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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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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싸는여자


BY 이루나 2018-09-15

  이러는 내가 나도 싫다.
 전국 어디를 가든 몸만 달랑 나가서 밥에서 물까지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어디를 간다고 하면  왜 나는 도시락이며 간식까지 싸 들고 가느라 법석을
부리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지지리 궁상이 몸에 밴 건가?

  오래전부터 평창에서 열리는 효석문화제를 가보고 싶었다.
행사 마지막 날인 9일 새벽부터 도시락을 싸고 커피를 내리고 과일을 챙겼다.  
전날 평창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니  흥정계곡. 허브나라. 방아다리 약수터. 대관령 삼양 목장.
월정사 등이 뜨길래 지도에 들어가서 거리를 재고 일정을 짰다. 효석문화제를 보고 4km
거리의 흥정계곡에서 도시락을 먹고 봉평 장을 구경하고 나머지는 시간 보면서 돌다가 저녁은
근사한 곳에 가서 먹어야지 생각했다. 어디를 가는 거냐 묻는  남편을 조수석에 태우고
고속도로를 올라타면서 " 오빠 달려~" 하며 분위기를 띄워주니 좋아한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날씨도 맑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포토존을 돌며 사진도 찍고 문학관을
두루 살피는데 책이라면 일평생 담을 쌓은 사람이니 재미없어 하는 표정이 느껴진다.
역시 이런 테마 여행은 같은 취미를 가지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하고 와야 하는 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배가 고파 시계를 보니 오후 2시였다. 바로 앞에
인터넷에서 본 " 고향 막국수" 간판을 보면서 괜히 김밥을 싸느라 부산을 떨고 시간을 허비했구나
생각하면서 쓴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싸 온 거 먹어야지 생각하며 흥정계곡으로 차를 몰아
갔는데 내가 상상한 그림 같은 계곡이 아니었다. 남편은 막국수 한 그릇씩 사 먹으면 될걸
김밥을 싸와서 성가시게 했다며 투덜대고 나는 나대로 그 상황이 화가 났다. 마땅한 자리도 없었다. 
오토캠핑장에 가서 먹기 위해 주차를 하는데 싫다고 더 올라가보잖다. 다시 시동을 켜고 허브나라가
나오도록 올라가도 앉을만한 곳 이 없었다. 다시 내려와 결국 오토캠핑장으로 들어가서 돗자리를
펴고 김밥을 먹는데 이미 기분이 상해서 맛도 없었다. 둘 다 굳은 얼굴로 식사를 하고 봉평 장을
구경하기 위해 다시 갔다.

주차를 못해 한참을 헤매다 겨우 슈퍼 옆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내리려고 하는데 남편이 다급하게
차를 두드리며 내리지 말고 주차장으로 들어가잖다. 여기도 괜찮은데 했더니 차가 많이 드나드니
안 좋단다. 시키는 데로 말없이 차를 빼서 주차장으로 들어 갈려는데 입구에서 막는다.
주차공간이 없단다. 그사이  슈퍼 옆자리는 이미 다른 차가 차지했다. "참아야 하느니라 우라질 레스"
자기가 빼라고 해놓고 주차를 못하니 안달이 난 남편은 차에서 내려 여기저기 휘젓고 돌아다닌다.
경적을 울려서 타라 했더니 눈을 휘둥그리며 올라탄다. 봉평 장은 패스 대관령 삼양 목장으로 가자.

삼양 목장에 도착해서 셔틀버스에 올라타서 마음속으로 릴랙스를 외쳤다.그래 해발 1400 고지에서
푸른 초원으로 쏟아져 내리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면 위로 받아야지 속으로 생각했다 . 
버스가 출발하고 3분도 안됐는데 그렇게 좋던 날씨가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거짓말처럼
소나기가 쏟아진다.
정상으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비를 만난 사람들이 우왕좌왕 뛰어다닌다. 왓,,,,,, 나한테 왜 이래 ??
정상에 도착했으나 아무도 내릴 엄두를 안 낸다. 그래도 아쉬워 잠깐 내렸더니 차가 출발한다며
누군가 다가와 내려가길 권한다.  허무한 마음으로 내려오는데 비를 맞은 사람들이 추위에 떨며
올라탄다.  산허리에 걸린 아름다운 노을을 기대 했건만 못내 아쉬웠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집으로 오기 위해 출발했는데 산에서 내려오니 시내 날씨는 멀쩡하다.
고속도로를 올라타고 평창휴게소쯤부터 차가 조금씩 막히기 시작한다. 일요일이고 저녁 5시가
넘었으니 그러려니 해야 하는데 참지를 못하는 남편이 다시 옹알이를 시작한다. 중얼중얼 처음엔
못 들은척하다가 계속 막히지는 않아 중간중간 빠지면서 풀릴 거야 하는데도 " 에잇 국도로 빠져" 한다. 
우측으로 붙어서 국도로 나가라는 잔소리에 결국 면온에서 빠졌다. 얼마쯤 가다가 고속도로 쪽을
보니 쭉쭉 잘 빠지고 있었다. 국도란 것이 시속 60부터 80까지 들쭉날쭉인데다 신호를 거쳐야 해서
힘들었다. 인내심을 발휘해서 참고 있는데 횡성쯤 와서야 미안했던지 "고속도로 갈라면 가" 하길래 
버럭 했더니 잠자코 있는다. 집에 도착해서 우아한 저녁으로
라면을 끓여놓고 먹으면서 남편을 쳐다보고 한마디 했다. " 나 죽으면 사리 많이 나올 거야 그치"
남편이 히죽이 웃는다.  함께하는 하루가 참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