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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BY 귀부인 조회 : 338

꽃 가라(무늬) 원피스 우리 엄마

기어코 왈칵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내년 여름에 또 오겠다 인사를 하는 막내딸 손을 놓지 못하고 , 팔순이 넘은 노모는 

내년에도 딸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기어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이제 쉰을 바라보는 딸도 애써 꾹꾹 눌러 참았던 울음을 쏟아내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어 버렸다. 

 

몇해 전 여름, 어쩌면 엄마와 난 이미 영원한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다시 엄마를 만난건 그 이듬해 초봄, 고향에 있는 자그마한 병실에서였다.. 

꽃가라 예쁜 원피스를 입은 단정하시던 엄마의 모습은 어디로가고,모르핀에 취해 멍한  

얼굴로 간간히 아픔을 호소하던 환자복입은 엄마의 모습은 내게 너무나도 낯설었다. 

 

딸 셋중에 박꽃 처럼 희고 고왔던 우리 엄마를 제일 예뻐 하셨다던 외할아버지는 

엄마 나이 열여덟살에 중매쟁이를 통해 고르고 골라 부잣집 둘째 도련님이셨던 

우리 아버지랑 결혼을 시키셨다고 한다.

나는 한번도 뵌적이 없는 할아버지께선 그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초가집이 아닌 빨간 색칠한 

기와지붕 집으로 아버지를 분가 시키며 한 살림 크게 떼어 주셨다고한다. 

 

아 ! 그러나 23살 청년 우리 아버지는 .차분히 농사나 짓고 한곳에 정착하여 살 수는 없는 

분이셨나보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버지는 역마살이 있으셔서 바깥으로 돌았다고 한다. 

집 나가실때마다 사업을 한다시며 돈다발을 들고 나가셔서는 그 돈이 

다 떨어지면 돌아 오셨다고 한다. 

 

아버지 ..내 아버지.... 흰 고무신에 회색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멋진 중절모를 쓰신 , 

작지만 다부진 체격의 아버지께서 당당한 걸음으로 대문을 나가시던 뒷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내 마음엔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초차 그리움으로 남는데.... 

 

아! 그러나 대문밖을 나서시는 아버지를 바라보시던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올망졸망 어린 자식들 데리고 노심초사 소식없는 아버지 기다리며 속태웠을 

엄마의 젊은날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힘들었을지 미어지는 가슴으로 느껴진다. 

 

그런 내 아버지의 방랑도 더 이상 팔아치울 전답이 없어지자 끝나고야 말았다. 

그 방랑의 끝에 태어난 나는 언니들 말에 의하면 그나마 가장 안정된 환경에서 자란듯하다. 

그리고 그 시절이 엄마에겐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엄마의 그 행복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일곱 자식 엄마한테 내맡기고 내가 중학교 2학년 되던 해 

아버지는 홀로 유유히 

먼길 자유로이 떠나 버리셨다. 

 

지나 가던 사람들이 한번 더 돌아볼 만큼 예뻤던, 그러나 학교를 휴학할 정도로 건강치못해 

늘 엄마를 노심초사하게 만들었던 두살 터울의 언니와 ,5살 어린 막내 남동생 사이에 낀 

건강한 나는 엄마가 의지하는 특별한 딸이었다. 

그런 내가 남편과 결혼하고 두바이로 떠나올때 아득하던 엄마의 눈빛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두바이에서 첫아이를 낳았을때 엄마는 당신 자식 일곱 다키우고 다시 손자를 키우시는라 내게 

오실수도 없었다. 

아이 낳고 엄마와 통화 하는데 

"얘,너 미역국에 고기는 넣고 끓여 먹니?" 라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목이 메여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엄마가 자식을 낳고 고기도 들어가지 않은 미역국을, 아버지도 없이 드셨을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 순간

말로 다 할수 없는 가슴 아픔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겹쳐서 한참을 울었었다.  

 

쉰 나이에 홀로되신 엄마는 모진 생활력을 가지신 분은 아니셨다. 

그러나 아버지 안계신 빈자리를 묵묵히 지켜내시며 우리 형제 자매들이 

올바로 살아가게 인도해주신 분이셨다.

 

늦은 나이에 믿음을 가진 엄마가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꽃가라 예쁜 내리다지

(아래위 붙은 긴 원피스) 

단정히 입으시고, 당신 자식들 이름 하나 하나 조용히 되네이며 기도하시던 

엄마의 굽은 등이, 잘찍힌 증명 사진처럼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이제 엄마 혼자 되신 나이되어 아버지 돌아기시고 기막혔을 엄마의 심정이 어

땠을까를 생각해보니 마음이 아프다.

 

엄마한테 더 잘할걸...... 

 

이제 안부를 물을수도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엄마를 그리며 막내딸은 눈믈을 흘린다.. 

빛바랜 초 겨울의 흐린 하늘 만큼이나 우울한 날 , 가슴 저미게 엄마가 그리운날 .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010 *** **** 번호는 또렷이 기억나는데 그 번호의 주인은 이 세상에 없다 

아! 나는 엄마가 없다 내 전화 받아줄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 

가슴이 시리다. 

꽃가라 원피스 그리고 우리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