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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BY 나는 천사탈을 쓴 악마인가 조회 : 487

내 잔임함에 치를 떨며...

얼마 전 친언니와 평생 처음으로 대판 싸웠다.



내 나이 50대중반, 내 언니는 63세.



지금껏 잘 지내왔었다.



​​​​​내 유년기땐 중딩이었던 언니가 이불속에서 간지럼해주며 놀아주었고, 내가 초딩일땐 이쁜 그림을 그려주며 놀아주었고, 대학생인 언니가 늘 좋았고 이뻤다.



스튜어디스가 된 언니는 예쁜 일제문방구를 사다주었고, 학교에 갖고 가서 자랑하는게 즐거웠다.



외국으로 결혼해서 가는 언니가 그리웠고, 또  결혼이 실패해서 고생하며 사는 언니가 가엾었다.



그렇게 쭈욱..자식도 없이 외국에서 혼자 살고있는 언니가 늘 짠 했었다.





여기까지는 내언니의 긍정적인 

모습이지만, 반전의 모습도 있다.





​​​​​내엄마와 언니는 늘 상극이었다.



둘째로 딸이 태어난게 기뻤던 아버지는 언니를 목마해서 뒷산에 오르곤 했다.



아기때부터 이쁘게 생긴 언니는 늘 이쁘다는 소리를 들었다.



​​​​​​엄마도 신이 나서 언니한테 지극정성 꾸며줬다.



​​​​​​목걸이에 맞춤원피스에...



​​​60년대때임에도 집에 피아노를 들여놓고 피아노 렛슨까지 시켰고, 이화여대에 들여보내곤 가세가 기울어....달러이자의 빚까지 내어 등록금을 냈다.



​​​​​내언니는 천방지축..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매일 술을 먹곤 싸이렌이 울려야 집에 들어왔고, 엄마가 야단치면 도리어 눈을 뒤집어까고 덤벼들어, 아버지한테 맞고했다.



그 뒤로도  집안 분란의 일등공신은 언니였다.




화장실에서 담배피우다 불을 낼 뻔도 하고, 옷을 너무 난해하게 입고다녀서  내 친구가 하루는 "너네언니 어제 버스에서 봤는데 노 브라더라 ㅋㅋ"  쪽팔린적도 있었다.



내가 중학생땐 일 년간 가출도 했던 언니였다.



일 년이 지난 어느날, 어떤 아줌마의 전화를 받은 엄마는..그 아줌마를 만나고 들어왔다.



​​​​​​"남자네 엄만데, 제발 딸좀 데리고 가라고하더라...어떻게 된게 방구석에 틀어박혀 사람이 들어가도 나가도 내다보지도않고.."



안에서 새는 바가샌다고.. 샌다고..언니는 집에서도 집안일을 안 도왔다.



엄마가  김치담구게 파좀 다듬어달라는 말에..자다가도 벌떡일어나 외출을 해버리고, 설거지가 싫어서 식구들이 밥먹을땐, 나~배 안고파~하고는...엄마가 다 치우고 들어가면 그제서야 부엌에가서 대접에 밥이랑 김치랑 담아갖고 방에 들어와 허겁지겁 먹고는 빈그릇만 싱크대에 넣어놓았다.



​​​​​중딩인 내게 자신의 빤쓰랑 브라자를 던지며, "야~오백원줄테니 빨아"라고했다.



​​​​​​엄마는 언니가 지긋지긋했다.



입고다니는게  술집년같다고 동네사람보기 창피해죽겠다고도 했다.



둘은 늘 싸웠고 나는 고통스러웠다.



그러고...언니는 외국으로 가버렸다.



엄마는 차라리잘됐다고도 했다.



한국인 유학생이라는 남자와 결혼했지만, 막상 외국에 가보니 사기결혼이었고 1년만에 파국이었다.



처음엔 잘 사는가싶었다.



그당시 형부는 부모님전상서라고 집에 편지를 보낸적이 있는데, 언니가 밥을 안 한다는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였다



"난 배 안고파!  배고프면 해 먹든가~"라고했을거다.



그당시 형부는유학생으로 갔다가 공부를 중단하고 면세점 소속 관광가이드였고, 자기가 번 돈은 교포들한테 밥 사먹이고 술 사먹이고, 언니가 가져간 돈이 바닥이 나자 친정가서 돈을 가져오라고했다고..언니가 말했다



일 년만에 파국을 맞고, 쌈질끝에 맨발로 도망친 언니는 빈털터리가 되었고,  엄마한테 sos전화를 했지만..엄마는 들은척도 안했다.



