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반도체를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783

여름을 삼켰다.


BY 선물 2004-09-01

무척 긴 글입니다. 이렇게 글로써 정리할 수 있음이 참으로 다행이다 생각듭니다.

제 아이 이야기를 별 망설임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다 같은 엄마의 맘으로 읽어주시리라 믿어지기 때문이지요. 함께 해주신 모든 님들, 앞으론 힘찬 내용의 글로 만나고싶습니다. 그동안 힘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더위를 비교적 잘 견디어 내던 내게도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그리고 길었다. 봄이 채 나갈 채비도 하지 못한 시각, 여름은 눈치도 예의도 없이 그렇게 성큼 문지방을 밟고 이미 들어서 버린 것이다. 그리곤 마치 본때를 보여주려는 듯 작렬하는 뜨거움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여름이 벌컥 게워내는 잔인한 열기는 매 순간 순간 나를 질식시켰다. 몸과 마음은 뜨거움을 이기지 못해 연신 단내를 뿜어내며 바짝 타 들어갔다. 어쩜 이것이 지옥이겠구나, 그런 생각까지도 들었다. 아마 그 순간 내 모습에선 광기 어린 웃음까지 간간이 흘러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일을 겪고 난 후 나는 길에서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종종 그런 사람들을 보며 가졌던 생뚱스럽던 느낌이 이젠 더 이상 생기질 않는다. 오히려 가슴이 찌르르해지면서 그 마음이 읽힌다. 나 또한 아이 이야기만 하게 되면 늘 눈물이 나왔다. 참으로 참기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울음이란 것을 이번에 절절히 깨달았다. 눈물은 정말 속수무책이었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참아지지 않는 그런 울음. 정말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삼켜 보려 무진장 애를 썼지만 보람도 없이 오히려 눈두덩도 모자라 입술까지 허물허물 그렇게 부르트게 하고 말았을 뿐이다. 부모 자리란 강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그 이상으로 한없이 약한 자리이기도 했던 것이다.

처음 등교거부라는 형태로 불거져 나온 아이의 문제는 생각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인내하고 기다리면 언젠가 아이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오리라 그렇게 낙관했었다. 아니, 낙관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우선 사태를 수습하고자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노크를 했다. 그러나 아이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열리지 않는 그 문을 바라보며 얼마간 인내했다. 그렇게 한없이 기다리다가 드디어 결심했다. 네가 열어주지 않으면 내가 강제로라도 열어 버릴 거야... 그러나 억지로라도 문을 열려 했던 그 순간 나는 망연 자실 멍청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열쇠 구멍이 없음을 확인했던 까닭이다. 열쇠 구멍은커녕, 문을 열 수 있는 그 어떤 손잡이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내 힘으로 외부에서 그 닫힌 문을 열 수 있는 길은 그 어디에도 없었으니 아이 스스로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참으로 기가 막힌 막막함은 인내의 한계를 느끼게 했고 급기야는 분노의 기운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곤 살벌한 표현이긴 하지만 우리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그 전쟁에서 승리한 것인지도 모른다. 목표했던 1학기를 무사히 마쳤다는 점에서는... 그 승리를 얻기 위해 아이와 함께 등교하고 아이와 함께 하교할 때까지 뙤약볕 아래 운동장에서 아이가 있는 교실만을 바라보며 한 달여 시간을 보냈다. 정말 덥고 또 더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학교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모든 고통의 시간들이 상쇄되기도 했다. 비록 백정의 손에 끌려 도살장으로 향하는 가엾은 소처럼 고통스럽게 교실로 향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봐야 했지만 그래도 아이가 학교에 있다는 사실이 그 힘든 시간을 능히 감당해내게 만들었다. 그 때는 그 어떤 것도 아이가 학교에 간다는 당연하고도 사소한 일보다 중요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폭염 속의 차안에서 7시간 정도를 견디어 내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를 학교에 있을 수 있게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제법 독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만큼 내겐 간절한 일이었던 것이다. 초코파이와 주스 한 병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배고픈 줄을 몰랐다. 우두커니 모습 드러내 놓기가 민망스러워 좁은 차안에서 죄인처럼 숨어 있어야 했지만 그것도 거뜬히 참아낼 수 있었다. 아이는 점심시간이 되자 젓가락에 닭튀김을 꽂아서 내게로 가져왔다. 그래도 제 에미가 저로 인해  힘든 줄을 아주 조금은 아는 모양이다. 어쨌든 교복을 입은 아이가 있는 교정은 정말 아름다웠다. 새들의 조잘거림도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게 다가왔다. 예전에 친구와의 사귐에 조심할 것을 권할 때 선 밖으로 내 놓았을, 좀은 불량한 용모의 아이들도 한없이 예뻐 보이기만 했다. 거친 욕을 해대는 아이들의 언행조차 맑고 싱싱해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그네들은 군소리 없이 학교에 다니긴 했으니까... 정말 내 아이가 학교에 나가기만 한다면 더 이상은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은 맘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의 욕심이 자기를 지옥으로 가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짜증난 모습을 보여 내 마음을 멍들게 했다. 학교 선생님들도 아이의 전학을 간곡히 만류하며 등교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한번 친구들과 어긋난 아이의 마음은 되돌려질 줄을 몰랐다. 자기가 학교에 있는 시간 엄마도 꼭 함께 있어달라는 간곡한 부탁은 아이의 두려움을 조금은 짐작케 만들었다. 학교 친구들과의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사소한 다툼과 외면이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내 아이에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으니 그렇게 아이를 나약하게 만든 내가 몹시도 부끄러워질 뿐이다.

