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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와 나

BY 도라지꽃 2016-06-25 조회 : 523

빈센트와 나

 

*프롤로그

 

너는 19세기 말 누구보다도 특별했으나 불우하고 가난했으며 무엇보다도 외로웠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권총으로 서른 일곱 생을 스스로 마감할 때까지 그의 생계를 돌보아준 동생 테오에게 보낸 수백 통의 편지가 한데 묶여진 책을 펼쳐 읽고 있다. 어느 한 페이지에서 너는 정지한 화면 속의 등장인물처럼 미동도 없이 눈을 떼지 못한다.

유난히 자신의 자화상을 여러 편 그린 화가가 고흐다. 그의 자화상들 중에서도 네가 눈을 뗄 수 없는 자화상은 오른쪽 귀 부분을 하얀 붕대로 감싸고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프랑스의 아를에서 고흐가 고갱을 초대하여 함께 지내던 중 한 달 남짓 되었을 때 이미 불거진 돌이킬 수 없는, 고흐와의 불화 때문에 고갱이 아를을 떠나려고 하자, 고갱과의 이별로 견딜 수 없는 고독의 늪으로 빠질 것을 예감한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잘라버리는 광기를 부린다. 고갱과의 이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잘라버린 고흐가 병상에 누워 고갱을 애타게 찾았을 때, 고갱은 이미 파리를 떠나고 없었다. 그로부터 일 년 뒤, 극복할 수 없는 본연의 외로움과 광기, 부모를 포함한 타인들의 철저한 냉대와 무시 속에서 그는 그가 살고 싶은 춥지 않은 세상을 찾아 스스로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갖다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욕실 벽면에 착 들러붙어있는 거울 속에서 너는 너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다. 거울 속 너의 눈은 거울 앞에 바짝 붙어 선 너의 눈 속을 파고들 듯 노려보는 중이다. 너의 눈은 굶주린 들개의 그것같은 너의 두 눈은 빈센트의 자화상에서 본 바로 그 두 눈이다. 말 걸고 싶으나 말 걸기 두려운, 다가가고 싶으나 거절당할 것에 미리 체념한, 작정하고 저주하고 싶으나 누군가를 저주하기엔 너무 어설픈, 그래서 결국 어쩌지 못하는 너의 두 눈은 그저 ‘딱할 뿐’이라서 너 자신조차도 외면하고픈 그런 눈일 수밖에.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너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다. 네가 인사하면, 그들은 외면한다. 네가 말을 걸면, 그들은 들으려고 조차 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일이란 것이 너에게 있어서만은 펄펄 끓는 물에 손을 집어넣어야 하는 고문과도 같아진 것은 몹시 오래 전 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에게 말을 걸면 엄마는 너를 외면하며 싸늘하게 말했다. 밖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집에 와서 어떤 말도 하지 마라. 아들 홀릭이었던 엄마가 그때껏 아직 아들이 없이 내리 ‘찢어진’ 다섯의 딸을 두었던 엄마가 너에게 좀 싸늘했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육남매를 길러내고 손자손녀를 갖게 된 지금에 와서도 싸늘한, 유독 둘째딸인 너에게 특별히 싸늘한 엄마가 이제 너도 넌더리가 났을 뿐이다. 마흔이 넘은 나이를 먹도록 엄마의 눈길을 받고 싶어 몸부림치며 살아온 너의 사십 평생이 너무 찌질해서 그것이 억울하고 분할 뿐이다.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어 그 손끝에 쥐어진 실 나부랭이를 붙잡고 그 누군가가 당기면 당기는 대로 풀면 풀리는 대로 내동댕이치면 내동댕이쳐지는 대로, 그래도 그 손끝에서 완전히 떨어져나오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지금 네가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를 턱이 없다. 그렇게 살아본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자존감이 없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너와 같은 ‘루저’들은 감히 그런 말을 타인에게 쉽게 내뱉는 그따위 인간들로부터 너무나도 쉽게 마름질 당하고 조롱당한다.

 

*어버이날 즈음에 엄마에게

어떤 날 엄마는 내게 말했어. “내가 너를 잘못 키웠다.”

