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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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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아들 (세대교감)


BY 들국화 2020-07-07

이틀이나 연속 큰 아들이 외박을 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 친구 병철이가 평택에 내려 왔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서울로 가서 외박을 하고 오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남자의 동물적 감각으론 정서적으로 불안전해 보이는 아들이 의심스러웠다. 잠이 든 사이에 아들의 핸드폰에서 병철이의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다음날 병철이에게 전화를 했다. 평택에 언제 왔었는지? 친구를 돕는 일이니까 사실대로 얘기해야 한다고 설명을 했다. 역시 내 예감이 적중하는 순간 어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큰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들아! 남자끼리 얘긴데. 아빠는 널 다 이해 할 수 있단다. 네 친구가 평택에 온지가 한참 된것 같은데......" 머뭇머뭇 대다가 쉽게 포기 한 듯 사실대로 얘기를 했다. 컴퓨터게임에서 만난 여자친구가 평택에 내려온것인데 갈 곳이 없어서 찜질방에서 같이 잤다고 했다. 이제 16살밖에 안 먹은 여자친구. 중학교도 검정고시로 졸업하고 가출 한지 벌써 4개월이 넘어서 자치하는 친구들 집에서는 더 이상 신세도 못지는 상황이란다. 무조건 컴퓨터 수리점인 가게로 데리고 오라고 했다. 내가 먼저 보고 싶었다.
 
당돌하지만 청순하게 생긴 예림이는 초등학교 1학년때 엄마가 집을 나가시고 아빠는 서울에서 택시운전을 하시고 중학교 1학년인 남동생과 고시원에서 셋이 살다가 한평반 남짓한 고시원이 불편하여 4개월전에 나왔다고 했다. "왜 고시원에 있니?" "돈이 없으니까 있지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듯 방울져 있었다. 가게에서 돈까스를 시켜 먹이고 집에 데리고 가서 엄마에게 인사를 시키라고 했다. 집에 가는 동안 아내에게 미리 전화를 걸어 당황하지 말라고 자초지정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그날 나는 일찍 퇴근하여 새 손님 맞이겸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오랜만에 집 근처 삼겹살집에서 외식을 했다. 다섯식구가 옹기종기 앉았다. "아빠 엄마 결혼 기념일인데 선물 준비했냐?" 큰아들이 예림이를 가리키며 자기 여자친구가 선물이란다. "그래! 우리집에 천사가 들어왔구나"  처음에는 거실에서 아내와 예림이가 잠을 자고 세평 남짓한 원룸에서 아들 둘과 내가 잠을 잤다. 불편했지만 아들이 좋아라 하는데 그냥 참고 지내기로 했다.
 
1개월이란 시간이 흘러 예림이에게 아빠에게 돌아갈 것을 권유했다. 아빠 전화번호를 물어보며 "아빠는 너의 엄마의 빈 자리로 가슴이 뻥 뚤려 있단다. 그 뻥뚤린 가슴을 딸인 네가 메워 드려야 하는데 너마져 이러면 여자로 하여금 아빠는 두번 상처를 입는 것이란다." 예림이 눈에서 길게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들과 예림이는 새벽 네시에 일어나 고모가 하던 아파트 신문배달을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는 일이 안스러웠지만 예림이가 서울에서 다니던 미용학원도 계속 다녀야 하고 부양가족이 어떤것이지를 아들은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한달 고작 30만원정도로 생 고생을 하던 아들은 야간에 피씨방 관리 아르바이트로 옮겼다. 첫달 80만원을 받아서 40만원은 둘이서 옷도사고 동생 용돈과 예림이 용돈으로 썼다. 우선 예림이를 평택 엠비씨아카데미뷰티스쿨 미용기술 6개월과정에 등록하기로 했다. 비용은 90만원에 재료비 40만원이라 나에게 90만원을 가불하여 등록을 시켰다. 밤새워 피씨방 관리하고 아침9시에 퇴근하여 낯잠을 자는 아들이 안돼 보였지만 자신의 존재를 새삼 느끼며 인생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주변에서 사람들은 우리가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청소년보호센터로 보내야지 가출청소년을 데리고 있다가 그집에서 알고 고발이라도 하면 어쩌냐고 선의의 피해를 볼까봐 걱정들이었다. 예림이가 우리집에 온지도 6개월이 되어 갈 즈음에 우리가족은 나의 직장을 따라서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평택에서 서울까지 출퇴근을 하다가 너무 힘이들고 시간이 낭비되어서 이사를 결정했다. 일부러 예림이와 아들 둘이 편하도록 큰방을 준비하였는데 둘째놈이 안방을 보고 청소년 합숙소 같다고했다.
 
그런데 이사하던 날 예림이는 서울로 같이 이사하기를 거부하더니 우리집을 나가 버렸다. 이미 다른 남자친구를 만나서 마산으로 내려 갈 계획을 하고 있었다. 큰 아들이 자기에게 너무 집착하는 것이 부담이었다고 그래서 우리집에 있는 동안에도 다른 사람을 컴퓨터 게임에서 만나고 있었다고 한다. 서울로 이사하면 영등포에 있는 엠비씨아카데미뷰티스쿨로 전학하여 미용기술을 마스터 시키려고 했는데...... 천사가 아닌 검은 머리 짐승을 키우고 있었을까? 마음이 허탈해지기 시작했다.
 
다음 날 큰 아들은 예림이를 찾으러 평택을 간다고 했다. 나는 단호하게 결론을 내렸다. 지금 일시적으로 가슴아픈것이 앞으로 네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평생을 후회 할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이 원하지 않는 만남을 너만 좋다고 만난다면 행복해 질 수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가고 싶다면 다시는 집에 들어 올 생각하지 말아라. 가슴이 찌져지는것 같지만 이루어져서는 안될 것 같아서 일시적인 아픔이라고 위안하며 아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직도 아들의 홈피에는 지난 시절 예림이랑 같이 찍었던 사진과 글들이 상처받은 흔적으로 남아있다. 또 다른 사람을 만난다면 이제는 지혜롭게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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