​​​​​​언니는 두고두고 엄마를 원망하게된다



그곳에서 직장을 잡고 홀로서기를 하게 된 언니는 가끔 한국에 다니러왔고, 내가 결혼하기전까진 친정에 묵었는데, 엄마의 구박으로...앞당겨 떠나기도했다..



떠나는 비행기에서 울었다고도 했다



​​​​​​그 당시엔 엄마를 이해못했다



​​​​​​엄마는 언니를 보기싫다고했다



내가 결혼한 뒤엔 내 집에 묵었다



작은 오피스텔을 대출받아 샀다며  가난했던 언니에게 잘해줬다



​​​​​​엄마가 해야할 몫을 내가 했다



​​​​​​우체국에서 먹거리를 부치기도 하고, 다니러왔다 갈때면..바리바리 싸서 보내기도했다.



​​​​​​나 땜에 타국생활을 견딜수있노라고 했다.



​​​​​​세월이 흘렀다.



​​​​​​엄마는 치매에 걸리고, 아버지는 대장암에 걸렸다



나는...남편의 도박과 주식투자실패로 가난해졌다.





​​​​​내 인생의 이야기만 따로 소설책이지만 패쓰하고~~





​​​​​위로 언니포함 네명의 형제들이 있었지만,  제일 가난한 내가 친정에 들어가 십자가를 졌다.



내 작은아들이 9살때 들어와, 그 아이가 19살이 되었고, 40대중반인 나는 50대중반이 되었다.



​​​​치매엄마의 똥수발은 2년반만에 끝이 났고, 이제 94세의 아버지만 남았다.



어느형제도 부모를 안 보고싶어했다.



​​​​​장남은 엄마장례식만 참석했다.



​​​​​​엄마의 제사도 내가 지낸다.



아무도 안 온다..외손주들과 사위랑 지낸다.



​​​​​​언니는 매년 한국에 오지만, 아버지한테 인사하러 오는것을 싫어한다



​​​​마지못해 딱 한번 와선 30분만에 일어선다





​​​​​​언니는 친정근처 원룸을 한달 빌려서 있다가 간다.



나는 같이 밥도 먹어주고, 이것저것 볼 일 보는걸 도와주고, 쇼핑도 해주고, 밤마다 가서 말벗을 해준다



​​​아버지와  내 아이들의 치닥거리와 병행하느라 지치지만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세월이 갔다



그런데



​​최근..언니가 동거하고있는 외국남자가 두 집살림하는걸 알게 된 언니가...발칵뒤집어진거다





​​​​그 남자랑은 12년째 동거지만, 둘의 사이는 좋지않다



​​​​​​집은 그남자의 집이고, 그집에 들어가 사는 언니다.



그남자의 부모는  시골에 사는 모양인데 아주 친절한 사람들이라고했다



가끔 다니러가면  황송할만큼 대접을 받는다고했다



​​​​​​언니는 고양이를 키웠었는데, 한국에 다니러올때마다 그 집에 맡겼었는데 어찌나  애지중지 키워주는지..데리러가면 안 따라오려고까지하더라며 서운해했다



얼마전 동거인의 엄마가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는데...병문안조차 안 가는 언니였다



인간의 도리로써 가 보라고했미쳤냐며.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괜히  병문안 갔다가  발목잡혀 간병이라도 하라고하면 어쩔거냐는것이다



​​​​​​언니는 2년전에 퇴직을 해서 집에서 논다



같이사는 남자는 4살이나 어리고 아직도 직장에 다닌다



내가그랬다..저녁에 밥은 차려주냐고..



미쳤냔다..



헐..



그러고는 그남자가 두 집살림을 하고있더라며 펄펄뛰는것이다



내가...그랬다



​​​​​​언니도 잘한게 없다고..



​​이 말에..격분한 언니가..내게 할말 못할말을 쏟아부었다



같이사는 그 남자한테 쏟아낼 화를 내게 쏟는거였다



다독여주었다



​​​​​그런데도 이성을 잃은 언니는..돌이킬수없는 말을 해댔다



내게 천사의탈을 쓴 이중인격자라고했다



나도  참다참다 폭발했고..더 잔인하게 밟아줬다



내가 그토록 잔인한 인간인지 정말 몰랐다



​​​​​​지난세월 언니의 발자취가 파노라마같았다



너무 자기밖에 모르는..이기심



​​​​​내가 엄마의 똥수발할적에...힘들다며 하소연할때..눈썹하나 안 움직이고  "죽에다가 독약 타!!"라고하던 얹니다



내아들들이 그 말을듣고 그뒤로 이모를 안 본다



암튼...너무나 이기적이고 늘 자기만 힘들고, 맞다맞다 이뻐이뻐 오냐오냐 해주길바라는 언니...50년을 그리 해줬다



​​​​​​쇼크는 언니가 더 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