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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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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악처다


BY 만석 2021-10-31


아침에 일어나니 영감이 벌써 차비를 하고 현관을 나선다.
"어디 가요?"
"밥 얻어먹으려고 밥값하러 가지."
누가 들으면 마누라가 얼마나 닥달을 하는 줄 알겠다.
돌돌이를 챙긴 걸 보니 시골엘 가는 모양이다.

고추는 수확을 했고 고구마를 캐 놓았다 하더니, 그걸 챙기러 가는 모양이다.
"나도 따라 갈까요?"
"당신은 가도 들고 오지도 못해."
"조금이라도 배낭에 메고 오죠."
"고구마라서 무척 무거워. 오늘만 가져오면 되는 걸." 밭이 걸어서 고구마가 무척 걸지긴하다.

기어히 혼자 가겠다고 나선다. 힘이 들 게 뻔해서 그닥 내키지는 않지만,
벌써 사흘째 혼자 돌돌이로 고구마를 나르고 있으니 딱해 보여서 한 소리다.
"그만 둬. 나나 슬슬 다니지 뭐."
그럴 땐 썩 맘에 든다.
마누라가 썩 내키지 않는 소리를 한다는 걸, 영감은 고추를 딸 때부터 알아봤겠지.

어제는 시골집 이웃의 머리 허연 집안 내 손주뻘 되는 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시댁은 집성촌이어서, 누구라도 할아버지고 아저씨고 아주머니다. 우리가 촌수가 높아서 젊어서부터 서울할아버지니 서울할머니라고 불리었다.
"아니 고구마를 좀 실어다 드리려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막무가내로 마다 하시네요."
곧 죽어도 남의 신세는 지려 하지를 않는 양반이니 어련하셨을라구. 보지 않아도 그림이 그려진다. 세워놓은 경운기도 있었을 터이고 집집마다 일 없이 서 있는 자동차는 없었을라구.

허긴. 하루 건너 한 번씩 다녀오니, 집에서 노느니 시골 바람도 쐬고 다닐만 하다지 않는가.
사실 나도 종일 붙어 있는 것보다, 영감의 나들이가 오히려 반갑다. 힘이 들지 않느냐 물으니,
"에레베타가 잘 돼 있어서 힘은 안들어."한다. 힘이야 왜 안 들겠는가. 시골 태생이지만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한 사람이라 호미도 쥐어 보지 않았다고, 내가 시집을 가니 이웃에서 이구동성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땅을 놀리는 게 부모님께 큰 불효라며 고생을 사서하며 다닌다.

뒷마당의 두 그루의 감나무는 올해도 두 접은 실하게 감을 달아 놓았나 보다. 오늘은 납작감을 한 자루 담아다 쏟아 놓는다. 짜잖은 텃밭이라고 나에게는 괄세를 받았는데, 이렇게 먹을거리를 푸짐하게 장만하고 영감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겨우 내 내 간식거리가 푸짐하다. 그동안은 영감도 바빴고 나도 정신이 없었으니 동네사람들만 좋은 일 시켰겠지. 올해는 영감이 밥값을 한다고 마누라 배만 불리게 생겼다. 아랫층 아들 네 식구들은 감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구마나 한 박스 들어다 줘야겠다. 아, 막내딸도 고구마는 좋아하니 가져가라 해야겠다.

저녁에 밥을 먹으며 영감이 내 눈치를 살핀다.
"쪼끄만 차 하나 살까?"
"아이고 말아요. 고추를 사 먹고 말지. 고구마를 사 먹고 말지. 감도 사 먹고 말테야."
차에 들어가는 경비로 택시 불러서 타고 다닌다고 차를 없앴더니, 택시는 커녕 공짜 지하철에 맛이 들어서 사서 고생을 하기는 한다. 그래도 차는 사지 말아야 한다. 영감의 나이가 있잖나.이런 땐 영감이 썩 맘..이런 땐 영감이 썩 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