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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BY 가을단풍 조회 : 235

누명,그 이후에 남겨진 일들

햐!  나도 참 질기다.

이미 7개월을 넘어섰는데 아직도 누명 그런 것 들을 운운하다니...

비가 내린다.

딸아이와 공부를 하고 있다.

반쯤 마시다 만 아메리카노 향기가 더욱 그윽하다.

 스켄들에 올랐던 날들도 꽤나 긴 시간이었지만 모든것을 멈추고

지난달부터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2급을 준비하고 있지만 1급까지 도전할 생각이다.

살짝 미술치료도 덧붙여서 공부하고 있다.

내가 심리학을 시작한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나는 나를 바로 알고 싶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

 

 지난번 ​봉사단체에서 봉사를 하다가 누명을쓰고, 따돌림을 받고,

 영혼을 다 받쳐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들과 거리가 생기면서 받았던 상처가 많아

다 치유가 되지 않았다.

봉사는 나가지 않았지만

아직도 회비는 철저히 내고 있다.

때때로 남모르게 찬조금도 내고 있었다.

세월이 아주 많이 가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것이라는 것 너무 잘 알고 있다.

거리에서 회원들을 만나면 나를 슬쩍 피해가고 들 하였다.

창립총회날이 닥아왔다. 나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다가

회비도 낼겸 나갔다가 찬조금까지 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사람들은 나에 찬조금만은 기다렸다.

부자는 아니지만 그옛날 나 병들어 죽음 직전까지 갔을때

나를 건져주었기때문에 밀린 병원비라고 생각하고 내주었다.

 

 

행사가 행사니만큼 봉사를 해야했다.

 

일을할때 일정한 책임을 지을곳에서 봉사를 해야하는데 소임을 주지 않았다.

여기기웃 저기기웃 절벅대다가 어렵게 일을 끝내고 집으로 오려하는데

그들은 호프집에서 뒤풀이를 한다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뒤풀이 장소에 나오라는 이야기가 없었다.

그리고 2,3일 뒤에 그들은 또 회식을 했다 .

그때도 말이 없었다.

여전히 나를 따 돌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알 없는 우리 남편이 창립총회 하는날 참석도하고

나대로 회비도 내고 찬조금도 냈는데 말이다

그리고 제일 분노한것은

행사장에서 일을할때 부서를  짜야 하는데 거기에서 나를 제외시킨것이다.

기서 쭈삣 서있다가 저기서 쭈삣 서있었다.

내가 소속한 부서가 없으니 참말로 난처했다.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올시다.

가슴에 "나는 자연인이다."하는 간판을 깊게 새겨 넣었다.

마음을 확 내려 놓았다. 아니 아니 깊은 산속으로 은둔하는 마음으로  단절시켜 버렸다.

이것저관계개선을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고

이윽고 그곳에" 삭제"를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봉사단체에서 내 마음이 삭제가 된것이다.

두렵지 않다.

끌탕할 이유도 없다.

관계개선을 하려고 애쓸필요도 없다.

마음을 확 정리하고 나니 분노가 훨씬 줄었다.

벌일 아닌거야

그냥 작은 행성이 우주안에서 돌고 돌다가 살짝 붙딛친거야

그래서 살짝 깨진거야.

다행히 남편이 내편이 되어 늘 내옆에 있었다.

문득 스치는 생각이 떠올랐다.

예전에 우리 남편이 우리 봉사회를 가만두지 않겠다

박살을 내겠다 한적이 있었다.

 

 "여보"거 어떡케됬어. 우리 봉사회 박살내겠다더니..."

우리 남편이 픽 웃는다.

 

"박살은 무슨, 살다보면 그런일도 있는거지."

 

"아니 ,당신 이상하네 그때는 그럼왜 박살낸다고 했어.

 

"당신편들어주느라고 그랬지...."

 

그러 그러하게 세월이 지났다.

요즘엔 회원들을 만나면 저쪽 길 건너에서도 아무개야 하며 이름을 부른다.

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어떤 사람은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밥 먹자고 하는 사람들과의 약속을 슬쩍 슬쩍 미루어 놓았다

왜냐하면 지난과거를 되풀이하고 싶지않고

내 가슴에서 묻어두었던 아픔을 되내이고 싶지않으며

 우리 회원들을 도마위에 올려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창림총회때 뒤풀이장에 불러만 줬더라면

모든것이 다 정리되었을텐데.

봉사회 회원들이 반 가까이 줄었다.

애석하지만 어쩔수 없다. 나머지는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리고는 심리학을 시작한것이다.

내가 받은 왕따가 내 인생 터닝 포인트가 된것같다.

우선 적성에 맞는지 파악하고 나서 맞는다 싶으면 학부로 연결시킬 생각이다.

등록금은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도 받아보고 ,살림살이에 필요한 모든것들은

하나도 안사면 되고

봉사회에 내는 회비나 찬조금이면 대충 충당될것같고

내가 그 공부를 따라갈수 있을까 ,장학금은 탈수있을까 그것이 걱정되지만

서울이 무섭다고 과천부터 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생각하면 나를 왕따시킨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이로 인하여 내인생 터닝아웃의 길이 열렸기때문이다.

어쩌면 아주 큰 상을 받은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