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루나 조회 : 356

강진 문학기행 (1)

 

"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

영랑 김윤식 선생의 이 시를 읽으며 가슴을 파닥이던 청춘이 있었다.
스치는 바람에도 글썽이는 감성을 지닌 소녀적에 손이라도 베인 듯 아파하며 읽던 시다.

그곳을 간다는 23일에 전날부터 나리던 비가 새벽까지 오락가락한다.
베란다를 내다보면서 난감했다. 문화원에서 함께 공부하는 사람이 열명
춘주 수필 소속의 사람들 스무 명 정도가 함께 가는 거라 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과 1박2일을 간다는 게 마음으로 부담이 되기도 했다.
두 달 전에 신청을 받는데 장소가 여기라 해서 선 듯 신청을 해놓고 내심 고민을 거듭했다.  여기 사람들도 잘 모르는데 아예 모르는 사람들과의 조우라 짐을 싸면서도 걱정을 했는데 비까지 보태신다. 위에 계신 분께 까똑이라도 날려야 할까??

춘천을 벗어나면서 비는 그쳤고 눈부신 봄 햇살 아래 강진에 도착했다.
장장 7시간 만의 도착이다. 전라도의 손맛으로 차려진 점심상을 게걸스럽게 해치우고 영랑의 생가에 도착했다. 문학 박사이자 그곳의 관장이신 김선기 관장님이 우리를 반겨 주셨다. 우리나라 서정시의 대표인 시문학파가 결성된 유래와 영랑의 시 세계를  해설해 주셨다. 모두 여섯 분이 주 측이었다. 2부에는 우리를 위해 특별한 콘서트를 마련해 주셨다. 테너 장호영 씨와 소프라노 윤혜진 씨 부부가 아름다운가곡과 함께 정채봉 시인의 "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을 낭송해 주어서 모두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 주었다.콘서트를 마치고 이층에 있는 전시관에 올라가니 1930년에 발행된 시문학 1.2.3권과 오래된 희귀 도서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시인들의 대표시와 사진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뭉클하고 아릿한 느낌으로 그곳을 둘러 보았다. 

기록과 사진으로 그분을 만났다면 이제는 생가를 둘러보며 그분을 느낄 시간이다. 생가는 아담한 동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서 시가 나오고 노래가 나오고 사랑이 나올만한 곳이었다. 그분의 정서를 느끼면서 생가를 둘러보다가 모란을 만났다 . 아쉽게도 꽃은 다떨어지고 무성한 잎만 남아있는 모란을 보면서 360일을 기다려 5일동안 화려하게 피어올라 자신이 가진것을 다 보여주고 한줌 바람에 후루룩 지고만 모란을 안타까이 쳐다보는 선생의 감성이 내게도 전해져 온다

저녁을 먹고 사의재 한옥에서 김선기 박사님의 밤 특강 시간에 영랑 선생의
시 세계와 그의 젊은 날의 사랑을 이야기하다가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선생은 13세에 당시의 조혼 풍습에 따라 " 김  은초" 란 여인과 결혼하였으나 다음 해 사별하고 안 귀련 이란 여성과 사귀다가 선생께서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서 헤여 지게 된다. 그 후 우리나라 최초의 무용가인 최 승희 선생과 열렬히 사랑하였으나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서 헤여 지게 되고 선생은 자살시도까지 하게 된다. 모란이 피기까지란 시가 일제 강점기에 나온 시여서 찬란한 봄을 기다릴 테요를 해방이 되고 독립되는 날을 기다리는 민족 저항시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나 ?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날렸다. 그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한 건가요? 하는 나의 질문에 " 어쩌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해석한 사람들도 있어요" 하신다.  해석은 자유이니 각자의 감성대로 해석해서 누군가는 두 주먹 불끈 쥐고 민족정신을 일깨웠을 것이고 또 이름 모를 누군가는 모란이 떨어져 자취 없이 사라지듯 끝나버린 사랑을 안타깝고 슬프게 떠올려서 아름답게 작별했을 것이다. 어느 쪽이었든 암울한 시대에 그분의 고통과 슬픔이 있었기에 퍼 올려질 수 있었던 아름다운 시다. 피 끓는 청춘이 절규하듯 읊어내는 아픔이다. 시대가 거부하고 현실이 부정하고 이상이 달라서 아픈 통증을 삮히면서 잉태되어 세상에 탯줄을 드러낸 시 한 편이 내 마음을 두드린다.

쉬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낮에 보았던 영랑 생가위의 모란공원을 다시 찾았다. 아름다운 공원을 조명으로 밝혀놓아 낮보다 더 아름다운 공원이 되어 있었다. 나라 잃은 비통함과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으로 인해 울분과 회환으로 아팠을 선생의 모란이 꽃을 버린 채 별을 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