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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BY 낸시 조회 : 444

천생연분

남편 흉보는 일이라면 사흘 밤낮을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고 할 수 있다.
내가 지주 쓰던 말이다.
남편과 같이 사는 것이 너무도 힘들어 이혼을 할까 죽어버릴까 생각한 때도 많다.
실제로 약을 먹고 병원에 실려간 적도 두번이나 있을 정도다.
같이 살아내는 것이 그 만큼 힘들었다.
내가 그리 힘들었을 때, 남편이라고 달랐을까...
남편도 나하고 사는 것이 힘들다고 이혼을 들먹인 적이 수없이 많다.
실제로 짐을 싸들고 집을 나가기도 했다.

우리는 초등 4년 때 만났다.
남편이 내가 다니던 학교로  전학을 왔다.
한 학년에 한 학급 밖에 없는 조그만 학교였으니 같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했다.
우리 남편을 좋아하지 않은 여학생이 있으면 나와보라는 말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하기야 나를 좋아하지 않은 남학생이 있으면 나와보라는 말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둘이가 서로를 맘에 품었으니 동화같은 사랑을 했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결혼해서 사는 것은 동화 속 이야기하곤 거리가 멀었다.
천생연분이라는 말보다는 평생원수라는 말이 훨씬 실감나는 세월이었다.
아웅다웅을 넘어서 서로 죽일 듯이 싸운 것도 여러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이 말처럼 쉽지가 않아서  결혼하고 같이 산 시간이 40년 가까워진다.
서로를 알고 지낸 것은 50년이 넘었다.

거실 이씨 아저씨, 안방 강씨 아줌마로 산 지가 오래다.
이름만 부부지 남남처럼 산다.
아니, 싸울 때는 차라리 남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남편의 취미는 드라마 보기, 나는 꽃 가꾸는 것이다.
서로 맘이 안 맞고 대화가 안 통하니 각기 다른 취미활동을 하는 것이 낫다.

그 날도 남편은 집에서 드라마를 보고 나는 식당에 나가 꽃을 손질하고 있었다.
날은 덥고 땀이 나서 끈적한데 모기가 극성으로 달려들었다.
모기를 이리 쫓고 저리 쫓아도 소용이 없다.
하필이면 반바지를 입었을까...
어찌나 모기가 물어대는지 달아나고 싶었다.
그런데 참 별꼴이다.
달아나고 싶은 생각의  끝에 남편에게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긴다. 
지긋지긋 싸우고 살았는데, 모기가 문다고 남편이 떠오를 것은 무엇인가...
나도 모르게 내 무의식 속에 남편은 내 피난처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인가...

살아 온 시간도 돌아보고 살아 갈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도 계산해 본다.
문득, 이리 살 것이 아니구나...싶다.
소중히 여기고 따듯하게 보듬어 안고 살아도 짧은 시간인데, 내가 왜 이러고 있나...
먼 발치서  얼굴 한번이라도 보았으면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복에 겨운 투정이 너무 심했구나...싶다.
남은 시간이라도 남편에게 잘해야겠다, 남편을 위해서 살아봐야지.
그까짓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져 무엇하랴...
남편이 내 피난처라면 나도 남편의 피난처가 되어보자.

참 신기하다.
 그 날 이후로 남편과 사이가 좋아졌다.
결국 문제는 남편이 아니고 나였던가 보다.
내가 생각을 바꾸니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다.
아마도 내 입에서 나가는 말투가 달라진 것이 아니었을까...
평생원수와 천생연분이 뒤바뀌는 것이 순간이다.
극성스레 물어대던 모기 덕분에 평생원수 대신 천생연분을 얻었다...ㅎ