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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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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긴장감


BY 오늘풍경 2019-07-11

초등학교 6학년때 였다.
웅변대회가 있으니 참가할 사람은 원고 작성해서 제출하라고 했다.
보통은 웅변학원 다니는 아이들이 반 대표로 뽑히고 전체 대회에 나가 상도 받곤 했었기 때문에
내가 감히 나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웅변학원 따위는 부잣집 아이들이나 다니는 학원이니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어? 아직까지 웅변할 사람이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어.
반대표로 전체 대회까지 나갈 필요 없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도전하렴.
그래야 선생님도 교장선생님한테 면이 설 것 같은데?
한 사람은 나와야지.

그 날 밤 집에 가서 고민에 고민을 했다.
나가고 싶었다.
원고를 작성했다.
주제는 '공산당이 싫어요'에 준하는 반공적인 내용이었기에
공산당은 나쁘다. 반공정신을 투철히 하자 등등를 강조하는 원고를 작성했다.
후반부에
이 연사 힘주어 강력하게 외칩니다!!!
이 대목은 꼭 넣었다.

그 날 밤, 어린 6학년인 나의 도전의 동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아무도 안 나와서 선생님이 곤란한 상황이구나'
선생님의 곤란한 상황을 해결해주고 싶었다.

다음 날, 원고를 들고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께 보여드리니,
몇 장 안되는 원고지를 순식간에 읽고는,
음, 괜찮긴 한데,
할 수 있겠어? 한 번도 안 해 본 걸로 아는데...

나는 수줍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연사 소개를 받은 후
반 아이들 앞에 섰다.

너무 긴장되고 떨려서 앞이 잘 안 보였다.
흐릿한 반 아이들의 시선 앞에서
한 번도 연습하지 않은 원고지를 들고,
정말이지 온 몸 부서져라, 목청 터져라 외쳤다.
어색함, 부끄러움, 수치심,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못한다는 자책감, 쥐구멍 찾고 싶은 심정이 혼합되어
웅변을 하는지, 국어책을 읽는지 모를 정도의 난항을 계속하다가
맨마지막 구절,  외칩니다!! 만큼은 에라 모르겠다는 베짱으로 자신있게 외쳤다.

박수갈채를 받았다.

당연히 전체대회에 나가진 못했지만, 6학년 3반 000.
위 어린이는 6월 반공의 달을 맞이해 웅변대회에서 위와 같은 성적으로 입상하여~~
등등의 문장이 찍힌 웅변상을 받았다.

살다가 긴장감이 확 떨어져 아무것도 하기 싫어,
생활 성적표 엉망일 때,
그 날 밤의 나의 떨림과, 긴장감과, 담임 선생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