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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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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응깨 걸어가요


BY 정아네스 2019-05-13

젊응깨 걸어가요.
 
  이번 여행에서는 환승을 위해 익산역을 여러 번 거쳤다. 익산역은 예전의 이리역인데 19771111, 이리역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는 철도 역사상 대형사고 중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다이너마이트, 초산암모니아, 뇌관 등 총 30톤의 위험물을 싣고 있던 화차가 역 구내에서 폭발하여 사망자 59, 중상자 185, 경상자 1,158명의 인명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철도에서 안전관련 교육을 받을 때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긴 하지만 오래전의 일이라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몇 해 전, 철도를 퇴직하신 선배님의 글을 볼 기회가 있었다.
 
  철도관련 스토리텔링 공모전에서 퇴직직원 수상작으로 선정된 작품이었다. 「빚진 인생」이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선배님은 이리역 폭발사고 당일, 사고가 난 차량을 운전해야 할 기관사였으나 기관사 적성검사를 받느라 동료가 대신 차량을 운전하게 되었고, 적성검사를 마치고 기차를 타고 내려오던 중 이리역 폭발사고 소식을 접했다고 이야기한다. 다음은 2013년 한국철도공사에서 발간한 철도관련 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모음집에 실린 김학원 선배님의 「빚진 인생」이라는 작품 중 일부다.

  익산역에는 이리역 폭파사고와 관련된 추모비가 있습니다. 추모비에 새겨진 동료들의 이름을 어루만지며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는가? 철도 공무원으로서 최선을 다했는가?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소명이 무엇인가를 고민해 봅니다. 세월이 흘러 허옇게 머리가 탈색이 되고 젊었던 용모 또한 세월의 흔적으로 주름이 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11월 이맘때가 되면 아픈 상처로 사고가 다시 생각나고, 저로 인해 먼저 간 동료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기도 하고 눈물만 납니다. 이 이야기가 제 자신에게는 아픈 상처로 남아, 쉽게 얘기하지 못하고 가슴 한 켠에 묻어 두었던 게 어언 40여년이 됩니다.
지금에서야 말하고 싶습니다. “미안하네. 수련이 친구. 자네가 있어 내가 좀 더 살게됐네. 남은 인생 얼마 남지 않았지만 당신한테 빚진 삶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살겠네. 고마우이.”

  바쁘게 열차를 타느라 추모비에는 가보지 못했다. 40여 년 동안 아물지 않는 상처를 품으며 지내온 선배님을 생각한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고 때문에 지금도 아파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마음속에 슬픔의 흉터를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하는 이들의 삶을 떠올린다. 고인들을 위해, 그리고 살아있었기에 고통스러웠을 고인들의 가족을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며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착지인 군산으로 향한다.

  아침 일찍 시내버스를 타고 근대역사박물관을 찾는다. 한참을 온듯한데 근대역사박물관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지 않는다. 앞좌석에 앉아계신 할머니께 근대역사박물관이 멀었냐고 여쭈니 벌써 지나 왔단다.
젊응깨 걸어가요.”
  할머니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20분쯤 걸어가라고 안내를 해주신다.
 
지금껏 여행 중에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젊다는 것의 기준을 자기 자신에 두고 있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적고 젊어 보이면 젊은 거고, 그렇지 않으면 나이 든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늘 만난 할머니도 그랬다. 당신과 비교해서 내가 젊어 보이니 젊다고 말씀하신다. 이렇다보니 나는 만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젊은이가 되기도 하고, 새댁이 되기도 하며, 나이 많은 아줌마가 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싫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젊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사람 기분을 좋게 하는 신비의 묘약이다.

  젊은 나는 할머니의 말씀대로 큰 도로변을 씩씩하게 걸어 근대역사박물관에 도착했다. 물건 보관함에 배낭을 넣고 문을 잠근다. 열쇠를 보니 사물함 번호가 없다. 박물관을 돌아보고 나면 몇 번함에 배낭을 넣어놨는지 잊어버릴게 분명하다. 폰을 이용해서 사물함 번호를 찍어둔후에야 안심이 된다. 젊은 내가 중년의 내가 되는 순간이다.

