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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BY 이루나 조회 : 194

날씨가 참 조으내!

 이맘때쯤이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화창한 초가을이었다. 여름보다 살짝 높은 곳으로 올라간 하늘은  살랑이는 바람을 날려 보내며 여름은 어땠냐고 잘 지냈냐고 묻고 있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위해 일주일간 의무적으로 요양원 실습을 해야 하는 과정 중의 어느 날이었다.

 요양원에는 대략 20여 명이 채 안 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있었는데 절반은 경증이고 절반은 중증이었다. 대부분 치매나 보행장애 등을 지니고 있었는데 자기 발로 다니는 사람들은  치매 초. 중기였고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정신은 멀쩡하지만 혼자서 일상적인 생활이 안되는 사람들이었다.  기저귀를 차고 있었고 누워서 생활하는 분들도 많았다. 

  월요일부터 시작된 실습이었는데 아침엔 9시부터 1시간 반 정도 청소를 하고  잠깐 쉬면서 차를 마시는 시간이 10분 정도 주어진다. 이 시간에 함께 간 다른 사람들과 그곳에 원래 있던 근무자들과의 대화에서 개선사항이나 애로사항 또는 잡답을 하기도 한다.  11시쯤 되면 일부는 주방 일을 돕기도 하고 일부는 방을 돌면서 기저귀도 살피고 점심 식사를 위해 누워있는 사람들을 일으켜서 휠체어에 앉혀 놓기도 하면서 대기한다.

 식사가 끝나고 오후 1시가 넘으면 상태가 심한 와상 환자나 본인이 원치 않는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을  거실에 앉혀놓고 오락을 즐긴다.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하고 여러 가지를 시도하면서 식후 소화를 돕는다. 바로 옆에 앉아있던 할머니 한 분이 나를 상대로 호구조사를 하신다. 집은 어디냐 나이가 몇이냐 등등.... 사람도 기계와 같아서 나이 들수록 모든 기관이 느슨해지는지라 바짝 붙어 앉아 쳐다보며 이야기를 하시는데 할머니의 입안에서 튀어나온 침이 내 얼굴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일어나고 싶어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으니 일어날 수도 없고 손에 아무것도 없으니 닦을 수도 없었다.  도저히 안되겠다. "할머니 잠깐 화장실 갔다 올게요". 화장실에 가서 얼른 휴지로 닦아내고 자리로 돌아가니 할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좋아하시는 게 뭐냐고 여쭈니 아리랑이란다. 옆에 사람들이 아리랑을 잘 부르신다 길래 마침 나도 아리랑을 삼 개월가량 배운 터라 할머니 그럼 나랑 아리랑 불러요. 하며 얼른 일어났더니 좋아하신다. 할머니랑 아리랑을 부르며 춤도 추고 놀았다.

 목요일은 할머니들 전원을 햇빛이 좋은 야외로 데리고 나가 일광욕을 시켜주는 날이라 했다. 의자에  나란히 줄지어 앉은 할머니 들 중 한 분이 " 날씨가 참 좋네" 하자 이쪽에 앉은 할머니가 " 뭐라구우 ?" 묻는다. 또 다른 할머니가 큰 소리로 "왜 소리를 빽빽 질러 귀가 먹었나아 " 대답하니 그새 그걸 잊은 할머니가 옥상에 올라가 있는 누군가를 쳐다보며 " 위험해 내려와 다쳐 왜 거길 올라가서 그래" 하며 쯧 한다. 그러자 몇몇의 할머니들이  위험하다고 내려오라고 합창을 한다. 그런 저런 대화가 이어지고 또 누군가가 날씨가 참 좋네 하자 이번에는 " 그래 날씨 차암 좋다아" 대답이 나오고 여기저기서 그래그래 날씨가 참~ 조으내 한다. 다른 길로 갔다가 한참을 돌아서 처음의 대화로 다시 돌아왔다 . 다른 사람의 이야길 듣고 그에맞는 대답을 하는게 아니라 서로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만 하는 이상한 대화를 그렇게 오래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어느순간 딱 일치하는 할머니들의 대화법에 웃음이 나왔다.

 실습이 끝나는 금요일 이었다. 인사를 하는데 그동안의 정으로 마음이 안 좋았다. 할머니들을 안아 주면서 건강하시라 했더니 충북의 공주 여인숙 집 딸이었다는 작은 체구의 아리랑 할머니가 나를 안고 잘 가라 인사한다.  어릴 적 살던 집 주소를 나에게 가르쳐 주시던 할머니였다. 이 할머니들이 우리가 간다는 것의 의미를  알까? 인사를 하고 돌아서 나오던 날도 날씨가 참 좋았다. 삼년전 어느날 요양원 마당에서 일광욕을 하며 나누던 할머니들의 엇박자 대화가  가끔 생각나면 혼자서 피식 웃는다. 오늘도 몇 년 전 그날처럼 날씨가 참 좋다. 누구도 피해 갈수없는 퇴화의 시간들이 내게도 살풋이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