엄마, 엄마는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엄마는 나한테 ‘내가 너를 잘못 키웠다’라고 하지 말고 “내가, 아니 우리가 너한테 잘못했다”고 말해야 돼. 사람들은 말하지, ‘너도 자식 낳아보면 부모 맘 알게 될 거다.’라고. 그런데 어쩌지, 엄마? 내가 내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엄마랑 아빠랑, 나한테 정말 잘못 많이 한 거 같더라. 어떻게 부모가 돼서 나한테 그렇게밖에 못해줬나, 내가 부모 되기 전에는 내 성질이 원래 더러워서, 누구 말마따나 내가 잘못 키워져서, 내가 그런저런 갈등과 부모 원망이 많은 줄로만 알았어. 그런데 아니야. 엄마는 왜 단 한 번도 내 편이 되어 준 적이 없었어? 아니, 지금도 그건 유효해. 엄마는 어떤 일만 생기면 왜 모든 원인과 잘못이 나한테 있는 것으로 단정 짓고 나를 제외한 모든 타인들은 정상인들인데 나만 잘못된 인간으로 무시했어?(지금도 마찬가지지만...)그래서 난 엄마랑 같이 있는 시간이 짜증나. 엄마 옆에 있으면 난 언제나 초라하고 볼품없고 열등한 인간,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느껴지거든. 엄마도 느끼고 있을 거야. 내가 되도록 엄마랑 함께 있는 시간이 없도록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걸. 내가 왜 그렇게까지 하게 됐는 줄 알아?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를 내 엄마가 아니라고 스스로 세뇌를 하면서 미친 듯이 훈련을 했어. 마음 훈련이랄까 그런 거지 뭐. 나도 이제는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서, 나도 이제는 나 스스로의 진짜 인생, 나도 참 괜찮은 인간의 하나라는 자존감을 갖고 한 번 살아보고 싶어서 나 스스로를 엄마를 비롯한 친정 식구들로부터 핏줄이라는 걸 끊어버리려는 마음의 노력을 했어.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점점 가벼워지더라. 남남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를 낳고 키워준 것만 해도(어떻게 키웠든 간에) 정말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야 될 것 같더라 이 말이지. 남인데 그 정도로 나한테 해 주다니, 이건 굉장한 휴머니즘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말하는 것은 아무 때나 엄마 마음 내키는 대로 딴 소리 해서 잘라먹었고 사람 말하고 있는데 무시하면서 딴청 피워 사람 비참한 기분 들게 했고, 뚱녀인 딸 가슴 아프게 사춘기 지나가고 있는데 에미라는 사람이 그 딸한테 ‘암퇘지’ 운운하면서 평생에 씻을 수 없는 모멸감을 가슴 깊이 심어주었고 내가 사오는 대부분의 음식은 맛이 없거나 싸구려 취급했고, 피땀 흘려 번 돈으로 고기 한 번 사주려고 식당 가면 자기 기분 나쁘면 무조건 체했니 어쨌니 하면서 피같은 내 돈 쓰레기로 만들었지. 엄마 언젠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 내가 한 며칠 옆에서 뒤치다꺼리하는데 완전 게으른 아랫것 취급하면서 온 병실 내 다른 환자들 시중까지 들게 해 머슴처럼 지내게 했고 다른 형제·자매들이 오니까 니가 언제 내 딸이었나 하는 식으로 소 닭보듯 해서 남의 수고를 물거품으로 만드셨지.

남편이랑 신도시 부자동네 옆 언저리에서 쪽방에서 빈민으로 월세 살 때, 방이 워낙 웅대하셔서 내 남편은 다리도 못 펴고 대각선으로 웅크리고 잠자며 겨우 입에 풀칠하면서 살 때, 엄마 어느 날 전화해서 그러셨지. 니 아부지 생전 처음으로 제주도 여행 가니 딸로서 여행경비 부치라고... 당신들이 나를 딸이라고 부르고 딸로서 행동해 주길 바라는 순간은 그런 순간, 돈이 필요할 때 뿐이잖아. 엄마 남편이 늘 노래를 부르듯 했던 말, 딸자식은 시집보낼 때 요강 단지 하나랑 세숫대야 하나만 손에 들려 보내면 된다고 했던 말..., 하기사, 나한테 그 잘난 요강이랑 세숫대야라도 하나 사 주기나 했어?

상견례 때 마치 집안의 우환꺼리 하나 떠넘긴다는 식으로 남편 부모한테 말해서 남편 부모를 비롯한 시집구석 인간들이 나를 개똥 취급하게 만들었지. 집구석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제 집 주인이 이뻐해주면 동네 사람들도 덩달아 함부로 하지 못하지만 제 집구석 주인한테 똥개취급 받는 개새끼는 밖에 나가서도 똥개 취급받으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의 발길에 차이는 법이지.

이 지역에 이사 내려오기 전에 우리가 살 집 마련해놓고 가스렌지 살 때, 내가 송금한 돈에서 단돈 만 원이 모자란다고 그 돈 당장 부치라고 전화하셨을 때, 정말 야속하더라. 나한테는 단돈 만 원도 엄마 돈 보태는 것이 그토록 아까웠어? 신도시에서 학교 선생하면서 아파트에서 중산층으로 살고 있는 엄마 인생의 대단한 자부심인 언니네 집에 왔다 가면서도 그 옆에 초라하게 엎드려 사는 빈민 작은 딸네 쪽방에는 쪽 팔려서 그렇게 발걸음 하기가 어려웠어?

 

십수 년 전, 엄마가 내 아이를 맡아 키워주겠다고 했을 때 나는 사실 엄마 말만 믿고 거지같았던 서울 생활 기꺼이 접고 부른 배를 부여안고 엄마집 옆으로 이사를 했어. 엄마가 그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아이 지극 정성으로 잘 키워주신 거는 누가 뭐래도 그건 진실이고 사실이야. 내가 그걸 부인하면 엄마가 잘 하는 말 있잖아, ‘천벌 받는다’고. 나는 나 나름대로 엄마가 아이 봐줘서 직장 생활 할 수 있어 늘 미안하고 고마워하면서 내가 번 거 절반 엄마한테 보육비로 드렸어. 이 나라에서 나같이 ‘잘못 키워진’ 여자가 벌어봐야 얼마나 벌겠어? 내가 돈 쌓아놓고 엄마한테는 쥐똥 만큼밖에 안 갖다 준 줄 알겠지만, 엄마가 지극정성으로 내 아이를 키워주신 것이 진실이고 사실인 것처럼, 나 또한 내 수준에서는 엄마한테 할 만큼 했어. 이건 나의 진실이고 사실이야.

