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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함께(11) - 밥


BY 귀부인 2020-09-10

2020년 8월 20일



  열대야로 밤새 잠을 설쳤다. 찌부둥한 몸을 겨우 일으켜 신선한 아침 

공기를 기대하며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아쉽게도 바람 한 점 들어 오지 

않는다. 이런 날은 입맛이 없기 마련이라 아침은 거르고, 아침겸 점심으로 

간단하게 먹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가 없다. 어른을 모신다는게 쉽지 않은 

점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매 끼니를 제 시간에 차리는 것도 그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 혼자 였으면 시원한 우유 한 잔에 과일 한 쪽이면 

충분할텐데....


  아침 준비를 위해 부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밤새 갇혀있던 더운 

열기가 후욱 하니 달려든다. 숨이 턱 막힌다. 오늘도 국물 없이는 밥을 잘 

못드시는 어머니를 위해 국을 끓여야 한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끓인 후 

오래 두고 먹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아마 반도 먹지 못하고 버릴게 

뻔하다. 그러다보니 항상 두끼 이상은 먹지 않도록 양을 조금씩 하게 된다. 

오늘 아침엔 쇠고기 무국을 뭉근하게 끓였다.


  뭐 대단한 음식을 한 것도 아닌데 아침부터 땀을 쏟아낸 후 어머님을 

깨웠다. 입맛 없으실텐데 하는 생각은 괜한 기우였다. 국에다 밥을 말아 

드시고 나선 바나나에 , 요플레까지 드신다. 밥을 드시면서 오늘도 잊지 

않고 당부 하신다.

"낮에 너 혼자 있다고 밥 굶지 말고 꼭 챙겨 먹어라."

센터에서 오는 차를 기다리는 시간에도 밥 굶지말고 꼭 챙겨먹으라는 

얘기를 재차 하신다. 혼자 있는 며느리 밥 안 먹을까 신경이 쓰이신 

모양이다.


  어머니는 특별히 가리는 음식 없이 다 잘 드시는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란요리는 싫어 하신다. 계란찜이나, 계란말이 등 다양한 

계란 요리를 해드려도 숟가락조차 대지 않으신다.

"어머니 드시기 싫어도 한 번 드셔 보세요. 계란이 얼마나 영양가가 

많은데요. 건강을 위해서라도 좀 드셔 보세요." 

하지만 마지못해 한, 두숟가락 드시곤 그걸로 끝이다. 왜 그러시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단지 계란이 아침 밥을 대용하는 대표적인 음식이란 생각에, 

괜한 반감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추측할 뿐이다.


  아무튼 어머니의 유별난 밥 사랑은 내게 새삼스러울게 없다. 신혼 

여행을 다녀와서 인사를 간 자리에서 하신 말씀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너의 남편 아침밥은 꼭 해 먹여라. 밥 대신에 계란 후라이 해서 먹이면 

안 된다."


  오래 전 남편의 첫 발령지인 두바이에 오신 적이 있다. 그땐 살림살이도 

서툰데다 연년생 두 아들 키우느라 정말 힘든 때였다. 외식이라도 자주 

했으면 좋았을텐데 중동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신다니 그럴 수 도 없었다. 

어머님이 도와 주긴 하셨지만 매 끼니 식사 준비는 내게 너무 버거웠다. 

어쨌거나 3주간을 머무신 후 귀국하시기 전 날 아주 진지한 얼굴로 

어머님이 한 말씀 하셨다.

"이제 내 눈으로 너의 신랑 아침에 밥 해서 먹이는걸 봤으니까 이제 마음

놓고 가도 되겠다."


  요즘은 밥이 아닌 빵이나 떡 등 다른 음식으로도 충분히 한끼가 된다. 

그러나 어머님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가끔 면 종류를 드시기도 하지만 

어머님에게 한 끼 식사란 밥을 드시는 거다. 아침에 간혹 누룽지를 끓여 

드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오늘 아침처럼 국이 함께 한 밥을 드린다.


  나랑 함게 사신지 3개월이 다 되어가는 요즘엔 둘이 사는 생활에 

적응이 되셔서 그러나 주말마다 오는 작은 아들이 간혹 오지 않아도 서운해 

하시질 않는다. 3개월 전과 달리 혈색도 좋아지시고 크게 우울해 보이시지도 

않는다. 


  요즘 우리 어머니의 걱정은 오로지 큰 아들이다.

"나는 니가 끼니때마다 밥을 챙겨줘서 잘 먹고 있다만, 우리 아들 혼자 밥은 

어떻게 먹나 걱정이다. 나 때문에 아들이 고상이다. 얼른 가라. 남자 혼자 

밥해 먹으며 회사 다닐래면 얼마나 욕보겠니?."

곁에서 챙겨주는 며느리 있어 고맙지만 혼자 있는 큰 아들때문에 맘이 편치 

않으신 모양이다.


  영상 통화를 통해 살 빠진 남편 얼굴 보는게 신경이 쓰이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생각 날때마다 아들 밥해주러 빨리 가라시는 시어머니 

옆에서 당분간은 좀 더 있을 작정이다


  오랜만에 피자가 먹고싶다. 배달도 안되는 시골이라 버스타고 읍내로 

나가야하는, 혼자 먹어야하는 쓸쓸함이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