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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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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림 엽서


BY 들국화 2020-09-11

2. 그림 엽서

  내 나이 10서울에서 부임 하신 담임선생님은 서너번 헹군 쌀 뜬물처럼 뽀오얀 피부에 개구리 왕눈이의 우수가 잠겨 있는 부리부리한 눈과 단팥이 가득 들어 한입 깨물면 불그레한 속이 드러나는 호빵 같은 얼굴이 큰 누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포근함으로 나의 3학년 1학기 생활을 풋풋하게 물들여 놓았다.

달래냉이 ,씀바귀 캐어 한 소쿠리 곱게 다듬어 뒷동산  풀섶에 몰래 숨겨 두었다가 어스름 달빛아래 동네 끝자락 외진 우물가 맑은 물 두레박질 하여 깨끗이 씻으면 금방이라도 들녘으로 달아 날 것 같은 싱싱함에 함박 웃음지을 선생님을 생각해 본다뽀오얀 쌀 뜬물에 커다란 수저로 된장  풀어 매회 끌이다가 팔팔 끌어 오르면 준비한 봄나물을 넣고 숨을 죽인다구수한 된장찌개 냄새에 내 마음은 어느새 이룰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 든다

날이면 날마다 학교생활의 하루는 즐거움을 주는 만큼 너무 짧기만 한 것이 아쉬움을 남기곤 했다이번 시간에는 무슨 말씀을 하실까쫑긋한 토끼 귀를 세우고 초롱초롱 눈망울은 한시도 뗄 수 없는 몰입 상황을 만들었다내일은 어떤 옷차림을 하실까개나리꽃 노란 옷을 입으실까백 목련의 하얀 옷을 입으실까차라리 자색 목련색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차라리 라일락 향기 그윽한 옷은 어떨까?

 이제 잠시 헤어져야 하는 여름방학이 만남의 즐거움을 그리움으로 변해가고 때 아닌 감기 몸살로 몸은 펄펄 열 오르고 눈동자의 초점이 맥없이 흐려지니 허겁지겁 양호실로 업혀가서는 겨우 해열제 먹고 물수건 찜질을 한 후 속앓이가 진정되는 듯 했다이제 일부분을 포기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을 마음에 준비라도 한 듯 찐한 가래침을 두 차례 꿀꺽 삼키고 나니 어느새 두 눈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마당 끝 커다란 미루나무에 올라가면 서울이 보일까하루에도 몇 번씩 미루나무 꼭대기를 쳐다본다조각 구름 사이로 해님이 살포시 고개 내밀면 방끗 미소 짓는 선생님 얼굴로 형상화되고 어느덧 미루나무 주위만 빙글빙글 돌다가 까치 울음 소리에 반가워 서울이 더 잘 보이는 곳으로 동네에서 제일 높은 왕 소나무까지 단숨에 뛰어 올라가 긴 한숨을 내려 쉰다.

드디어 기다리던 선생님의 그림엽서가 깨알 같은 글씨로 단장되어 나에게 배달 되었다우체부 아저씨의 고마움에 몇 번을 고개 숙여 인사를 했던가장충체육관이 사진으로 들어 있는 그림엽서엔 방학 숙제 잘하고 몸 건강한 모습으로 2학기에 다시 만나자는 그 한마디에 가슴 속 심하게 언친 체증이 한방에 싸르르 내려가고 이 방학이 끝나면 곧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되어 피어 오르는 흰 구름을 타고 미루나무 꼭대기를 지나 동네 왕 소나무를 거쳐서 서울 하늘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빙빙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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