서울 지역에서 내가 엄마한테 아이 전적으로 맡기듯이 하려면 한 달에 100만 원은 더 줘야 그런 보모 구할 수 있다(중학교 선생이 된, 엄마의 귀염둥이 넷째의 충고), 거지꼬라지로 살 던 거 옆에다 끌어다 놓고 밥 먹고 살게 해주니 염치가 없다(엄마 자신의 폭언), 그렇게 애를 방치하지만 말고 아무리 직장일이 밤 12시에 끝난다 해도 기어코 아이를 끌어다 니 집에서 재우고 그 다음 날 출근하면서 장모님한테 다시 맡겨라, 뭐 그 따위로 하냐(언니가 학교 선생하면서 조카를 아침마다 울며 놀이방에 맡기고 미친 년 널 뛰듯 출근하고 할 때, 때로는 조카를 어디 맡길 데가 없어서 아파트 상가 슈퍼에 맡겨두고 학교로 출근하면서 피눈물로 범벅을 할 때 지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에나 매달려 지 새끼 한번 놀이방에 맡기거나 데려오는 일 없었던 그 훌륭한 형부라는 사람의 사족)......

엄마, 주간에는 아이를 무조건 친정에 완전히 맡겨두고 주말에나 들여다보고 집으로 한 번씩 데려 가고 하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엄마가 덜 번거롭다고 말씀하신 거는 엄마 자신이었어. 물론, 엄마가 그렇게 완벽에 가깝게 아이를 맡아주셔서 나, 아이 걱정 한 번 안 하고 편한 마음으로 직장 생활 성실히 할 수 있었어. 그리고 엄마가 그 점에 대해 나한테 섭섭해하거나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도 나는 알아. 그런데 엄마와 나의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는 제삼자들이 어쩌다 한 번씩 내려와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하고 자빠져 있을 때는 정말 직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나 내 집에 들어앉아 내 아이 내손으로 직접 키우면서 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그냥 밥만 먹고 살까, 그런 생각이 굴뚝같더라.

 

그런데도 내가, 남편으로부터 그렇게 ‘일 그만 두고 집에 들어앉으라고, 이 따위로 어정쩡하게 살 거면 차라리 이혼하자’고 협박을 받아가면서도 끝내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엄마 때문이었어. 엄마한테 내 아이 갖다 맡길 때 엄마는 여관 객실 청소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야 하셨지. 난 엄마가 비오듯 땀을 흘리며 그 고단한 일에 한 달 꼬박 매달려 정말 말도 안 되는 박봉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너무 속이 상했었어. 엄마가 아이를 맡아준다면 엄마가 한 달 내내 피땀 흘려 받는 그 월급 정도는 내가 만들어다 드릴 자신이 있었지. 엄마도 그 일 진작에 때려치우고 싶어 한 건 사실이었고.(아이 키우는 일이 그 보다는 쉽다는 소리는 아니야. 난 엄마 덕분에 내 아이 똥기저귀도 몇 번 안 갈아 봤으니 그런 말 할 자격은 없지.)

 

물론 내가 맞벌이를 해야 빈곤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직장을 다녔던 것은 사실이야. 그런데, 엄마, 이건 정말 아니잖아. 내가 엄마한테 푼돈이나 쥐어주면서 아이를 전적으로 맡겨 엄마 혹사시키면서 내 욕심만 차리려 한다는 식으로 언니와 동생들, 인간 비린내 나는 그 작자가 나를 향해 성토할 때는 정말 혀라도 깨물고 싶은 심정이 들더라. 사람이 너무 억울하면 말문이 다 막히데... 엄마, 지금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사람은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니까. 엄마, 그런데 말이지, 난 여전히 똑같아. 좀 전에 내가 한 말 그거 하늘에 맹세코 진실이고 사실이야. 내가 직장 그만 두면 엄마는 뭘 먹고 살까, 나 그 생각 정말 절실히 하면서 고민하곤 했었어... 엄마가 그랬었지. 이젠 나이를 먹어 여관 청소일도 안 시켜 주더라고... 뱃속에서 꺼내자마자 병원 분만실 앞에서 마취가 안 깬 내 품으로 먼저 안겨보지도 못하고 곧바로 외할머니 품에 안겨 지금까지 자라온 내 딸...엄마, 그 아이가 벌써 열세 살이 되었네. 순전히 엄마가 다 키워주셨지. 난 돈이나 버는 기계였고...