아이는 시급한 맘으로 전학을 원했다. 그저 지금의 학교를 벗어나기만 하면 되는 그런 단순한 전학. 그러나 우리의 고민은 그렇게 단순할 수가 없었다. 아주 작은 일에도 그렇게 이겨내질 못하는 나약함으로 대체 어디서 견디어 낼 수 있을지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열 다섯 살이 되도록 아이는 자신의 스타킹 한 번 빤 적이 없고 설거지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아이를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로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은 학업은 계속될 수 있는 방법 한도 내에서 아이를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했다. 남편은 예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 본 대안학교를 생각해냈다. 나는 그래도 끝내 어수룩한 아이를 떠나보낼 자신이 없어 갖은 방법으로 지금 다니는 학교에 보내려 고집을 부렸다. 아마 내 마음이 보통 대부분의 엄마들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다니던 학교를 벗어날 수 있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부모 곁을 멀리 떠나 혼자서 모든 일을 책임져 나가야 하는 일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우리는 한 두 달 사이에 여섯 일곱 시간씩 걸리는 학교를 몇 번씩 찾아다니며 아이에게 맞는 학교를 구해야 했다. 그러나 전학은 쉽질 않았다. 결원이 있어야 갈 수 있는데 그 자리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전학을 원하는 아이는 그 몇 배에 이르렀다. 필요한 서류를 내고 면접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면서 조금씩 내 마음은 변해가고 있었다. 길이 없어 헤매다가 막바지에 이른 것이 아니라 우리는 또 다른 길을 찾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쩜 내 아이는 싫은 것을 맘속에 담아두지 않고 싫다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아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늘 불만인 채로 맘속에 웅뚱거려 놓았다가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데 내 아이는 정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찾기 위해 그렇게 발버둥을 쳤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학교에서 합격통보를 받았다. 1학년 때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했던 것이 결정적으로 도움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미로를 헤맸지만 참으로 다행히도 마음에 쏙 드는 곳으로 아이를 보내게 된 것이다. 녹차 밭이 가까운 평화로운 시골, 깔끔한 기숙사가 있는 작은 학교. 선입견으로 갖고 있던 아이들 모습과는 달리 너무나 예쁘고 순수해 보였던 좋은 친구들. 아이는 며칠을 지독하게 울며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졸랐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참으로 씩씩한 목소리로 전화를 한다. 벌레를 보면 질겁하던 아이, 강아지를 기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정작 조금이라도 큰 강아지가 곁에 오면 온 몸이 긴장하던 아이. 그런 아이가 이런 말을 무심코 내 뱉는다. 엄마. 거미가 줄을 치는데 참 예쁘고 신기해. 개가 지금 내 옆에서 오줌을 누네.

보통의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보통의 엄마들처럼 특목고를 가네 못 가네 하며 자잘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을 우리들. 그 속에서도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한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겠지만 왠지 내 아이에겐 이번 일이 정말 아이를 위해 참 좋은 기회를 얻게 해 준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이에게 진정으로 욕심낼 것이 무엇인지 정말 가난한 마음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이렇게 말하고싶다. 아이에게 2004년 여름 내가 준 것은 최고의 선물이었다고....

여름을 삼킨 나는 이렇게 평온한 가을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