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엄마랑 아버지가 내려오시는 것이 보였다. 이상의 부분이 나의 아버지에 대한 첫 기억이다.
바보 같이 삐삐 잘 울었던 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여기 부터다.
몇살이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국민학교 입학하기 전이니까 7살 이전임은 분명하다.
나는 일곱살 전엔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그리고 할머니랑 살았다.
언제부터 할머니랑 살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할머니 댁에서의 내 어린시절은 행복했던 것 같다.
친구는 별로 없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혼자서도 잘 노는 성질이라
할머니 밭에 가면 따라다니고 할머니 일하시는 옆에 앉아 흙장난하며
그렇게 평온하게 살았다.
한동안 아이가 없던 집안에 첫 손주로 태어난 지라
잘났거나 못났거나, 딸이건 아들이건,
할아버지 할머니는 사랑을 뜸뿍 주시며 데리고 사셨을 거다.
특히나 증조할머니는(나는 "조모이"라고 불렀다.)나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셨다.
내가 밥을 잘 안 먹거나 떼를 쓸 때는
장농 밑에 넣어 둔 매보다 더 무서운 것이
" 니 자꾸 그리 할매 말 안들으모 할매 죽어삐린다이." 라는 말씀이었다.
그 시절 나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어린 나이에 잘 상상이 안되는 '할매가 죽는다'는 사실이었다.
할머니가 없는 세상이란 생각하기도 싫었으며,
할머니를 못보고 산다는 것은 제일 무서운 일이었다.
그랬던 나도 조모이 신씨할매 다 보내고도 이렇게 아무일 없다는 듯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가끔 서글퍼지기도 한다.
조부모님의 사랑 속에 살았기 때문에
아버지나 엄마가 몹시 그립다거나 섭다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어린 맘에도 엄마,아버지가 내려오시는 토요일 같은 날은
아침부터 자꾸 신작로가 놓인 덕곡쪽 길로 눈길이 가곤 했다.
그날도 토요일 이었으리라.
내 시야에 드디어 아버지 엄마가 내려오시는 모습이 잡혔다.
반가운 맘과 함께 왜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바보 같던 아이는 부리나케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대문 옆 닭장 쪽으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곤 마루쪽에서 나는 인기척을 살피고 있었다.
한참후 아버지 엄마가 들어오시는 소리가 나고,
또 한참후 보이지 않는 날 찾으시는 할머니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미 엄마 아버지에게 인사할 기회를 놓친지라
이젠 스스로 나타날 수가 없었다.
닭장 옆에 꼭꼭 숨어있자니 답답하기도 했지만 사태는 이미 벌어지고 말았다.
할머니께서 날 찾는 소리가 계속 들렸지만
나는 더 부끄러워 "예" 하고 나타나질 못했다.
한참후 숨어있던 날 할머니께서 찾아내셨고,
나는 아버지 엄마가 오셨는데 인사도 안했다고 꾸중도 들었다.
그리고 난 아마 많이 울었을거다.
아버지 엄마는 그때 뭔가를 염려하시는 듯 했다.
부모를 보고 숨어버리는 아이에 대해 걱정이 되시는 것 같았다.
단칸방 아버지 직장지인 초계집에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하시는 듯 했다.
아버지를 따라 언젠가는 가야한다는 사실이 나에겐 좋으면서도 크나큰 공포였다.
완벽한 할머니의 보호가 있는 나의 안락한 세상을 등지고
도 다른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은 무서움 그 자체였다.
총기가 없어 더 어릴 적 기억을 못하는 것이 이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