 

엄마, 나 이제는 우리 딸 내 집에 데려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손으로 키워보고 싶어. 하지만 난 이 말 엄마한테 절대로 못 해. 왜냐구? 진자리 마른 자리 힘든 시기 때론 밤을 지새우며 내 딸 정성과 눈물로 키워주신 거 알기에, 이제 아이 키우면서 잔손 많이 가고 힘든 일 없어진 이 시기에 와서 홀라당 이제는 내 손으로 키우겠다고 아이 쏙 데려와 버리는 짓, 난 못 해...엄마가 우리 딸 없이는 못 사신다 하신 말이 진실이고 사실이라는 것도 잘 알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얼마 안 되는 보육비 받아 알뜰살뜰 내 딸 먹이고 입히느라 엄마 살림에 보탬 안 되는 것도 잘 알고 있고. 이런 내 마음이 진실이고 사실이라는 것을 왜 남들은 오해하는지 모르겠어. 왜 지네 마음대로 단정짓고 나를 마녀사냥하는지 모르겠어...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족속들은 그럴 테지. 지 딸 그렇게까지 다 키워주고 있으면 그 어떤 섭한 마음도 지 딸 키워주는 엄마한테 가져선 안 된다고. 무조건 감사하면서 감지덕지해야 한다고... 지가 밖에 나가 버는 돈 무조건 다 엄마한테 갖다 드려야 된다고...엄마, 그런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 딸 지극 정성으로 키워주신 거 가슴 깊이 고마운 거는 사실인데, 내 딸 외할머니한테는 몸둘 바를 모르게 고마울 따름인데, 그런데 내 엄마로서의 엄마는 짜증나. 이게 나의 사실이고 진실이야. 어쩔 수가 없어. 이게 내 진심이니까.

 

엄마, 나도 이제 고갯마루에 올라 있어. 조금 있으면 엄마가 내려가고 있는 그 길을 나도 따라 내려갈 테지. 엄마, 나는 정말 엄마가 잘못 키웠나 봐. 다른 딸들이 제 친정 엄마한테 하듯이 그렇게 엄마한테 애틋하거나 마음 아프거나 그런 마음이 없어. 엄마, 이제 와서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만, 엄마가 내 딸한테 내주시는 그 마음의 백만분의 일만큼이라도 나 키울 때 나한테 내어 주셨더라면 얼마나 좋을 뻔 했어... 엄마, 나한테 아무런 기대도 하지 마셔. 나는 구제불능이야. 적어도 엄마 딸로서는. 지금까지 주절거린 말들, 아주 오래 전부터 엄마한테 쏟아놓고 싶었던 말이야. 하지만 이젠 됐어. 엄마한테 이런 말을 해 본들 엄만 날 여전히 잘못 키워진 엄마의 실패작 정도로만 치부하고 말 테니까.

 

이제 난 민들레 홀씨처럼 훨훨 날아갈 거야. 엄마와 형제·자매들의 나에 대한 근거 없는 개무시를 영원히 지워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그 동안 어이없게 짓밟혀왔던 내 정당하고 당연한 한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위해...이젠 나도 온전한 내 삶을 살아야겠어. 이젠 나도 당당한 한 인간으로 가슴 펴고 살아봐야겠어.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와 그 주변인들은 나에게서 좀 멀어져줘야겠어... 더 이상은 나 병신같이 안 살아. *

 

*사람들은 너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다.

예로부터 이 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거창하고 그럴듯한 타이틀 아래 사람들에게 거역할 수 없는 예의와 범절을 가르치고 강요해왔다. 그것의 가장 흔하고도 외면할 수 없는 행동방식은, 나이, 신분, 촌수, 직급을 막론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반드시 고개 숙여 인사를 해야 하는 일상의 ‘인사’이다.

‘인사’라는 것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일 수 있는데, 이 ‘인사’ 때문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온갖 스트레스를 주고 받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너의 경우만 하더라도 너는 직장에서 일단 네 영역으로 발을 디디는 사람들은 그가 누구이든 먼저 가볍게라도 인사부터 하게 된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도 일단 눈인사를 하기도 하고 가볍게 목례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인사를 받는 사람들은 의외로 뚱하니 그냥 인사를 받는 것도 아니요, 안 받는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와 표정으로 너를 급 뻘쭘하게 만들 때가 참 허다하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릴 때면 그것이 참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연세 많으신 노인분들이나 동네 아낙들을 보면 먼저 인사부터 하고 싶긴 하지만 너는 어느 새 마음을 잔뜩 웅크린 채, ‘내가 저 사람들한테 인사를 해도 저 사람들이 내 인사를 무시하거나 모른 척 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앞서 그냥 불편한 대로 거울을 보는 척 하거나 애꿎은 휴대폰을 괜히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다가 어느 새 우리집 앞에 도달하여 냉큼 내리곤 하는 것이다.

