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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터미널에서- 70과 80사이
BY 가을단풍 202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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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024년 2월 16일 목요일,
날씨: 바람은 맑고 고요하며 햇살이 따뜻하다.
제목: 버스터미널에서 – 70과 80 사이
공주 장날이다.버스터미널 근처에 다다르니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15시 30분나는 마곡사행 610번 버스를 타기 위해 바삐 걸음을 옮겼다.아직 십여 분의 시간이 여유가 있는 터라 버스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왠일인지 터미널 밖이 소란스러웠다.‘뭔일이랴’ 하고 생각하며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그곳엔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가 원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서고 있으며, 또한 크고 작은 보따리들이 놓여 있었다.그런데 쌈판이 시작되어 있었던 것이었다.“왜 그런대유...”하고 앞 사람에게 물었더니싸우는 이유를 설명했다.뒤에 줄을 서고 있었던 할머니가, 제일 앞자리에 서 있는 할머니 앞에 자기 짐을 갖다 놓았나 보다. 앞에 있는 할머니가 뒤에 있는 할머니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왜 남의 옆에 자기 짐을 갖다 논는 겨???뒤에 있는 할머니도 만만치 않았다.”그까짓 것 짐 보따리 하나 앞에 논는 개 뭐가 잘못이라고 그랴. 내가 별 꼴을 다 본당께!!!!!“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했다.”싸울 일도 아니구먼...”또는 ‘그럴 수도 있지, 시골버스 타는게 다 그렇치’ 등등,,,,그리고 앞에 있는 노인네가 너무 인색하다는 등, 또는 늙은이들이 기운도 좋다는 등, 제각기 한 마디씩 하기도 하고 대체적으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뒤에 있는 할머니 편을 들었다.앞에 있던 할머니 더욱 분개하여 더 크게 소리쳤다.“어이구 내 나이가 칠십여, 내 나이 칠십에 별꼴을 다 봐. 이런 일은 생전 처음여” 하며 악을 썼다.뒤에 있던 할머니도 지지 않았다.“늙은 게 뭐 유세감, 나는 팔십이다 왜. 나도 이런 일은 첨 봐, 별 꼬려. 참말 별 꼴이랑께.”싸움은 시간이 지나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그 때 마침 내가 탈 버스가 왔다.버스 안에서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먼저 규칙을 안 지킨 것은 팔십 할머니인데, 많은 사람들이 팔십 할머니 편을 들었다.억울한 칠십 할머니의 노발대발하는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칠십 할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의 짐보따리는 자기 옆에 놓아야 맞는 것이고, 팔십 할머니가 그의 짐 보따리로 자기의 영역을 침범한 셈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팔십 할머니가 억울하다고 역성을 들어 주었다.
사는 게 그렇다.70의 할머니 편에서 생각하면 70의 할머니 편이 옳고80의 할머니 편에서 생각하면 80의 할머니도 그럴 수 있는 것이다.이처럼 모든 사건에는 자기의 입장이 있는 것이다.그리고 그에 처해 있는 상황과 배경, 또는 주어지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공주 장날에 시내버스를 타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겨난다.만약 공주 장날, 시외버스 터미널에서의 이야기가 아니고 다른 곳에서 있었던 일이라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비행기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항 터미널이라고 가정해 보자.이는 절대 칠십 할머니 같은 억울함이 생기지 않을 뿐더러 어느 누구도 팔십의 할머니가 옳다 하지 않을 것이다.그처럼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어느 때는 규칙을 어기고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가 하면, 또 어느 때는 아주 작은 실수로도 심한 비난을 받기도 하는 등, 억울함을 느낄 때가 많다.다시는 볼 수 없는 두 할머니를 생각하며 조용히 하루를 마감하였다.사는 게 그렇지 뭐.대중 속에서 삶의 소리를 들으며 모두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