  박물관 안은 단체로 온 학생들로 소란스러웠다. 운동장처럼 뛰어다니는 것은 물론 큰소리로 떠드는 아이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박물관에 오기 전, 선생님께 박물관 관람 예절에 대해 듣고 왔을 텐데도 학생들은 자신의 집안인 듯 자유로웠다. 군산 사람들의 삶을 모습을 재현해 놓은 근대 생활관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아이들에게 물으니 중2라고 했다. 문득 우리나라 중2 학생들이 무서워서 북한에서 못 쳐들어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각났다. 한창 사춘기라 호기심도 많고, 반항도 많은 나이다. 우리 둘째도 중학교 2학년인데 박물관에 오면 이들처럼 행동하리라 싶어 괜스레 뜨끔해진다.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시내로 가는 중에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먹고 있는 학생들을 만났다. 김밥이랑 과일 등을 펼쳐놓고 맛있게 먹고 있었다. 예쁜 캐릭터 도시락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김밥을 보니 나의 초보 엄마 시절이 떠올랐다. 15년 전, 큰 애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의 일이다. 수녀님이 원장님으로 계시던 어린이집에서 체육대회를 한다고 했다. 부모들은 점심 준비를 해서 체육행사에 참석해야 했다.

  김밥을 한 번도 말아보지 않았던 나는 도시락을 싸는 것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김밥 파는 곳에서 아주머니들이 김밥 싸는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기도 하고, 집에서 연습도 해보았지만 내가 싼 김밥은 보기에도 가늘고 쭈글쭈글했고 맛도 없었다. 아이에게는 엄마의 사랑으로 직접 싸주는 도시락을 먹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밥 한 줄에도 엄마의 사랑, 정성, 노력을 담고 있어야 아이가 올곧고 똑똑하게 자란다고 굳게 믿었던 때였다.

  운동장에 가서 다른 엄마들이 싸온 김밥 옆에 나란히 놓여있는 내 김밥을 보자 정말 어디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날 이후로 김밥은 포기하고 삼각 김밥에 도전했다. 삼각 김밥 틀을 사서 집에서 열심히 연습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원래 요리에 관심도 없고 재능도 없던 나는 결국 짜증이 극에 달했다. 옆에서 나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남편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냥 사서 보내.”

  지금은 김밥 싸는 것을 포기하고 작은 아이가 소풍을 갈 때면 그냥 마음 편히 아침에 김밥을 사서 보낸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부분은 해주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과감히 포기하며 살아간다. 못 싸는 김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웃는 얼굴로 김밥을 사서 보내며 김밥을 제대로 만들 줄 모르는 엄마라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편이 나 자신을 위해서나 아이들을 위해서나 더 나을 수 있다고 합리화를 시킨다. 비록 음식 솜씨는 없는 엄마지만 그래도 엄마로서의 인생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남기를 바란다면 내 욕심이 될까.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부터 부지런히 돌아다니다보니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군산역에 가서 사먹기로 하고 서둘러 역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줄곧 라면, 떡볶이, 빵 등 분식으로 식사를 해결했기에 밥을 먹고 싶었는데 군산역 안에는 코레일 유통이 운영하는 작은 편의점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나에게 필요한 도시락이나 햄버거 등은 없었다. 다른 역 안에는 제과점, 식당, 도시락 전문점도 많은데 군산역에는 아무것도 없다며 혼자서 투덜거린다. 밖에 나가서 식당을 찾아보아도 휑한 공터만 보일 뿐이다. 할 수 없이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김치 없이 먹는 컵라면인데 김치도 팔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컵라면만 먹는다. 배는 많이 고팠는데 반쯤 먹으니 더 이상 먹을 생각이 없어진다.

  1인분에 2만원이라고 했던 남원의 한정식을 못 먹고 온 것이 못내 아쉽다. 2인분부터 판매한다는 안내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었다. 2인분을 시켜서 혼자 먹기엔 가격도 비싸고 양도 너무 많을 것 같아 그냥 돌아섰는데 먹다만 컵라면을 앞에 두고 있자니 푸짐한 한정식 상차림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영주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을 불러내 값싸고 맛있기로 유명한 청국장 집으로 향했다. 남편은 내 여행의 든든한 후원자다. 속마음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여행 다니는 아내가 마냥 좋지만은 않을 텐데 내가 여행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기 때문인지 언제든 가라고 응원을 해준다. 남편은 밥이랑 반찬이 먹고 싶다고 말하는 나를 보며 밥도 못 챙겨 먹을 거면서 왜 돌아다니냐고 장난 섞인 핀잔이다. 청국장과 함께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서야 속이 든든해진다. 역시 아줌마는 밥심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