네가 이렇게 된 데에는 그 동안 살면서 네가 겪었던 타인들과의 숱한 부대낌과 무관하지 않다. 이 아파트에 이사왔을 때 너는 처음에 누구를 보든 인사를 하려고 시도를 해 보았었다. 한 여자는,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 여자가 이 아파트의 부녀회장이었는데, 네가 먼저 인사를 하자 인사를 잘 받아주고 이것저것 물어오기도 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또 만나게 되었을 때 너는 당연히 인사를 했다. 그녀는 네 인사를 넙죽 잘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 또 만나게 되었을 때도 너는 넙죽 인사를 했고 그녀 또한 냉큼 너의 인사를 잘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너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여자는 왜 나한테 한 번도 인사를 먼저 하지 않는 것일까. 저 여자는 왜 맨날 내 인사를 받기만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자, 너는 그 여자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우연히 아파트에서 얼굴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먼저 냉큼 인사를 건네지 않고 잠시 기다려 보았다. 역시. 그 여자는 쌩 하니 그냥 지나간다. 아, 내가 착각을 한 것은 아니었구나. 저 여자는 나의 인사를 받을 줄만 알았지, 먼저 인사를 건넬 마음은 없는 여자였구나...

그런데 그 여자처럼 그렇게라도 자기가 먼저 인사를 남에게 건넬 줄은 모른다 해도 남의 인사를 쌩까지는 않고 성실히 받아주는 것만도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하나의 미덕을 갖춘 인격체라고 생각을 고쳐먹게 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직장에 있다 보면 참고서나 문제집, 교재를 취급하는 영업 사원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들은 대부분 먼저 허리까지 굽히며 형식적인 인사라도 먼저 하게 되어 있는 부류들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네가 일하고 있는 학원에 교재를 가지고 오는 모 교재사 영업 사원은 일절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그 순간이 뻘쭘해 네가 먼저 인사 비슷한 것을 하게 되곤 했는데, 어느 날 그 영업 사원이 원장과 함께 학원문을 열고 당당히 들어섰다. 너는 ‘안녕하세요’를 외치는데 그 영업 사원은 대답이 없다. 너는 급 뻘쭘해졌고 원장과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화를 나눈다. 그러니까, 뭐야. 저 영업 사원은 원장과 친분이 있는 관계로 원장에게서 월급을 받고 있는 선생이 건네는 인사 따위는 그냥 쌩 까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거지... 아하, 그 동안 저 사람이 나를 보고도 단 한 번도 인사하지 않았던 것이 그러니까 자기가 원장이랑 친분이 있으니까 그 원장 밑에서 일하는 강사 따위는 저도 원장의 입장에서 무시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거지...

 

인사성이 유난히 바른 외할머니 손에서 키워진 너의 딸은 동네에 나타나는 모든 어른들한테 열 번 만나면 열 번을 다 인사를 하곤 한다. 그래서 어떤 노인은 쌈지를 꺼내 천 원짜리 한 장씩 곧잘 네 딸 손에 쥐어 주시곤 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런 네 딸에게 앞으로는 그 노인께는 멀리서 발견했을 때는 그냥 지나쳐 가라고, 달려가 일부러 코 앞에서 인사하지 말라고 하셨단다. 인사를 할 때마다 그것이 이뻐서 몸빼바지 깊숙한 곳에 누벼둔 쌈지를 헤짚고 꼬깃꼬깃하게 접힌 천 원짜리를 울 딸 손에 꼬옥 쥐여 주시면서 그렇게 머리를 쓰다듬곤 하신다는 거다.

아이를 주말에 집에 데려오는데 역시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 부녀회장을 만났다. 너는 뻘쭘하니 허공 어딘가를 두리번거리는데 너의 딸은 냉큼, “안녕하세요”를 외친다. 그녀, 뭔가 무척 바쁜 듯 인사도 받지 않고 그냥 휑하니 지나가 버린다. 너는 딸에게 다그쳤다.

“너, 저 아줌마 알아?” 울 딸은 당연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근데, 뭣하러 인사했어?”

이제 너는 노골적으로 아이에게 신경질적이다. 아이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이렇게 대꾸한다. “할머니가 어른들한테는 무조건 인사부터 하라고 하셨는데...” 그 놈의 인사, 인사, 인사... 엄마는 너에게도 무조건 인사하라고 가르치셨지. 인사성 없다는 소릴 듣는 애들을 보면 엄마는 그 부모를 탓하곤 하셨었지. 그래, 니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 배운 대로 행하였을 뿐. 그러나 너는 딸에게 뭔가 수정된 인사법을 가르쳐야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생긴다. “너, 엄마 말 똑똑히 들어. 앞으로는 할머니 친구분들하고 네 친구 엄마들, 그리고 네가 알고 있고 너를 아시는 어른들한테만 인사해.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인사 하지 마. 아무리 백발 노인이더라도...”

그 말을 듣고 있던 너의 딸, 아무래도 너무 이상한 말을 들은 것처럼 의아스러운 표정이 된다. 너는 조바심치며 딸을 다그친다.

“엄마 말 알아들었어?” “응..., 아니, 네...”

엘리베이터 안에서 딸아이가 뭔가를 한참 고민하는 눈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엄마. 나는 나도 모르게 어른들만 보면 무조건 인사가 입에서 튀어나오는데 어떡해?” 그래, 그게 바로 너의 이쁜 버릇 중의 하나였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젠 안 되겠어.

