단 엽기토끼 쪽에 가까워 보인다.

내가 뛰면 막둥이도 같이 뛴다. 망둥이랑 이름이 비슷해서 그럴까...

그게 재밌어서 하루는 요리조리 약올려가며 뛰어다녔다. 막둥이도 정신없이 내 꽁무니를 따라다닌다. 근데 식탁을 뱅뱅 돌던 중 갑자기 깨갱거리는 막둥이의 심상찮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쿵 하는 것이 더럭 겁이 났다. 그 소리를 듣고 온 식구가 뛰어 나왔다. 그중 남편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내 하는 꼴을 보며 위험하다 생각했던 중이었나 보았다.

하지만, 정확한 사고현장은 보지 못했는지 나보고 밟았냐고 묻는다. 음색이 싸늘하다.

막둥이를 보니 아파서 어쩔 줄 몰라 한다. 내 감각이 다소 무디긴 하지만 분명 발밑에 무언가를 밟은 느낌은 없었다. 막둥이는 가속도가 붙은 제 속력을 미처 이기지 못해 식탁 옆 찻장 모서리에 쾅하고 박은 것 같다. 막둥이는 좁은 자신의 집을 향해 홀로 절룩거리며 고독하게 걸어간다.

미안해. 막둥아.

애가 타서 집으로 들어간 막둥이를 부러 끄집어냈다.

괜히 막둥이 눈빛이 이 여자 왜 이럴까 하는 눈빛처럼 보인다.

그래도 좋다. 그런 원망의 눈빛쯤은 감내해 내야지. 난 막둥이를 꼭 껴안았다. 그러나 발버둥친다. 막둥이가 어느 정도 진정된 모습을 보이자 식구들은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계속 안타까워하는 내 모습이 호들갑스럽게 보였는지 그만하라고 한다.

다음 날 평소와 다름없이 뛰어노는 막둥이를 보고서야 맘을 놓았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한마디 했다.

-막둥이가.... 엄살이... 좀... 심하네요...

막둥아. 미안해. 이 비겁한 엄마를 이해하렴.

그 일이 있고 이틀이 지났다.

우리의 막둥이는 여전히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따라다닌다.

그러나 워낙 작고 사사삭 소리 없이 다니는 놈이다 보니 바로 옆에 막둥이가 와도 모르기 일쑤다.

아버님은 막둥이가 온 후, 단 한번도 안아주신 적이 없으신 분이다.

근데 뭐가 좋다고 아버님 뒤를 쫄랑거리며 따라갔는지 또 한번의 아픔을 겪게 된다.

막둥이가 뒤에서 오는 줄 모르셨던 아버님은 방으로 들어가시면서 문을 닫으셨는데 어딘가에 막둥이가 끼인 것이다.

나와 장난치며 다쳤을 때의 비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크고 긴 신음소리가 이어진다.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쩔룩거리면서 자신의 집을 향하는 막둥이를 보니 정말 애간장이 절절 끓는다.

거의 울기 일보직전의 표정을 짓고 있으니 아버님이 곁에서 어쩔 줄 몰라 하신다.

-이놈이 따라올 줄 꿈에도 몰랐는데...

그런 아버님을 바라보는 어머님의 눈길이 매우 차갑다.

갑자기 생각났다. 그래, 아버님이 범띠셨지. 괜히 불길하다.

막둥인 자기 집에 들어가서도 낑낑거린다. 몹시 고통스러워보였다.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지 확인해야 하건만 두려움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신이 하나도 없고 등은 진땀으로 축축하다.

어머님이 조심스럽게 말씀하신다.

-막둥이 과자 하나 주지.

지금 아픔과 놀라움과 불안함으로 가득한 막둥이에게 뭔가를 먹이시려는 어머님이 잠시 이해되지 않았다.

난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남편의 늦은 귀가를 속상해했다.

그리고 막둥이 앞에서 빌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막둥이가 어느 정도 진정을 되찾은 듯 보였다. 이제 과자로 위로를 해주어도 될 듯싶었다.

그래도 이놈이 걸을 수 있을까 여전히 걱정되었다.

막둥이 과자 통을 열어 평소 가장 좋아하는 과자를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언제 쫓아왔는지 내 발밑에 막둥이가 앉아있다. 기대에 가득 찬 그 얼굴.

아니, 이놈이 어떻게 제 발로 날 따라왔지? 너무 신기했다.

과자를 물고 가는 막둥이 뒷모습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휴....

정말 긴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놈 정말로 먹는 거 하난 엄청 밝히네...

핀잔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을 하고 있는 내 눈엔 막둥이에 대한 고마움으로 물기가 가득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