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부자는 아니지만,그래도 부농이라고 해야 될런지...
부모님이 6남매를 그런대로 다 잘 가르쳐 놨으니...
난 아가씨때 눈이 얼마나 높았는지,웬만한 남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아서
직장에서 이런말까지 생겼다.
미스정한테 커피 산 사람한테는 원하는 데로 술 다 사준다고.
이런말이 생길 정도로 고고하고 하늘 높은줄 모르고 콧대만 쳐들고 다녔던...나였는데...
어느날 고모가 크리스마스때 서울 한번 다녀가라고 했다.
친구들도 만날겸 겸사겸사 서울에 왔는데...
고모왈..."야야~니 눈 높아서 아즉 애인 없제?
내가 괜잖은 총객 소개 시켜 줄테니 한번 만나 보그라 잉"
고모의 철저한 계산속에...
아니 그 남자와 고모는 미리 약속을 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때 날 소개시켜 주기로...
맙소사~!
고모가 소개해준 그남자는 그 콧대 높던 날 정말 자존심 상하게 만들었다.
핸썸하고 도시풍의 세련되고 샤프한 타입의 남자를 부르짖던 나에게...시골 농사꾼 같은...아니 막걸리 같은 타입의 그 남자...그런 남자를 소개 해준 고모가 얼마나 밉고...자존심이 상했던가~!
난 두말도 안하고
"고모~! 날 어떻게 보고 그런 남자를...
대학 강사,군대에서 높은 사람(총각치곤 계급이 꽤 높았음),
중,고등학교 선생...다들 중매가 들어와도 내가 다 퇴짜 놨는데...
정말 왜 그래..."하고 화를 냈다.
그러자 고모는"야~~!이 가스나야!
사람을 외모만 보고 평가하지 말그라.
자고고 남자라는 것은 돈도 필요 없고,인물도 필요없고,어떤일이 있어도 가족들 굶기지 않을 성실함과 인간성이 좋아야 하는기라,
니 그러지 말고 한번 사귀어 보그라 잉"
난 "그 남자가 그렇게 탐나면 고모딸이 둘이니 키워서 시집 보내슈"
라고 딱 잘라 말해버렸다.
(그때 이걸로 끝났으면...내 인생이 또 다른 무대로 갔을지도 모르는데..ㅎㅎ)
그런데...문제는 딴데서 나타난 것이었다.
서울서 특허청 다닌 여고 동창생이 심심하니 그 남자를 한번 불러내 바가지를 확~씌우자고 조르는 통에...ㅎㅎ
친구보고 난 그 남자한테 추호도 관심 없으니...
바가지를 씌우던 사귀던 알아서 하라고 했다.
둘이 똑같이 서울이니 내심 잘됐다 싶었다.
고모가 그렇게 아쉬워 하던 남자이니 내 사랑하는
친구가 사귀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야밤에 분위기 좋은데서 이 남자를 불러냈는데...
야~~글씨~~~~~~!!!
환한 대낮에는 그렇게 막걸리 타입으로 전혀 아니올씨다로 보이던 이 남자가...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사람의 얼굴을 예쁘게 보이게 한다는(?) 그 조명 아래서...
아뭏든 그 남자...키가 큰데다가 덩치가 있고(꼭 덩치로 봐서는 조폭
같았음..ㅋㅋ)매너한번 기가 막히는데...
"옴마나~~~"내 친구...첫눈에 반했는지 그 남자를 쳐다보고 실실 웃는 폼이,예사롭지 않았으니...
매너가 좋은데다가 바리톤의 목소리를 쫙~~깔고...
고급 음식에 맥주까지 시켜 놓았는데...그렇게도 첫눈에 싫었던 그 남자가 괜찮게 보이는건 알다가도 모를일이네(예나 지금이나 분위기를 무지 탄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그래도 자존심에 죽고 자존심에 사는 내가...한번 싫다고 버린 감을 도로 가져 올수는 없었다.ㅎㅎ
그날 이후로 친구가 그 남자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것이었다.
그 남자만 좋다면 하루빨리 시집을 가고 싶은데...
그 남자가 이상하게 너 안부만 계속 물어보고, 친구한테는 관심도 없는것 같으니...너가 중매를 좀 서라는 것이었다.
결혼만 성사되면...
백화점에서 근사한 옷한벌은 문제도 아니라고 하면서...
친구가 그렇게 그 남자를 좋아하니...
나도 이상하게 관심이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친구도 볼겸 다시 서울로 왔는데...
에~구~~이 남자...내가 전화를 하자 총알같이 달려왔는데...
얼굴에 만면의 웃음을 띄고는
"미스정...미안하지만...특허청 다닌 친구가 성격이 참 좋은것 같으니 중매좀 서 주세요? 스님이 제 머리를 깍을순 없잖아요?"
하는 것이었다.(나중에 알고보니 질투심을 유발 시킬려고 그랬다나..뭐래나..)
내가 싫다는 남자를 친구가 좋다해서 기분이 묘했는데...
그 남자가 내 친구가 좋다하니...그 아리꾸리한(?)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내가 가지자니 싫고 친구를 주자니 좀 아깝고...뭐 그런 기분이었다.
못먹은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오기가 발동했다.
"내 친군 아저씨 별로란데요.타입이 아니래요."
"그래요? 거의 날마다 나한테 전화가 오는데요.
차한잔 마시자고..."
17년 전의 기억이지만...
그날 친구와 그 남자와 난 맥주를 억수로 많이 마셨다.
술을 못하는 내가 몇잔을 마셨는지...(지금이야 술 고래 남편과 사니까 한술(?) 하지만 그때는 거의 한잔도 못 마셨음)
이 남자가 술김에 미스정을 정말 좋아한다고...
첫눈에 반했다고...(은근히 기분 좋았음)
그렇게 콧대만 높이지 말고,자기랑 아침 식사를 같이 하지 않겠냐고..
자기를 놓치면 평생 후회 할거라고...
그 좋은 중매자리는 다 미스정하고 인연이 없어서 그런거다.
자기도 알고보면 꽤 괜잖은 남자다...
취중 진담이라고...횡설 수설 많은 애기를 했다.
특허청 다닌 친구도
"야~~이 남자는 너 때문에...
너 안부 물을려고 나를 만났던 거라고...
이 남자가 나하고 결혼하면 너 평생 후회할거야.
한번 사귀어 봐라"하는 것이었고...
그날 이후로...
뭇남성들의 가슴만 설레게 했던...난...
정말 별볼일(?) 없는 그 남자에게 내 인생의 모험을 걸었다.
지금도 난 친구한테도...
남편한테도...
아직 고백을 못했지만...
정말
{못먹은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생각했다가...
평생 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이렇게...
이렇게...옛날의 추억을 먹고 사는 전업주부가 되어
살고 있다.
때론 옛날의 콧대 높은 ...자존심 강하고...어여쁜 아가씨의 시절로 돌아가 가끔은 행복한 회상에 젖어본다.
여자는 정말 과거의 꿈을 먹고 사는가 봐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을...그리워 하니...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