“이제부터는 그 사람에게 인사를 해야 될지 어떨지 조금 생각을 해 보고 인사를 하도록 해.” 딸 아이는 고요히 고개를 끄덕였다.

외모보다는 성격에서 우리를 유난히 빼닮은 너의, 그리고 나의 딸, 그 성격 그대로라면 너 또한 이 엄마처럼 타인들로부터 참 많은 상처를 입을 타입이지. 그러니까 더더욱 안 돼. 인사를 주고 받는 아주 단순한 행위에도 인간관계의 오묘한 역학 구도가 들어 있단다. 적당히 쌩 깔 줄 아는 인사의 기술이 필요한 법이지. 나는 너의 어미로서의 동물적 보호 본능으로 너에게 이 새로운 인사법을 꼭 가르쳐야만 되겠구나... 네가 누군가로부터 인사성 없는 아이라는 소릴 듣는다 해도 너의 그 햇살같은 인사를 외면하고 못 본 척 지나치는 버르장머리 없는 어른들한테서 네가 받게 될 이유없는 마음의 상처들로부터 너를 반드시 지켜내야만 한다는 일념 아래 이 엄마는 어미로서의 동물적 보호 본능만이 이글거린단다.

네가,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은, 적어도 누군가의 인사를 눈깔 희번덕거리면서 외면하지는 말아줬으면 하는 것. 자신이 먼저 머리 숙여 인사하지는 못할망정 누군가의 인사를 묵살하지는 말아줬으면 하는 것.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여...

언제부터 잉태된 일이었을까. 나 어려 홀로 골목을 쏘다녔고 나 어려 홀로 뒷산을 헤매고 다녔지. 첫 눈이 내리는 날부터 흙 속에 언제쯤 새싹이 파릇하게 다시 돋아날까, 목을 빼고 바라보았지. 노을이 지는 저녁 어스름 녘에 광업소 사택을 향해 나가는 철판 다리 위에 서서 미나리꽝 건너의 서편 하늘에 핏빛 노을 휘장 바라보면서 왠지도 모를 슬픔에 겨워 목울대가 뻐근했지. 곧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키며 바라본 순경산 자락, 그 곳엔 온통 불이 붙고 있었지. 연기 한 줌 없는 산불. 나는 정말 불이 났다고 슬레이트 지붕집 우리집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 엄마, 엄마, 뒷산에 불이 났어! 자못 기대하는 얼굴로 엄마를 향해 외쳤지. 복숭아같이 발그레한 내 뺨, 엄마는 잠시 흘깃 시선을 그 곳에 두었다가 너 거기 있었느냐 말 한 마디 없이 하던 바느질을 계속 했지. 그래서 나는 내가 본 것이 진짜 산불이었는지 아니면 엄마의 관심을 일으키려는 내 마음이 그려낸 도화지 속의 연기 없는 산불이었는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것이 아리송하지.

 

어느 날 나는 한밤중에 깨어나 아주 말쑹한 정신으로 어둠 속을 지켜보았지. 어둠 속에서 문득 바라본 방 한 구석 벽을 타고 연둣빛 용 한 마리 넘실넘실 흘러가고 있었지. 두렵고 무서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뜬 그 허공 그 자리에서 연두빛 용의 끝을 알 수 없는 긴 흐름은 여전히 넘실거리고 있었지. 한밤중에 자다 깨어 연둣빛 찬란한 용 한 마리를 보았다고 엄마에게 말할까... 망설이다가 나는 이내 입을 다물고 말았지. 또 다시 외면할 엄마의 무심한 시선을 상상하기도 싫어 그리고 내가 또 거짓말을 잘 하는 아이로 엄마에게 낙인 찍힐까 싶어...그렇게 그렇게 엄마에게 하고 싶고 묻고 싶었으나 할 수 없고 하지 못한 말은 나의 가슴 한 켠에 차곡차곡 쌓여갔지.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그 숱한 말들은 이제 말이 아니라 단단한 응어리로 지어진 캐슬이 되어 점점 커져만 갔지. 그 캐슬은 급기야 나를 삼키고 나는 긴 머리의 라푼젤이 되어서 캐슬의 다락방에 갇히고 말았지.

 

캐슬의 다락방엔 나와 내 마음밖엔 아무도 없었지. 나는 오직 내 마음을 동무 삼고 캐슬의 창밖으로 펼쳐진 드넓은 하늘을 보며 살았지. 그렇게 캐슬 속에 갇힌 나에게 ‘라푼젤 라푼젤 머리를 내려줘요...’ 그렇게 내 머리를 타고 올라와 하늘만 바라보며 마음을 부여잡고 나이가 들어버린 나를 따스히 안아 입맞춤 해준 그이가 있었지. 나는 그이가 내 머리를 타고 올라올 때 호주머니 속에 넣어 온, 연민과 인내, 의지라는 밧줄을 그이의 가슴에 안겨 타고 내려와 두려움이 가득한 세상을 향해 첫발자국을 떼었지.

