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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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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복자씨


BY 박예천 2021-11-18

복자씨가 가출을 감행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단 한 번도 귀가를 늦추거나 외박 한 적이 없었기에, 
남편과 나는 며칠째 어리둥절한 상태다.
복자씨가 집나가던 날보다 하루 전쯤, 그녀의 아들 ‘치즈’가 먼저 뛰쳐나갔다. 
치즈는 며칠 외박 후에 불쑥 집으로 고개를 내밀던 녀석이어서 그다지 걱정되지는 않았다. 
불편한 기색으로 지내던 복자씨 모습을 본 후라 내내 맘이 편하지 않다. 
아픈 몸으로 어디를 간 것인지.
 
복자씨가 처음 우리 집에 오던 날. 
애지중지 다루던 남편과 달리 나는 곁을 내주지 않았다.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고, 손 내밀어 만져보는 것도 두려움이었다. 
이름을 짓는 일에 고심하는 남편 앞에,
오래 생각하지 않고 툭 던지듯 쉽고 편하게 ‘복자’라고 내가 정해버렸다.
이왕지사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우리 집에 복이라도 잔뜩 가져오라는 심산이었다. 
두 해를 같이 살았다.
꼬물꼬물 귀염둥이들도 세 번이나 낳아주었다. 
질색을 하며 거리를 두던 나였는데, 
어느새 등을 쓰다듬거나 먹이 챙겨주는 일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올 여름엔 복자씨가 많이 아팠다. 
동네를 건달마냥 돌아다니며 행패를 부리던 악마(이것도 우리부부가 지은 이름)가 다리를 물어뜯어 놓았다. 
피가 많이 나고 상처가 커서 병원을 찾았다. 
수술과 입원을 거듭하며 힘겹게 이겨냈던 복자씨였다. 
상처의 통증으로 밤새 끙끙거리다가도 남편이 끌어안고 있으면 설핏 잠이 들곤 하였다. 
자식처럼 보살피는 남편의 정성을 바라보며, 
넘치는 애정을 받는 복자씨가 아주 조금 부럽기도 했다. 
 
마당가 텃밭에 잡풀이라도 뽑고 있노라면, 
곁에 다가와 아는 척을 하던 친절한 복자씨.
강아지마냥 졸졸 따라다니며 산책도 즐기고, 멀리서도 이름을 부르면
대답까지 하며 다가오던 모습이 눈앞에 삼삼하다. 
 
그 날 이후, 오며가며 뜰에 나서면 서쪽을 바라보게 된다. 
야트막한 야산 쪽에서 오솔길을 따라 빠르게 걸어오던 복자씨가 
불쑥 지금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아서이다. 
퇴근하여 자동차 시동을 끄는 순간 어디선가 쪼르르 달려와 반기더니 
하루의 일과 중 하나가 빠져버린 기분이다. 
이층을 오르내리는 계단에 세로로 길게 난 쪽창을 내다보며, 
멀리 길바닥에 점하나가 보여도 복자씨인가 한다. 
다리가 거의 회복되고 이젠 다른 곳이 아픈지 불편해 하더니
주인 걱정 덜어주고자 떠난 것일까. 
 
길고양이로 태어나 이집 저집 옮겨 다니다 정착했던 내 집에서 
오래오래 잘 살 줄 알았는데 기어코 떠나버렸다. 
생사를 알 수 없지만, 
고마웠다는 말조차 건네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남는다. 
부부사이 이렇다 할 대화의 주제도 없던 시기에 복자씨로 인해 참 많은 
사연 남기기를 했었다. 
그깟 고양이 한 마리 사라진 것을 뭐 이라 장황하게 늘어놓는가 싶겠지만,
우리 가족에게 복자씨의 의미는 특별하다. 
 
해가 기울고 바람이 차가워지는 저녁이면, 
집 떠난 복자씨가 이제라도 돌아오기를 바라며 
볏짚 냄새 가득한 빈 들판을 향해 소리쳐본다. 
“복자야! 복자야!”
네가 가져다 준 복으로 넘치게 감사한 날들이었노라고 
꼭 한번 말해주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