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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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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선물


BY 귀부인 2018-09-18

 25년전 내가 남편이랑 결혼을 했을때 우리 시부모님은 55살 동갑내기 젊으신 부부셨다.
결혼을 허락받기위해 첫 인사를 간날, 커다란 사슴 눈망울에 아지못할 아련함을 품은 ,
악의라곤 전혀없는 눈으로 나를 찬찬히 바라보시던 
시어머님과는 달리
시아버님은 마치 눈에서 불이 나올것같은 기가 서려있어 어찌나 무섭던지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남편은 장남인지라 맏며느리의 책임을 워낙 막중하게 
생각하시는 시아버님 입장이고 보면, 당신 집안의 큰며느리로 적당한지 아닌지를
알아보시기위해

당연히 매의 눈으로 보실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기도하다.

다행히 나의 어떤 모습과 행동이 시아버님 마음에 흡족함을 드렸는지 모르겠으나 ,
당당히 결혼 허락을 받고 해를 넘겨 따듯한 봄에나 결혼식을 올리자던 우리 친정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시아버님 뜻대로 12월 한겨울에 시댁에서 가까운 시골의 자그만한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친정 식구들이 다들 한마디씩 했다.
"시어머니는 참 인상도 좋으시고 괜찮으신것 같은데, 시아버지 보통이 아니시겄네.
아무래도 시어머니가 아니라 시아버지 시집살이 좀 하겠다."


그러나 시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내 입장으로보면 천만다행으로 남편이 해외로 발령이나고
한,두해에 겨우 한번씩 찾아뵙는 입장이 되었다.

그렇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우리 친정에서 나는 막내지만 시댁에선 내가 맏이가
되고보니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맏며느리라는 책임감이 늘 마음에 남아 있는것 같다
.

결혼이후 매주 거르지 않고 안부 인사드리고 용돈 챙겨드리는 가장 기본적인것을
꾸준히 해온탓인지 결혼 25년이 지난 지금은 시아버님께서  때론

당신 아들보다 나를 더 신뢰하실때도 있는듯하다.

특별히 나대는 성격도 아니고, 뭐라고 하시든,내 맘에 안들더라도 일단은 네,네,하고  
나중에 조용히 내 의견을 말씀드리는 내 성격도 
시아버님 마음에 드는데 한몫 한것 같기도 하다.

워낙 이야기 하시는걸 좋아하셔서 가끔 찾아뵐때면 9남매의 맞이로 태어나 동생들과
자식들 대학 공부 시키시느라 고생하신 이야기,당신 자신이 너무 공부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한으로 남아 있는 이야기,
주경야독 하신 이야기,집안 대,소사 챙기는 이야기 등등
매번 찾아뵐때마다 두,세시간 붙들려 앉아서 듣다보니 이제는 시아버님 인생을
자서전으로 엮을만큼 꿰뚷게 되었다.

시동생은 "형수님,대단하세요.어떻게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그렇게 듣고 앉아 있으세요?"라고
놀랍다고 하신다.
시어머님을 포함한 모든 식구들이 시아버님께서 인생사 얘기를 하실라치면 다들
딴전을 피우거나 TV  볼륨을 올린다.

그만큼 우리 시댁 식구들은 아버님 길게 이야기 하시는것에
질려 있는 상태다.

나라고 왜 질리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힘들더라도 묵묵히 그냥 이야기에 귀 기울여드리고 

가끔 맞장구를 치는 이 단순한 일이, 한 많으신 시아버님께는 치유의 시간이 되지나 
않으실까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시아버님 얘기하시면 바로 집중 모드로 돌입한다.

무엇보다 명절이나 생신,제사때나, 집안 대,소사 일에 도움을 드리지 못하기때문에
여름에 잠시 방문하는 
그 시간 만큼은 온전히 잘해드리고 싶은 기특한(?)
마음을 늘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하다

작년에는 평생 농사 지어오신 아버님답게 
"너희들도 나중에 한국 나오면 쌀 걱정은 안하고 살아야하지 않겠니?" 
하시며 산 밑의 밭을 팔아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곳에  남편 명의로 논을 사주셨다.

올해 초엔 그동안 남편 수고로 벌어 논 얼마의 돈이 있길래 은행 넣어봤자 이자도 얼마 안되고,
마땅히 투자할 방법도 몰라,
그냥 시아버님께 돈에 맞게 땅을 좀 사 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당신 땅을 사시는것도 아닌데 아들이 돈을 벌어서 땅을 사게 되었다고 무척이나 좋아하시며
한달여를 발품팔아 읍내에서 가까운 곳에다 얼마의 논을 사주셨다.


그런데,놀랍게도 시아버님은 그 땅의 반을  당신 며느리인 내 이름으로 등기를 내주셨다.
한국 출장차 잠시 짬을내어 시댁에 들른 남편에게
"니가 이 땅을 사게된것은 니 아내가 알뜰히 너 잘 돌보고 살림 잘해서 모은 돈으로 산거니까 
반은 니 아내 이름으로 등기를 냈다."라고 하셨다 한다.

물론 시아버님 말씀 지당하신데 왜 난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선물을 받은듯한 생각이 들었는지...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내민,평생 첨으로 가져보는 내 땅문서를 신기한듯 보며
"아니,당신은 왜 이런 생각 안했지?"하며 남편을 흘깃 째려보았다.

"아,당신게 내거고 내게 당신건데 그게 뭐가 중요해."라고 머슥해하며
남편도 솔직히 시아버님께서

며느리 명의로 등기를 내주시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는 나도 남편게 내것이고 내것이 남편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던 내 역할을 시아버님한테 인정받는거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찌됐든 시아버님은 당신 부부가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물려주시는 땅은 아들 명의로 ,
아들이 번 돈으로 산 땅은 아들,며느리 명의로 반을
갈라 등기를 내주셨다.

이제 내년이면 시부모님 팔순이시다.
여전히 선하고 맑은 눈을 지닌 시어머님과 달리 시아버님의 눈은 더 이상 눈에서
불이 나올듯하던 젊은 혈기는

사라지신지 오래다.

해마다 조금씩 쇠약해지는 모습이 안타깝다.
우리가 완전히 한국으로 돌아올때가지 건강하게

지내려고 병원 꼬박 다니고 매일 한주먹씩 약을 드시고 계시다는 시부모님,

유행가 가사처럼 언제 한번 편히 모시리이다를 되뇌이며
항상 건강하시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