내가 내딛는 발자욱마다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해댔지. 저기 캐슬에서 갇혀 자란 라푼젤이 간다. 라푼젤은 우리와 달라... 우리와 다르면 나빠. 우리와 다른 라푼젤은 멀리멀리 쫓아내 버려야 해... 비웃는 사람들이 두려워 오던 길을 되짚어 캐슬의 다락방으로 되돌아가겠다는 나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 안고 번쩍 들어 안아 저벅저벅 세상을 향해 나아간 그이가 있었지. 아주 작은 숲속에 나뭇잎으로 엮은 집을 짓고 그이는 나무를 해서 내다 팔고 나는 산나물을 캐다가 내다팔며 살기 시작했지. 내가 캔 산나물은 사지 않겠다며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며 멀어져가곤 했지. 그이의 나뭇짐은 사주면서 그 옆에 쪼그려 앉아 파는 나의 나물들은 사람들은 무슨 오물이 묻은 것을 대하듯 그렇게 손사래를 치며 저만치 멀어져 갔지.

 

나는 너무나 궁금했지. 도대체 사람들은 왜 나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죠? 지나가는 노파에게 물었지. 매부리코에 요술지팡이를 거머 쥔 그 노파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지. “네가 고집이 세어서 그런 거지. 너의 이마에 새겨진 주홍글씨를 너는 어찌 몰라보는 거지?” 주홍글씨를 새긴 자들은 주홍글씨를 갈고 닦아 빛을 내야 해. 주홍글씨가 사라지기 전에 빛을 내야 해...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근원에서 네가 이 세상에 오기로 정해졌을 때 이미 새겨진 주홍글씨... 그 누구도 운명을 거역할 순 없지. 혹시 너의 엄마 이마에 남아있는 주홍글씨의 흔적을 너는 보지 못하였니? 네 엄마를 닮아나온 너의 운명은 네 엄마조차 너를 꺼리게 할 운명이었지. 주홍글씨를 이마에 새기고도 빛을 내지 않는 자들은 모두가 프로메테우스가 되어버리지. 붉은 선혈 뚝뚝 흘리며 독수리에게 파먹히는 간을 가진. 아침이면 탱탱히 새로 돋아오른 살진 간을 가져야 할. 쪼아먹히고 뜯어먹히는 지독한 간을 쉼 없이 새롭게 갖고 또 가져야 할... 너의 운명이 다하는 날 그 간도 더 이상 새로워질 수 없는 거겠지.

 

그것은...감히 주홍글씨를 새기고 나온 자의 운명을 거부하고 세상에 묻어 살고자 고집을 세운 너의 미련함과 아둔함 때문이지. 네가 아무리 발버둥 치고 몸부림 쳐도 프로메테우스의 간은 잠들지 않는다. 프로메테우스의 잠들지 않는 간을 도려내고 네 주홍글씨를 빛내고자 한다면 저 깊은 산 속 오두막으로 오너라.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법이지.

노파는 이마의 선명한 주홍글씨를 반짝이면서 요술지팡이를 짚고 사라져갔지.

 

그래도 그래도 나는 가지 않았지. 눈을 뜨면 탱탱히 새로 돋아 번들거릴 가슴 한 켠 간덩어리를 생각하면, 그 간을 물어뜯을 수많은 독수리떼를 생각하면... 이 생명이 다 해야 멎을 간의 피흘림. 라푼젤은 오늘도 캐슬의 다락방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 잠그는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에필로그

TV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권정생 님의 <강아지똥>이 방영되고 있었다. 똥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똥 강아지똥이 기꺼이 거름이 되어 눈물겹게 피워낸 민들레꽃에서 민들레 홀씨가 연기를 피어올리듯 하늘을 향해 모락모락 날아오르고 있었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애니메이션 속에서 훨훨 날아오르는 민들레 홀씨와 눈물겨운 강아지똥의 생의 대장정을 지켜보면서 너는 닭똥같은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너와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너와 나의 아이가 말똥한 동공을 반짝이며 우리에게 물었다. ‘엄마, 저 강아지똥이 뭐가 그렇게 불쌍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가슴에 ‘나도 별이 되고 싶다’는 꿈을 새기며 울고 또 울었던 강아지똥의 애절한 기도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나서야 비로소 ‘별’이 된 빈센트의 애환 가득한 눈과 함께 이제...너와 내 가슴의 기도가 되어 우리를 울린다.

 

-2012년 4월 8일-

 

