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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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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와 추억


BY 나예 2000-10-29

오늘저녁 남편과 오징어 굴 넣은 파전에 막걸리 한잔씩 했다.
그릇에 담긴 하얀 빛깔에 그것을 새끼손가락으로 한바퀴 휘저은뒤 넘기면 일순 가슴이 한껏 움츠러 들었다 시원하게 펴진다. 그때 느껴지는 그 기분이란......

우리부부는 막걸리를 어느 술보다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다. 값도 싸고 추억도 퍼올리고 남편은 일에지쳐 피곤한 날이면 으례 한병씩 사가지고 오고 회사에 전화해 오늘 일찍와 한날이면 나도 막걸리를 어김없이 준비한다.
가끔 있는 그일에도 우린 분위기 좋은 포도주나 와인 대신 막걸리 잔을 건배하곤 한다. 냄새야 조금 나지만 어떠랴 고향의 향기인걸 그리하야 우리부부가 1년에 먹어치우는 막걸리양은 병으로 100병쯤은 된다. 일주일에 두번은 먹으니까.

같은동 어르신들이 막걸리를 사오는 나를 보실때마다 '젊은 사람들이 ......' 하시며 말끝을 흐리신다. 어디그게 흉보시는 것이랴 젊은우리가 우리술 막걸리를 좋아하는게 기특해서 이실테지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려서부터 노란색 주전자를 들고 양조장이라는 곳으로 막걸리 심부름을 자주 갔다. 사기그릇에 콸콸소리나게 따르고 한순간에 비우시며 '조옷타'를 연발하시던 아버지
얼마나 맛있으면 감탄사가 절로나올까 싶어 벼르고 벼르다 주전자 꼭지에 입대고 한모금 몰래 삼키던 날 그 달콤쌉싸름하고 톡쏘던 그맛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한대사오라고 하시면 가져오면서 조금씩 삼분지일은 먹어버려
'요새 그집인심 박해졌어 갈수록 양이 작아져'하시던 아버지 그앞에서 뻘개진 얼굴 틀킬까봐 고개도 못들고 서있다 종종걸음 으로 내빼다 마루에서 떨어져 이도 부러졌었다

그땐 그랬다. 부러진 이보다 내가 마신술을 부모님이 눈치채지 못했다는게 뿌듯햇었다.혹여 부뚜막에 아버지 드시다만 막걸리 사발이라도 보이면 그날은 운좋은 날이었다. 모내기하던날 물통으로 한가득 사다놓은 막걸리를 오며가며 조금씩 따라먹다 너무 많이 먹어 그뜨거운 아름목에 쓰러져 잠들어버렸다. 빨갛게 화상입은 숭아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던지......

결혼날 잡아놓고 엄마 언니 동생과 막걸리 사다놓고 지난얘기 하며 웃고 울던날 술잔을 쉽게 비우는 나를 보고 울엄마 놀라 뒤로 넘어가셨다 어디여자가 술을 그렇게 잘먹냐고 시어른 앞에서 실수 할라 앞으론 술 절대 먹지 말라고

살때부터 막걸리는 이미 나의 친구 였다는걸 아셨다면 울엄마 기절하셨을지도 모른다. 지금에서야 다아셔서 어쩐지 그집이 그런집이 아니었는데 네가 심부름 갔다오면 양이 적더라 그래서 들고오다 흘렸나 보다 했지 하신다.

막걸리먹고 알딸한 기분으로 바라보던 하늘은 왜그리 높고 푸르던지 구름은 파도요 비행기는 배라 그때까지 가보지못한 바다를 동경하며 바다는 하늘같이 생겼을 것이다. 혼자 그려보곤 했었다.

그 오랜세월 수없이 먹어온 막걸리속에서도 부모님께 들키지 않은 비결은 내가 주도면밀하고 빈틈없이 행동한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술과는 달리 막걸리를 먹으면 얼굴이 하얘지는 나의 특징때문이기도 했다. 맥주나 소주는 조금만 먹어도 딸꾹질에 얼굴이 벌개지는데 막걸리 만큼은 그런 변화를 아직까지 준적이 없다. 그러니 천생 연분일밖에

요즘먹는 막걸리는 얘전에 그맛은 아닌것같다. 그러나 시중에 나와있는 서울쌀막걸리를 비롯하여 포천 이동,일동 막걸리들도 그때의 그기분은 느낄수 있게 해준다. 남편에겐 피로회복제요 내게는 추억의 앨범인 막걸리 내일도 또 먹어볼까나....

ps. 여러분도 으스스한 날시에 파전하나 또는 라면에라도 막걸리 한잔씩 하고 주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