도라지꽃2012-11-11

저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제 삶의 트라우마입니다. 제가 쓰는 모든 글의 바탕엔 이 트라우마가 스며 있습니다. 이제 그것을 떨쳐내고 싶습니다. 많이 노력했고 많이 달라졌습니다. 글로 쓰면서 소통하면서... 다시 읽을 용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저도 이 부분 이 대목이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 모습 또한 저의 모습이고 저의 일부분이기에 함부로 도려내고 팽개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또 다시 더욱 더 집요하게 저에게로 스밀 테니까요. 이제... 그래선 안 됩니다. 저는 바닥에서 길 만큼 기었으니까요. 이제 이 글에서 만큼 엄마를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그 만큼 엄마에게서 적당한 거리를 스스로 두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것은 또 다른 슬픔입니다. 그래도 아주 떠나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인걸요. 님의 떠나간 동생분도 저처럼 아팠나요? 이 글이 님을 많이 우울하게 했다면 미안합니다. 미워하는 마음도 원망하는 마음도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든 사랑의 , 일그러진 사랑의 한 모습임을 저도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알았습니다. 일그러진 사랑은 아픈 사랑이라는 것도요. 그리고 적당히 한 눈 감고 가는 방법도 이제 서서히 알아가고 있답니다. 그것이 저를 살게 하니까요. 석광희님, 글속의 정황과 상황을 겪으셨다면 님과 제가 더 이상 무슨 말로도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기엔 역부족임을 아실 겁니다. 이렇게 읽어주시고 소통해 주신 것만으로도 저는 고맙습니다. 그냥 이건 소설일 뿐인 걸로! 그렇게 지나가 주십시오. 이것이 논픽션이라면 그 주인공은 저, 도라지꽃이고 님은 그저 독자일 뿐임을 상기하세요. 우울함이 깊어지지 않으시길 저는 빌겠습니다.

 

석광희2012-11-11

도라지 꽃님의 이야기신가요? 내용을 아주 찬찬히 읽어 내려갔어요(이런 내용은 경험에서 나오는거 맞기에) 도라지님 마음도 어머님의 손녀사랑 마음도 어머님이 도라지님에게 하신 많은 말씀..행동들 모두 저는 알아집니다 같은자식 다른차별 ..그 외..다른 이야기들 저희 형제는 모두 묻어두기로 했습니다 떠난 제 동생도 역시 묻고 떠났을 겁니다 많이 우울해지려 합니다

도라지꽃2012-11-11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엘리베이터를 무수히 타고 오르내리면서도 서로 눈길 한 번 마주 치지 않는 삶이 저는 굉장히 괴로웠습니다. 물론 먼저 인사를 건네고 또 건네다가 그 인사를 받아주는 것조차 인색한 사람들에게 어쩌면 오기같은 것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심지어 백발 할머니들에게도 인사를 해도 멀거니 먼 산이나 쳐다보고 옆에 누가 있는지 나는 모른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도 보았습니다. 저는 이제 안 하려고요. 스스로 맘 상하기 싫어서요.^^

 

석광희2012-11-11

네..생활 속 일상인데도 인사라는 말 곱기도 민망한 말이되어 상처가되어 내게 돌아오는 일들도 있어요 인사라는게 상대의 위치나 본인의 겉치레가 아닌 진정 마음으로 표현하는 몸짓인데 재수없다..생각 할 만큼의 모욕감을 받은 경험이 제가 있어요 나도 고고한 성품이 못 되다보니 몇번 마음의 인사를 했씀에도 받아주긴 커녕 무시하기에 저도 그 후 그녀를 보고 보란듯 휑~하니 지나쳐버린 경우가 있답니다 인사란 서로의 대한 예의라고 배웠고 자녀들에게도 그리 가르쳤는데 요즘은 간혹 그런 가르침을 못받은 사람들이 더러 있지않나 싶습니다

도라지꽃2012-11-11

님의 동생분도 어쩌면 이 세상에 더 이상 그 어떤 기대와 호기심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또 살면 살수록 심장을 에이는 보이지 않는 독수리떼의 쉼없는 공격을 더 이상은 참아내기 싫었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고 싶었을 수 있습니다...

석광희2012-11-11

열심히 읽는데 계속..ㅎ 넋을 잃고 읽은건 아마도 제 여동생 어려 모습을 보는 듯..독특하게 동생은 수 많은 말들을 스토리를 만들어 엄마에게 혹은 큰언니인 제게.. 어느날 안데르센 동화집 50권을 사~나흘에 암튼 괴짜지만(생각도행동도) 제겐 이쁜 또는 미운..그런..떠난지 벌써19년째 되어오네요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잘 보고 나갑니다.

도라지꽃2012-11-08

국어교과서에 강아지똥이 실려 있었지요. 가르칠 때마다 목 구멍이 메어오곤 했었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빈센트와 나 2012-11-08

아이로 인해 강아지똥을 여러번 읽어봤어요~ 애니메이션은 보지 못했었는데;;;글 읽어보니 꼭 보고싶네요.

도라지꽃2012-11-11

석광희님, 님도 글로 풀어낼 많은 응어리가 있으실 거 같아요.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의 내용에서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좋은 책과 글은 다른 책과 다른 글을 자꾸 읽고 찾아보고 싶게끔 만드는 것이라고요. 또 작가의 슬픔은 독자의 즐거움으로 소통되는 것이 글 쓰는 자들의 운명같은 것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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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광희2012-11-11

민들레 홀씨..밑도끝도없이 저는 눈물나는 말입니다 (그런 사연이..있어요) 강아지 똥 손자덕에 책을 보곤 별것이 이제 제목이로 나오네..?싶어 내용을 보니 손자가 아닌 제 마음이 움직여서요 몇년전 일 이지요 애니메이션으로요? 찾아봐야겠습니다^^ 요즘 제가 어린아이가되어 티비 만화프로를 즐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